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놀이공원에서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GETTYIMAGES]
현모 뭐 하셨는데요?
영대 온 가족이 놀이공원에 다녀왔어요.
현모 갑자기요? 무슨 날인가요?
영대 예전부터 계획했는데, 이번에 정말 큰 맘 먹고 갔다 왔어요.
현모 피곤하시겠다. 그래도 날씨는 참 좋았겠네요.
영대 정말 최고로 좋았어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도 선선했고요. 그래서인지 수학여행을 온 학생도 많았어요.
현모 아, 맞다. 요즘 수학여행철이더라고요.
영대 가족 모두 놀이공원을 간 게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미국에 살 때는 제가 유학생 신분이라 시간을 못 냈거든요. 아이들이 각자 다녀온 적은 있지만, 아내까지 넷이서 완전체로 손잡고 놀이공원 나들이를 한 건 최초였던 거죠.
현모 굉장히 기념비적인 하루였네요!
영대 네. 하루 동안 느낀 게 참 많아요. 일단 첫째가 중학교 1학년이고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니까 지금이 가장 적정한 나이이자 골든타임이더라고요. 키도 어느 정도 커 놀이기구 타는 데 제약이 없으면서도 아직 한없이 재미있어 할 시기니까요. 조금만 더 크면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이랑 간다고 할 테니, 나중에 언제 또 이렇게 넷이서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저와 아내도 40대 중반이라 쌩쌩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적기고요.
현모 그죠. 저도 생각해보니 부모님이랑 온 식구가 같이 놀이공원을 갔던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번 안 되는 거 같아요.
영대 저도요. 부모님과 놀이공원에 갔던 게 2번밖에 안 되더라고요. 제가 마지막으로 놀이공원에 간 것도 20대 때 친구들이랑 놀러갔던 거예요. 다시 오기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다음은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는 거죠.
현모 바다나 산은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지만, 가족여행으로 놀이공원에 가는 건 인생에서 드물고 소중한 추억 같아요. 그만큼 기억이 생생하게 나기도 하고요. 영대 님도 그렇지 않아요?
영대 맞아요. 아버지가 바이킹을 타면서 놀랍도록 해맑게 웃으시던 얼굴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장미축제 기간에 어머니가 굳이 저한테 장미 옆에 서 보라고 해서 쑥스러웠던 기억도 생생하고요.
현모 그런 날은 유독 사진을 많이 찍어서 더 오래오래 기억되기도 하죠. 어쩌다 사진을 보면 오래전 같아 슬프기도 해요.
영대 이번에 처음으로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와 보니 관점이 새로웠어요. 희한하게도 절반은 아이들 생각을 하고 있고, 절반은 부모님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목마를까, 다칠까,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도 그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막연하게 부모님이 나이 드셔서 애들처럼 못 즐기시는 줄 알았거든요. 또 부모님이 우리를 챙기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요.
현모 어휴, 우리는 딸이 셋이니 다 이끌고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영대 ㅎㅎㅎㅎ 그러네요. 부모님은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해 놀아준 거였어요. 철저히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그래서 저도 이번에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고 놀이공원에 갔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너그럽게 들어주고, 춥다면 코코아 사주고, 배고프다면 간식 사주면서 물주 역할도 톡톡히 했고요. 결국 저만 지쳤지만요. ㅎㅎㅎ
현모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신 거 같아요. 통과의례를 드디어 훌륭하게 수행하셨네요. 꿈과 신비, 모험의 나라를 막연한 동심의 눈이 아닌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눈으로 체험하고 온 역사적인 날이잖아요.
영대 하필 놀이동산에 간 날 방탄소년단 입대 결정 기사가 나오면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어요. 그런데 이 소중한 날마저 전화기를 붙들고 있기는 싫어서 과감하게 전화기를 꺼버렸죠. 아내는 그래도 되냐며 걱정하긴 했지만, 전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현모 그럼요. 백번 잘하셨어요. 어떻게 마련한 자리인데!
영대 의외로 저도 매일매일 같은 일상만 반복하다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 일을 잠깐 내려놓은 채 아이들이 기뻐하는 순수한 표정을 보니 힐링이 되더라고요. 공원 마감시간까지 끝까지 놀다 퇴장했는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현모 어릴 때 놀이동산에서 서커스인가 마술쇼를 보다 가족이 합세해 저를 무대로 올린 악몽이 있어요. ㅋㅋㅋ 왜 한 명씩 앞으로 나오라고 하잖아요. 제가 막내여서 우리 가족이 저를 등 떠밀어 내세웠어요.
영대 ㅎㅎㅎ 맞아요. 저희 집도 그랬던 거 같네요.
현모 근데 전 하나도 즐겁지 않고 무서워서 그냥 얼어버렸어요. 하지만 낯선 상황에 부딪혀보는 게 결국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겠죠. 그런 비일상적인 자극을 토대로 아이가 기진 뜻밖의 재능이나 개성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영대 완전 공감!! 둘째 딸은 평소 극내향적 성격인데, 놀이공원에서 줄 서며 대기하다 갑자기 좋아하는 걸그룹 노래가 나오니까 춤을 추더라고요!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요. 그래서 깨달았어요. 내향성을 단편적으로 규정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요.
현모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다면 모를 뻔한 면을 목격하셨네요.
영대 그렇죠. 꽤 충격적이었어요.
현모 ㅋㅋㅋㅋ 귀엽네요. 영대 님 이야기에 저도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완전 빠져들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영대 꿈나라로 갈 시간이군요. ㅎㅎㅎ
현모 기절각입니다. ㅎㅎㅎㅎ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