앰프가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고쳐도 봤지만 임시방편, 수명이 다한 듯싶었다. 바꿨다. 2009년부터 함께했으니 정이 들 만큼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 무렵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후 들었던 몇 곡의 음악들이. 매시브 어택의 ‘Angel’ 도입부에서 정수리를 때리던 타격감이.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에서 펼쳐지던 매트릭스의 세계가.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를 들을 때 스피커 사이에서 느껴지던 그의 입술이. 이 모든 경험은 그저 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마음으로 동시에 스며들었다. 섹스와도 같았다. 좋은 사람과의 섹스가 그저 시각과 촉각으로만 쾌감을 부르는 게 아니듯, 소리도 그랬다. 진짜 음악을 만나는 듯한 기분의 연속이었다. 나에게 오디오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안겨준 계기는 그 무렵 했던 김창완과의 인터뷰였다. 그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다.
“우리 음반도 듣고, 레코딩 잘 된 음반도 듣고. 소리가 주는 상상력에 대해 경험했지. 음악 이전에 소리가 있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을 거야. 우리가 경이롭게 생각하는 게, 처음에 천둥소리나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다들 기절초풍을 할 거예요. 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나 소 울음소리와 호랑이가 우는 것은 전혀 다른 소리예요. 호랑이 입에서는 천둥이 나오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니 너무 놀라잖아. 좋은 소리를 들으면 그런 경험과 비슷한 걸 느껴요. 우리 상상력이 너무 트랜지스터에 위축돼 있구나. MP3에 갇혀 있구나.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죠.
그건 경험해봐야 해요. 천둥소리 듣고 파도소리 듣던 귀가 어디 간 거야. 안 돼요. 우리는 2집에 ‘어느 날 피었네’를 녹음하면서 움트는 소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그걸 녹음하려고, 그 사운드를 만들려고 수십 가지를 해봤죠. 물론 그런 소리는 없겠죠. 하지만 상상에는 있어요. 처음은 유리가 금이 가는 소리로 시작해 솜털이 삐져나오는 소리, 그래서 꽃이 확 웃는 소리를 재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못 했죠.”
소리가 주는 상상력, 나의 첫 시스템은 이 말을 현실로 만들어내곤 했다. 음악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드는 음반들이 있었다. 좋은 녹음이란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평생 들어왔던 음악에 새로운 재미가 더해진 것이다. 그렇게 7년, 수명을 다한 앰프를 떠나보내고 새 앰프로 바꾸는 기분은 묘했다. 친구를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달까.
아무튼 다시 중고장터를 뒤져 앰프를 바꿨다. 바로 음악을 들었다. 새로운 음악이 있었다. 2009년 어느 날 느꼈던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내 작업실의 공간은 음악이 꽤 잘 전달되는 구조다. 직사각형에 스피커가 긴 방향 쪽을 보고 있어서 그렇다. 비록 케이블까지 바꾸지는 않았어도, 양쪽 스피커 높이가 서로 달라도, 공간의 이런 모양새와 크기 때문에 집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입체적이고 두껍고 선명하다. 음악을 듣는 기쁨, 소리를 느끼는 충만함에 볼륨을 한껏 높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기시감이 다가왔다. 처음 시스템을 갖추고 사람들과 음악을 듣던 때 그 느낌이 되살아 났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듣곤 했다. 그럼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는 감정이 언어 이상의 대화로 전이되곤 했다. 묻지 않아도 함께 있는 공기가 분명히 답하고 있었다. 다시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 취한 밤의 습도가 기분 좋게 높아지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