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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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카드 쥐고 중동 헤게모니 강화 노리는 이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헤즈볼라 개입 시 ‘제5차 중동전쟁’ 비화 가능성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10-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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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상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이른바 ‘34일 전쟁’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2006년 7월 12일 레바논 남부 국경을 넘어가 이스라엘군 병사 7명을 사살하고 2명을 납치하는 등 무력 도발을 벌였다. 당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헤즈볼라의 도발을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보복에 나섰다. 이스라엘군은 1만5000명 규모의 병력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로 진격했다. 하지만 헤즈볼라가 강력하게 저항하며 버텼고, 이스라엘군은 예비군 1만5000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헤즈볼라 대원들이 깃발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MEMRI]

    헤즈볼라 대원들이 깃발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MEMRI]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악연

    이스라엘군은 막강한 화력과 공중 지원을 앞세웠지만 전투에선 메르카바 전차 11대가 파괴되는 등 오히려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밀렸다. 34일간 계속된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선 민간인 43명, 병사 117명이 목숨을 잃었다. 헤즈볼라는 로켓 3970발을 이스라엘에 발사했고 16억 달러(약 2조16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 레바논에선 120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헤즈볼라 대원이 530명이었다. 양측은 결국 유엔 중재로 휴전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사실상 패배했다고 평가했다. 중동 지역 이슬람 국가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이스라엘에 맞선 헤즈볼라가 승리했다며 열광했고,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최고지도자는 ‘영웅’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얘기만 나오면 치를 떨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개입할지 여부에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란이 후원해온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지원하고자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자칫 제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아랍어로 ‘신의 당’이라는 뜻인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에 거점을 둔 시아파 무장조직이자 정당이다. 헤즈볼라는 1983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몰아내려고 레바논 남부를 공격하자,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지원을 받아 결성됐다. 헤즈볼라는 호메이니의 혁명을 모델 삼아 레바논에 시아파 이슬람 국가 건설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테러를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은 헤즈볼라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대표적인 테러 공격은 1983년 10월 23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미군 해병대 기지에 자살 폭탄 공격을 가해 미군 24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헤즈볼라는 그동안 중동 지역에서 각종 테러 공격을 자행했다. 특히 이란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 교관들이 직접 헤즈볼라 대원의 군사훈련을 지도해왔다. 헤즈볼라는 이란으로부터 매년 수억 달러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헤즈볼라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시리아 정부를 돕기 위해 시리아 내전에 대원 수천 명을 파병해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헤즈볼라는 1992년 레바논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2018년 총선에선 의회 전체 128석 중 71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선 61석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하마스는 헤즈볼라에 비하면 아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기에 충분한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 중이고 병력 규모도 상당하다. 이에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헤즈볼라는 2021년 기준 10만 명의 훈련된 전사가 몸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 군사 전문가들은 헤즈볼라가 시리아뿐 아니라 이라크와 예멘 등에서도 엄청난 전투 경험을 축적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피라스 막사드 선임연구원은 “하마스는 헤즈볼라에 비하면 아이”라면서 “헤즈볼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非)국가 군대”라고 강조했다. 막사드 연구원은 “헤즈볼라의 참전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 전체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즈볼라 대원들이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포를 겨냥하고 있다. [Iran Tasnim News]

    헤즈볼라 대원들이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포를 겨냥하고 있다. [Iran Tasnim News]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강력한 조직”이라며 “참전할 경우 이스라엘에 훨씬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헤즈볼라는 그간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 꼽혀왔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 지역 수백 개 마을을 사실상 군사기지로 만들고 각종 로켓을 비롯해 중·단거리미사일을 집중 배치해놓았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헤즈볼라가 실전 배치한 로켓과 중·단거리미사일은 12만~15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헤즈볼라가 보유한 미사일을 보면 카추샤 로켓(사거리 29㎞)을 비롯해 이란제 파지르-3 미사일(40㎞), 파지르-5 미사일(75㎞), 젤잘-2 미사일(200㎞) 등으로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를 비롯해 주요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 특히 생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이란제 파테-110 미사일(300㎞)과 북한제 스커드-D 미사일(700㎞)도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로켓과 미사일들을 학교, 아파트 등 지하에 만들어놓은 무기고에 보관하고 있다.

    중동 군사 전문가들은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헤즈볼라가 참전하려면 이란의 승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힐랄 카산 레바논 베이루트아메리칸대 교수는 “헤즈볼라는 그동안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기에 대(對)이스라엘 공격은 이란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함마드 알리야 미국 하버드대 벨퍼센터 선임연구원도 “확전 결정권은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란에 경고한 미국

    미국은 헤즈볼라는 물론, 이란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월 15일 CBS와 인터뷰에서 “헤즈볼라와 이들을 후원하는 이란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지 마라(Don’t)”는 말을 4번이나 반복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이란으로부터 자국민 억류자 5명을 송환받는 대가로 한국이 동결해온 이란의 원유 대금 60억 달러(약 8조1100억 원)를 카타르은행에 송금했는데, 이를 다시 동결시킨 것도 헤즈볼라의 개입을 허용하지 말라는 경고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지중해 동부 해역에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 전단에 이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항공모함 전단을 추가 배치한 것도 이란의 사주를 받은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이 항해하고 있다. [US Navy]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이 항해하고 있다. [US Navy]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0월 16일 크네세트(이스라엘의 단원제 의회) 연설에서 이란과 헤즈볼라를 상대로 “(이스라엘) 북부에서 우리를 시험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과 2㎞ 이내 북부 국경에 인접한 28개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발령했다.

    이란은 ‘헤즈볼라 카드’를 손에 쥔 채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전쟁을 통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하산 나스랄라를 만났던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헤즈볼라가 전투에 참가하면 전쟁이 중동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테고, 이스라엘은 ‘대지진’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은 이어서 “헤즈볼라는 전쟁의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격을 가능한 한 빨리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헤즈볼라의 참전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마스 보복 공격을 막고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변하려는 것이다.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 정도가 변수

    이란의 의도는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저지하는 등 이득을 바탕으로 중동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가자지구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군의 범죄가 중단되지 않으면 이란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0월 1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가 불타고 있다. [뉴시스]

    10월 1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가 불타고 있다. [뉴시스]

    이란의 속내는 반미와 반이스라엘을 내세워 평소 첨예하게 대립해온 수니파를 친이란 세력으로 끌어들여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얄 지세르 텔아비브대 교수는 “이란은 항상 마지막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면서 “이란이 확전으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미국이 개입한다면 더욱더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수는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엄청나게 발생해 중동 지역 무슬림의 분노가 고조될 경우 이란은 헤즈볼라의 참전을 용인할 수 있다. 레바논에는 다수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급등할 경우 헤즈볼라로서는 부담이다. 켈리 페틸로 유럽외교협회(ECFR) 레바논 전문 연구원은 “만약 가자지구에 가해지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도를 넘어선다면 헤즈볼라에는 레드라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은 남과 북 두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여야 한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쟁을 한다면 이란은 물론, 시리아까지 개입해 제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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