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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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최소 목표 ‘노보로시야 복원’, 돈바스 전투에 병력·화력 쏟아붓는다

남북한처럼 분단 노림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까지 영향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4-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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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Tass]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Tass]

    ‘노보로시야(Novorossiya)’는 러시아어로 ‘새로운 러시아(New Russia)’를 의미한다. 러시아 제국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가 1783년 흑해 연안을 지배하던 크림 칸국(Crimean Khanate)을 멸망시킨 후 설치한 직할통치령의 이름이다. 크림 칸국은 1430년 유럽에 남아 있던 마지막 몽골 세력인 타타르족이 세운 국가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비호를 받은 크림 칸국은 러시아를 빈번하게 침입해 주민을 2만~3만 명씩 노예로 잡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1768~1774)에서 승리한 후 크림 칸국까지 정벌하며 흑해 연안의 넓은 영토를 모두 차지했다.

    노보로시야 지역은 현재로 볼 때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자포리자주, 미콜라이우주, 헤르손주, 오데사주, 크름(러시아어로 크림)반도,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러시아의 크라스노다르주와 스타브로폴주, 로스토프주, 아디게야공화국 일대를 말한다. 노보로시야는 1922년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일원이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 반도를 강제병합하면서 옛 러시아 제국의 땅이던 노보로시야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칼 퀄스 미국 디킨스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노보로시야 지역을 러시아 땅이라고 주장해왔다”고 지적했다.

    푸틴 “노보로시야는 러시아 땅”

    러시아는 하르키우~크라마토르스크~도네츠크~마리우폴~헤르손~오데사~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노보로시야’ 재건을 꿈꾸고 있다.

    러시아는 하르키우~크라마토르스크~도네츠크~마리우폴~헤르손~오데사~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노보로시야’ 재건을 꿈꾸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촉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승리’를 주장하면서 종전을 받아들일 ‘최소 목표’가 무엇일지 관심이 모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함락에 실패한 러시아군은 전쟁 목표를 변경해 ‘돈바스의 완전한 해방’을 내세우면서 동부지역에 병력을 집결하고 있다. 돈바스는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설립한 이른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이 독립을 선언한 지역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현재 루한스크 지역의 93%, 도네츠크 지역의 54%를 해방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동부 하르키우부터 이지움~크라마토르스크~도네츠크~마리우폴을 장악한 이후 돈바스 지역 전체를 자국 땅으로 합병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본다. 마리우폴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남부 항구도시다. 러시아군의 의도는 옛 노보로시야 지역을 확보해 ‘전쟁 승리’라는 최소한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애초 이번 전쟁을 시작하면서 내걸었던 우크라이나 전체의 비무장화·비나치화 대신 노보로시야 복원이 일종의 출구전략이 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남부군관구 사령관(육군 대장)을 우크라이나 전쟁 담당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드보르니코프 사령관은 2015년 시리아 내전 때 반군이 장악한 도시 알레포를 무차별 폭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시리아 반군은 민간인이 대거 숨지는 등 엄청난 피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 했다. 러시아 정부는 드보르니코프에게 ‘전쟁 영웅’ 칭호를 수여했지만, 시리아 국민은 지금도 그를 ‘도살자’라고 비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연상케 할 돈바스 전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대전술단(BTG)을 대거 늘리는 등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이동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와 함께 민간 군사 회사 와그너그룹이 운용해온 전직 군인 출신 용병 1000여 명을 투입했다. 와그너그룹은 푸틴 대통령의 요리사 출신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기업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용병을 동원하는 사업을 해왔다. 이들은 말리,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보여온 잔혹성으로 악명이 높다. 또한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할 당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이 봉기하자 이를 지원한 바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전투’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본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병력과 화력을 집중하면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도 “돈바스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연상케 할 것”이라며 “전차, 장갑차, 항공기, 포 수천 대가 동원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군이 동부와 남부에서 공격을 강화해 돈바스 전체를 장악하고 크림반도와 연결하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군은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5월 9일)을 맞아 돈바스지역을 완전 장악하기 위해 민간인까지 무차별 공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략 요충지이자 밀과 보리, 옥수수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 지역인 마리우폴을 사실상 점령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됐다. 마리우폴 시정부는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과 폭격으로 민간인 5천~1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 전쟁 전까지 45만여 명이 거주하던 마리우폴에선 탈출하지 못한 주민 12만~16만여 명이 식수·식량·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자국 점령지로 만들면 크림반도는 돈바스지역과 연결돼 ‘고립된 섬’에서 벗어난다. 러시아는 그동안 크림반도가 러시아 본토와 다리 하나로 연결돼 있어 경제적·군사적으로 취약한 상태라 우크라이나가 언제라도 다시 넘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우폴을 장악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아조우해 연안을 모두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데사 등 흑해 해안 지역을 압박하는 교두보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영국 군사 전문가 저스틴 크럼프는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마리우폴을 거쳐 크림반도, 몰도바의 친러 반군 점령지인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연결할 경우 푸틴 대통령이 꿈꿔온 노보로시야 재건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이미 헤르손도 점령한 러시아가 노보로시야를 재건하면 나아가 옛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까지 영향권에 묶어둘 수 있다.

