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앞)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서울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차 간사단 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당이 윤석열 정부 뒷받침 못 해”
장 의원은 8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당의 혼란상에 대해 여당 중진 의원으로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글을 남겼다. 윤핵관 2선 퇴진론이 불거졌을 때다. 언론은 이 발언을 ‘백의종군 선언’으로 평가했고, 실제로 장 의원은 이후 말을 아꼈다. 그런데 불과 2개월여 만에 강성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장 의원의 발언이 나오기 직전 의원총회에서는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맡았던 같은 당 이용 의원이 나섰다. 이 의원 역시 주 원내대표가 두 수석을 퇴장시킨 것을 두고 “당이 윤석열 정부 뒷받침도 못 하고 장관도 지켜주지 못하느냐”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장관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당 안팎으로 퇴진론에 시달리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가리킨다. 공교롭게도 이 의원의 발언이 나오기 전날인 11월 9일 한 언론은 윤 대통령이 몇몇 친윤석열(친윤)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당의 대응에 불만을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당이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나. 당은 도대체 뭐하는 것인가. 장관 한 명 방어도 못 하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해당 보도가 가짜뉴스라면서 윤 대통령이 평소 ‘매가리’ 같은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통화를 부인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윤핵관을 비롯한 친윤계 의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주 원내대표를 때리고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사퇴한 후 국민의힘이 사실상 윤 대통령 친정체제로 넘어갔다는 분석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근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소통을 자주 한다는 소문이 있다.
윤 대통령이 전화를 건 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랬을까. 이 경우가 아니더라도 윤핵관이 자발적으로 ‘주호영 때리기’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 위기감의 발로다. 야당과 대결에서는 물론, 여당 내 세력 다툼에서도 밀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장 의원은 11월 14일 앞선 발언과 결이 다른 발언을 내놨다. 그는 “주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언급이 어떻게 당내 분열인가. 당내 강한 기류를 가지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협상하면 훨씬 더 협상이 강화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유승민 전 대표 같은 애정 없는 비난이 당내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며 유 전 의원을 소환했다. 속마음이 드러난 순간이다.
국민의힘은 태풍전야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가 11월 15일 임명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번 조강특위는 전국 69개 당원협의회 조직위원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2년 만에 정기 당무감사도 실시한다. 2024년 총선에 대비한 조직 정비라고 하지만 당내 비윤석열(비윤)계 인사를 친윤계로 교체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연히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윤 대통령이 본래 당내 조직 기반이 없던 터라 물갈이가 대규모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후배 검사 출신이 대거 내려올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기도 하다.
‘주이야박’ 겪은 윤핵관들
조강특위 결정은 2024년 공천 방향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비윤계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비윤계가 보일 격렬한 반응이다. 탈당을 불사하는 이도 있겠지만 비윤계 단일대오를 강화해 친윤계에 맞서려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갈 경우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윤계 지도부를 세우려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구상은 어그러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비윤계 당권주자 유 전 의원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윤핵관이 당내 군기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주 원내대표를 때린 것은 일종의 본보기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장기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친윤계 내에서도 동요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윤핵관이야 어차피 윤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다. 친윤계 중에서도 윤 대통령과 인연의 고리가 약한 주변부 친윤계, 이른바 ‘윤핵관 호소인’은 입장이 다르다. 조강특위가 외부에서 친윤계를 대거 영입하고 당내 비윤계는 물론, 주변부 친윤계까지 쳐내려 한다면 그들로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주윤야유’(낮에는 친윤석열계, 밤에는 친유승민계) 할 인사가 늘어날지도 모르는 만큼 사전에 이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윤핵관과 친윤계 상당수는 과거 친이명박(친이)계다. 이명박 정부 시절 ‘주이야박’(낮에는 친이명박계, 밤에는 친박근혜계)을 겪은 이들이다. 당시 경험칙도 윤핵관의 두뇌 회로에 깊숙이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급한 마음에 엄포부터 놓은 것은 일종의 조건반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유효한 해법일지는 물론 의문이다. 한편에서 공포감을 유발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반발심도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당 내실 강화라는 본질에 천착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