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부장. [지호영 기자]
미국 증시는 기준금리 0.75%p 인상이 발표되자마자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안도 랠리를 보였다. 6월 15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70.81포인트(2.50%) 급등한 11,099.15를 기록했다. S&P500 지수는 54.51포인트(1.46%) 상승한 3789.99에,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일보다 303.70포인트(1.00%) 오른 30,668.53에 거래를 마쳤다.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의 역습에 자산가치가 휘청이고 있다. 무너진 자산을 어떻게 다시 세울까. 국내 최고 ‘연준 전문가’이자 ‘글로벌 경제 1타 강사’로 일컬어지는 오건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부장에게 최악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투자법에 대해 물었다.
강한 소비가 물가상승 부추겨
6월 10일 미국 고용통계국은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8.6% 올랐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정점이 지났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빗나간 결과에 글로벌 주가가 폭락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첫 번째는 공급망 이슈가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여러 무역·기술 분쟁으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19 사태도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영향을 미쳤다. 서플라이 체인 중 어느 하나만 깨져도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 시장에서는 이 공급망 이슈가 인플레이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수요에도 주목한다. 물가가 오른다는 건 가격이 오른다는 뜻이다.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 공급 부족과 더불어 강한 수요도 물가상승을 견인했다.”
소비가 얼마나 강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나.
“최근 미국 소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이 무너졌다.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췄고, 미국 재무부는 보조금을 뿌렸다. 2020년 4월 보조금 2조2000억 달러(약 2826조 원)를 지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녹아내릴 때 미국 당국은 보조금으로 7000억 달러(약 899조 원)를 뿌렸다. 7000억 달러를 통과시킬 때 의회에서는 “미쳤냐. 납세자들이 이 엄청난 돈을 어떻게 감당하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7000억 달러의 3배가 넘는 2조2000억 달러를 인프라 부양책이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쓴 것이 아니라, 현금으로 뿌렸다. 미국인 인당 1500달러(약 193만 원) 정도씩 꽂아준 셈이다. 4인 가정이면 6000달러 정도 된다.”
이후에도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나.
“2020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정부 말기에 코로나 2차 웨이브가 오면서 추가 보조금을 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9000억 달러(약 1156조 원)를 추가로 지급했다. 개인당 600달러씩을 또 지급한 거다. 지난해 3월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1조9000억 달러(약 2440조 원)를 보조금으로 또 지급했다. 정말 쉴 새 없이 현금을 뿌렸다. 여기에 추가 실업수당까지 줬다. 실업수당은 주당 600달러(약 77만 원)고, 자녀 인당 매달 300달러씩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자녀소득공제도 실시했다. 불과 1년 만에 5조 달러(약 6424조5000억 원)를 뿌렸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4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부양책까지 발표했다. 이 어마어마한 돈이 쏟아지자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유동성 홍수 시대였다.
“맞다. 집값이 엄청나게 올랐고 연금계좌에 주식까지 고공행진했으며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도 두둑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물가까지 낮았으니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증가했다. 사람들이 회사를 안 다닌다는 건 생산을 안 한다는 얘기다. 소비는 늘어나는데 생산이 받쳐주지 못하니 당연히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안일한 연준 스탠스가 인플레이션 키워
강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또 다른 원인이 있나.“지난해 연준은 ‘지금의 물가상승세는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부족한 공급을 차차 늘려 결국 수요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예측한 거다. 이런 이유로 연준은 물가가 ‘일시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측해 성장 부양에 초점을 맞춰 돈을 계속 뿌렸다. 이런 연준을 보면서 일각에선 물가상승 압력이 높은데 돈을 뿌리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40년 만에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데는 강한 수요와 공급 부족뿐 아니라, 연준의 안일한 대처도 작용했다. 연준은 유일한 인플레이션 파이터다. 인플레이션을 감시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연준이 ‘걱정하지 마, 인플레이션 안 온다’면서 좌시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강한 수요, 공급 부족, 연준의 좌시 등 3가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연준의 태도는 확실히 바뀌었다. 지금은 일시적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인플레이션을 좌시한 부분이 실수였다고 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6월 1일 의회에서 ‘잘못 생각했다. 판단이 틀렸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난해처럼 인플레이션을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치 이런 상황이다. 이어달리기를 하는데 앞 주자가 너무 느리게 뛰어 뒤처졌다면 바통을 받은 다음 주자는 전력 질주하지 않겠나. 연준이 지금 딱 그런 상황이다. 두 번째, 강한 수요는 엄청난 보조금 지급이 원인이다. 또한 금리와 물가가 낮았고 자산 가격은 올랐다. 이 네 가지 요소가 물가를 폭발시켰다. 현재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고 금리와 물가도 상승했다. 자산 가격은 주춤하고 있다. 그러면 소비가 눌릴 수밖에 없다. 현재 수요 규모와 연준 태도를 보면 앞으로 물가상승세가 세게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거다.”
지난달 월가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고 예측했지만 빗나갔다. 향후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전망하나.