    러시아군은 잔혹 행위로 악명 높은 체첸공화국 수비대(체첸군) 병력까지 마리우폴에 투입했다. 체첸은 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 자치공화국이다. 소련 붕괴 후 분리 독립을 시도한 체첸은 1994~1996년과 1999~2000년 두 차례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체첸 반군은 치열한 시가전으로 러시아군을 괴롭혔고, 포로는 물론 러시아계 주민들까지 무참히 살해했다. 체첸공화국 수장은 람잔 카디로프라는 독재자다. 반군 출신이지만 러시아 편으로 돌아선 후 권력을 잡은 카디로프는 체첸군을 시리아 내전 등 러시아가 개입한 주요 전쟁에 용병처럼 파견해왔다. 체첸군은 각종 전쟁에서 도시 초토화와 민간인 학살, 포로 고문 및 참살 등을 자행해 ‘악마의 부대’로 불려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현재 마리우폴의 참상은 체첸 수도 그로즈니와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벌어진 것과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잔혹 행위로 유명한 체첸군까지 투입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수장(왼쪽)이 마리우폴에서 체첸군 병사들을 시찰하고 있다. [RIA Novosti]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수장(왼쪽)이 마리우폴에서 체첸군 병사들을 시찰하고 있다. [RIA Novosti]

    푸틴 대통령이 노보로시야를 복원하려는 의도는 우크라이나를 한반도처럼 분단시키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한국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면서 “이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지배구역을 만들어 남한과 북한처럼 분단시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부다노프 국장은 “러시아 침략자들은 점령지를 하나의 준(準)국가 구조로 만든 다음 우크라이나 정부를 공격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면서 “러시아의 그런 야욕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끈질긴 저항과 게릴라전을 통해 와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동부와 남부 영토를 통합해 우크라이나를 분열시키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루한스크인민공화국 수장인 레오니드 파시치니크는 루한스크의 러시아 편입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당시에도 주민투표 찬성 결과가 그 근거로 활용된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를 지나 흑해로 흘러드는 드니프로강을 기준으로 남부와 동부 지역은 친러시아, 북부와 서부 지역은 친서방 성향으로 분류된다. 북·서부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은 우크라이나 언어·민족 등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다. 반면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다수 거주하는 동부와 남부 지역은 친러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편이다. 존 데니 미국 육군대 전략연구소 교수는 “러시아가 노보로시야 복원 명분을 내세워 드니프로강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를 쪼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을 종합하면 노보로시야 복원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최소한의 목표이자 출구전략으로 보이지만, 우크라이나군도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어 치열한 대결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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