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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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30m ‘땅굴 전투’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승패 가른다

하마스, 483㎞ 지하터널에 무기·식량 비축하고 매복… 이스라엘, 살라미 전술로 대응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11-01 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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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가자 메트로(metro)’로 불리는 지하터널이 있다. 가자지구 면적은 360㎢로 한국 세종보다 조금 넓다. 길이 40㎞, 평균 너비 8㎞의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이곳 인구는 237만 명에 달해 전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지하에 구축한 땅굴망은 마치 지하철 노선처럼 연결돼 있다.

    이스라엘군 병사가 가자지구의 한 땅굴에 들어가고 있다. [IDF]

    이스라엘군 병사가 가자지구의 한 땅굴에 들어가고 있다. [IDF]

    하마스, 폭발물·인간방패로 대응

    하마스가 2005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가자 메트로는 총길이가 300마일(약 483㎞), 깊이는 지하 30~40m로 추정된다. 서울 지하철(약 316㎞)보다 훨씬 길다. 하마스는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을 사용해 터널 규격을 높이 6피트(약 1.8m), 폭 3피트(약 0.9m)로 표준화했다. 땅굴 입구는 이스라엘군의 정찰과 탐지를 피할 수 있도록 주로 주택, 모스크, 학교 같은 건물 맨 아래층에 만들었다.

    하마스는 땅굴에 지도부 은신처와 지휘 사령부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로켓 등 각종 무기와 탄약, 식량, 식수, 연료도 이곳에 비축해놓았다. 심지어 각종 통신선과 무기 수송용 철로까지 설치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하마스 대원 3만5000~4만 명이 3~4개월간 전투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무기와 식량을 땅굴에 비축해놓은 것으로 추정했다. 다프니 리치몬드바라크 이스라엘 라이히만대 교수는 “좁은 영토에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터널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 병사가 가자지구에 하마스가 파놓은 땅굴을 수색하고 있다. [IDF]

    이스라엘군 병사가 가자지구에 하마스가 파놓은 땅굴을 수색하고 있다. [IDF]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진입에 대비해 급조폭발물(IED)과 부비트랩 등 각종 폭발물을 매설했고, 인질들도 ‘인간방패’로 사용하기 위해 감금했다. 실제로 하마스에 납치됐다가 석방된 이스라엘 인질 요체베드 리프시츠는 “가자지구로 끌려가 터널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젖은 땅을 수㎞ 걸었다”면서 “거대한 터널이었고 마치 거미줄 같았다”고 증언했다. 리프시츠는 “터널 내부를 한참 걸어 도착한 곳에 넓은 공간이 있었으며, 다른 인질 25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인질 239명을 억류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제3차 가자전쟁’으로 불리는 2014년 하마스와 전면전 때 가자지구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한 바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며 예비군 4만8000명을 포함해 6만 명 넘는 병력을 투입했다. 전쟁이 50일간이나 이어졌지만 하마스 입지만 키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이스라엘군 67명이 전사하고 수백 명이 부상했으며 경제적 손실도 심각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주민 2000여 명이 숨지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하마스가 땅굴을 더욱 견고히 구축해놓은 만큼 이스라엘군의 희생도 과거보다 커질 수 있다. 미국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 군사안보 전문가인 마이클 나이츠 연구원은 “하마스는 그동안 지상과 지하터널을 연결하는 심층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양측 모두 당시보다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지상전 성패는 하마스와의 땅굴 전투에 달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0월 28일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파견하고 공격을 강화해 하마스와의 전쟁 두 번째 단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네타냐후 총리는 “목표는 하마스의 군사력과 정부를 파괴하고 인질을 데려오는 것”이라면서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고 육지·해상·공중에서 싸울 것이며 지상과 지하 적들을 제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하마스 고사 전략 펼쳐

    10월 2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군의 집중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내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뉴시스]

    10월 2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군의 집중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내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마스와 전쟁을 3단계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1단계는 공습, 2단계는 지상군 투입과 하마스 격멸, 3단계는 새 안보체제 구축(대체 정권 수립)이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도 “이 전쟁은 여러 단계로 진행되고 우리는 다음 단계로 움직였다”며 “이 전쟁의 목표에는 지상 작전이 반드시 필요하고 최고 군인들이 현재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궤멸을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예부대를 가자지구 남북으로 분리 배치해 북부 지역과 중심 도시 가자시티를 포위하는 작전에 나선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중부 부레이즈에 진입해 임시 거점을 마련했고, 가자지구는 사실상 북부와 남부로 양분됐다.