“공급망이 아직 문제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만약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1년 더 간다면 어떨까. 국제유가가 200달러를 넘어가면 어떨까. 이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이슈가 너무 많다는 얘기다. 경제석학 한 분은 ‘경제학자보다 군사 전문가가 오히려 시장을 더 잘 예측할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군사 전문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상태에서 돌발 이슈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물가가 조금씩 낮아질 수 있다. 단, 공급에서 여전히 문제가 발생해 물가가 내려오는 속도는 느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 오래 지속될 가능성 높아
물가가 어느 정도까지 내려가야 하나.“물가가 2%까지 떨어져야 하는데, 현재 8%를 넘는다. 내려오는 길이 굉장히 길다. 공급망에 계속해서 문제가 생기면 속도는 더 느려질 수밖에 없다. 금방 성큼성큼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연준의 긴축 스탠스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연준 스탠스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연준이 속도를 늦추면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환호할 수 있겠지만 물가는 더 올라 오히려 굉장히 어려워진다. 경제성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물가도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성장 폭이 커지면 소득이 늘어나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성장을 주저앉혀야 한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파월 의장에게 ‘성장을 건드리지 말고 물가만 잡으라’고 지시했다. 정말 어려운 미션이다. 나는 물가가 인질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가라는 범인이 성장이라는 인질을 잡고 있는데, 인질인 성장은 다치지 않게 범인인 물가만 바주카포를 쏴서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바주카포는 연준의 통화정책, 즉 기준금리를 인상 또는 인하하는 거다. 정말 힘든 상황이다. 연준의 금리라는 무기는 굉장히 둔탁하다. 정밀 타격을 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연준도 굉장히 막막할 거 같다.
“지금 그 누구도 최선의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일단 연준은 5월에 기준금리를 0.5%p 올린 데 이어 6월에는 0.75%p 인상을 선택했다. 그다음 지금까지 해왔던 정책의 효과를 보면서 속도를 조금 늦춰가는 전략을 쓰겠다는 거다. 적절한 판단이라고 본다. 다만 금리를 올려도 물가가 꺾이지 않는다면 스탠스를 좀 더 강하게 가져갈 수 있다. 연준은 물가를 잡으려는 의지는 확실히 표명하고 있다. 그 의지로 결국 물가를 잡을 거다. 다만 금융시장에서는 그 과정에서 성장이 얼마나 다칠까를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플레이션 진정 뒤에는 저물가-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하나.
“현재는 고물가 상황이다. 이 고물가를 잡아서 저물가가 되면 저성장-저물가와 고성장-저물가 두 가지 상황이 될 수 있다. 물가를 잡으려고 바주카포를 쏘면 저성장-저물가가 되는 거다. 이 총재의 발언은 이런 리스크도 있다는 뜻이다. 연준이 과연 성장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고물가를 해결할 수 있을까. 만약 물가를 잡기 위해 바주카포를 쏜다면 저성장 환경이 올 수밖에 없다.”
저서 ‘부의 시나리오’에서 언급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저성장-저물가 시나리오가 올 거라는 뜻인가.
“성장을 고성장, 저성장으로 나누고 다시 고물가, 저물가를 합치면 고성장-고물가, 고성장-저물가, 저성장-고물가, 저성장-저물가 등 4개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런데 올해는 좀 복잡한 상황이다. 일반적인 투자 환경에서 봤을 때 물가가 40년 동안 안 올랐다. 저물가에서 고성장, 저성장을 오갔다. 현재는 고물가지만 저물가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 물가가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기업에 투자해야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모두 반영됐다고 보나.“증시에 악재가 모두 반영됐다면 증시가 급등, 급락하면 안 된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또한 긴축이 진행되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가득한 공간에 유독가스가 들어온다고 해보자. 폐활량이 큰 사람은 버티지만 폐활량이 적거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쓰러진다. 유독가스가 들어오는 걸 확인했으니 괜찮다가 아니라, 누군가는 쓰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시장이 더 놀랄 수 있다. 현재 금리·물가 상승 악재가 주가에 반영된 건 맞다. 하지만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반영했다곤 볼 수 없다. 모든 악재가 다 나왔으니 이젠 주가가 오를 일만 남았다는 생각은 리스크가 크다. 무엇보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는 건 주식시장에 우호적인 환경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주식투자자는 어떤 기업을 주목해야 하나.
“기업의 펀더멘털(경제기초)과 환경을 같이 봐야 한다. 만약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한다면 한국이 쉽게 이길 수 있을까. 한국 홈경기면 자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원정 경기는 장담 못 한다.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서 브라질과 일본이 경기하면 어떨까. 아마 압도적으로 브라질이 이길 거다. 투자하기 어려울 때일수록 그런 압도적 자산, 좋은 기업을 골라야 한다.”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전체 주가지수가 코로나19 사태 때처럼 한꺼번에 올라가는 장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물가나 금리가 오르는 환경은 주식시장에는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당분간은 고전할 수 있다. 2020년과 2021년은 ‘이렇게 좋은 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장이었다. 인생처럼 투자도 굴곡이 있다. 이젠 하락장에서 살아남는 투자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하락장에서 살아남는 매뉴얼이 있다면 앞으로 롱런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은 하락장이 힘들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투자를 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관점에서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매뉴얼을 만든다면 미래 리스크 장세에서는 자산을 더욱 단단하게 보호할 수 있을 거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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