    가자지구 중앙에는 북부와 남부를 가로지르는 ‘와디(Wadi: 평소에는 마른 골짜기지만 큰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는 지형) 가자’라는 곳이 있다. 부레이즈는 와디 가자 바로 남쪽에 위치한다. 이스라엘군이 와디 가자를 기준으로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양분하면 하마스는 북쪽 가자시티에 고립된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가자시티와 북쪽 지역을 떠나 남쪽 안전지대로 대피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해왔다. 가자지구에선 현재 전체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14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이 중 상당수가 와디 가자 이남에 몰려 있다.

    이스라엘군은 부레이즈를 거점 삼아 가자지구 남부와 북부의 통행을 차단했다. 하마스가 있는 북부 지역을 철저히 고립시키기 위해서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땅굴 등으로 요새화한 가자시티에 정면으로 진격하기보다 주위를 철저히 포위해 고사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땅굴에 은신 중인 하마스 대원들과 시가전을 벌이면 민간인은 물론 자국 병사가 많이 희생될 수 있고 승패를 가늠할 수도 없어서다. 이스라엘군은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하마스가 포진해 있는 가자시티와 북부 지역을 포위하는 작전에 나선 것이다.

    “하마스, 장기전 예상 못 했을 것”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가자지구에 진입해 기동하고 있다. [IDF]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가자지구에 진입해 기동하고 있다. [IDF]

    시간이 갈수록 하마스 상황은 약화될 전망이다. 식량과 연료 등 물자 공급이 끊겨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 다만 이스라엘군 전략이 성공하려면 전쟁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이 최대 6개월에서 1년가량 걸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하마스는 지하터널에 식량과 식수, 연료 등을 대거 비축해놓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스라엘군이 장기전을 벌이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하마스가 지하터널에 연료와 식량 등 필수품을 비축했지만 어느 시점에는 바닥이 날 것”이라며 “발전기를 돌릴 연료가 부족하면 지하에 산소를 공급하거나 불을 밝힐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 하마스는 지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도 “하마스는 3∼6주 정도 지상 침공을 예상했을 것”이라면서 “하마스는 이런 장기전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자국 병사와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마스 거점을 한 구역씩 장악해가는 이른바 ‘살라미(salami) 또는 슬라이스(slice) 전술’을 펼치고 있다. 살라미 전술이란 이탈리아 살라미 소시지에서 따온 용어다. 소금을 잔뜩 넣어 만든 살라미 소시지는 크기가 큰 데다 매우 짜고 향도 강해 조금씩 잘라 먹어야 한다. 이스라엘군은 지상군을 대거 투입하지 않고 정예 병력으로 땅굴을 단계적으로 파괴하면서 하마스 거점들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살라미 전술로 이스라엘군은 병력과 민간인 피해를 줄이면서 인질 구출 확률을 높이고, 하마스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모스 야들린 전 이스라엘군 정보국장은 “이번 작전은 전격전이 아닌 인치, 미터 단위 저강도 전투”라고 밝혔다. 영국 BBC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한 조각씩(slice by slice) 저미듯이 처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이스라엘군이 1마일(약 1.6㎞) 단위가 아닌 100야드(약 91m)씩 진격하는 등 이른바 ‘점진적 접근법(gradual approach)’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펀지 폭탄’으로 땅굴전 대응

    이스라엘군은 땅굴 탐지·파괴를 전담하는 야할롬 부대와 사이렛매트칼 대테러부대 등 특수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전투공병단 소속 특수부대인 야할롬 부대는 땅굴 전투의 핵심 전력이다. 이 부대는 땅굴을 찾아 파괴하고, 전투와 폭발물 처리 같은 작전도 수행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이 부대를 방문해 “우리는 야할롬 부대의 도움으로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부대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스라엘판 ‘델타포스’(미국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로 불리는 사이렛매트칼 부대는 인질 구출 임무를 전담해왔다.

    이스라엘군은 ‘스펀지 폭탄’ 같은 무기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펀지 폭탄은 액체 상태 화학물질이 급속히 팽창해 굳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땅굴 입구와 틈새를 봉쇄하는 데 쓰인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에 성공하려면 땅굴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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