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동아DB]
안 위원장은 내각 발표 직후 “사전 조율이 있었느냐”는 기자 질문에 “나는 추천을 해드리고, 인사에 대한 결정은 인사권자가 하는 것”이라고 답했지만 이후 말이 바뀌었다. 그는 4월 12일 “내가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조언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런 과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 “추천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태규 사퇴, 尹 향한 불만 표출
안 위원장은 3월 30일 “직접 내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윤 당선인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국무총리직 고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장관 후보는 추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공동정부에 대한 대국민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자격 있고 깨끗하고 능력 있는 분들을 장관 후보로 열심히 추천할 생각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4월 7일 “그 나름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도 있고, (인연이) 전혀 없지만 과학계에서 명망 있는 분들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닷새 후 “청사진을 제대로 실행에 옮길 만한 능력 있는 분들을 또 추천해드렸다. 그렇지만 인사는 당선인의 몫”이라고 재차 언급했다.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안 위원장의 애매한 발언 속에서 건져 올려야 할 진실은 무엇일까. 일련의 발언으로 유추하건데 “추천했는데 윤 당선인으로부터 피드백은 없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물론 단순히 피드백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의원이 사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물을 윤 당선인이 선택하지 않은 점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의원이 사퇴한 시점도 눈길을 끈다. 1차 내각 인선 발표 후, 2차 내각 인선 발표 전이다. “2차 내각 인선 때는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물을 포함시켜라”라는 무언의 압박 성격이 강했다. 반면 안 위원장 본인이 직접 사퇴하는 강수를 두지는 않았다.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미와 더불어 자칫 판을 깨고 나갔을 경우 여론의 역풍을 우려했을 것이다.
이 의원의 사퇴에도 안 위원장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윤 당선인은 4월 13일 이 의원의 빈자리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으로 채웠고, 2차 내각 인선에서도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물을 배제했다. 안 위원장이 정말 추천한 게 맞긴 한 건지 의아할 즈음 의문점을 해소해준 것은 의외로 윤 당선인이었다. 윤 당선인은 4월 13일 2차 내각 인선 발표 직전 “추천은 다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원칙을 말씀드렸다. 거기에 부합하면 어느 계도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게 인사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뒤집어 말하면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물 중에는 그런 인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당사자로서는 불쾌할 법한 지적이다.
공직은 한정돼 있는데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다. 또는 앉히고 싶은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1차 내각 인선 발표 당시 윤 당선인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부터 할당이나 안배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어차피 지명해야 할 공직이 많고 한국 인재가 어느 한쪽에 쏠려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지역·세대·남녀 등 균형이 잡힐 것이라 믿는다”고 언급했다. 윤 당선인이 안 위원장의 인사 추천에 대해서도 같은 접근법을 택했을 수 있다. 그랬다면 지나치게 안이하게 접근한 셈이다. 공동정부를 만들려면 내각 할당이나 안배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유럽 ‘연립정부’에서도 내각 할당과 안배는 기본이다.
安, 내각 인선 배제 여파↑
또 다른 가능성은 윤 당선인이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물을 내각이 아닌 다른 자리에 임명할 의도를 가진 경우다. 내각은 ‘윤석열 사단’으로 가져가고, 향후 많이 만들겠다고 공언한 민관합동위원회에 ‘안철수 사단’을 대거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안 위원장이 국무총리를 맡은 것도 아니고 ‘안철수 사단’도 내각에서 배제된 상태다. 이를 공동정부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공동정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DJP연합’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를 국무총리로 지명했을 뿐 아니라, 내각에서도 핵심 직위에 해당하는 경제와 외교통일 분야 장관 지명권을 보장했다. 안 위원장의 정치적 비중이 당시 김종필 총재에 버금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 장관에 대해서는 지명권까지 행사해야 공동정부라고 할 수 있다.DJP연합도 결국 깨졌다. 공동정부를 유지하기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연립정부가 일반화한 유럽 각국에서도 집권 중 결별 사례는 흔하다. 공동정부는 ‘이별이 예고된 동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빨라도 너무 빨라 문제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 결별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에서도 초접전 끝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당선 후에도 집무실 이전을 비롯한 각종 논란으로 과거 대통령들이 당선인 시절 누렸던 반짝 지지율 상승 효과도 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공동정부까지 흔들려 안 위원장과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중도 세력마저 떠나간다면 취임 초부터 레임덕을 겪는 초유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위기감이 작용해서일까. 윤 당선인은 4월 14일 안 위원장과 긴급 회동을 갖고 갈등 봉합에 나섰다. 안 위원장은 회동 뒤 “공동정부 정신이 훼손될 만한 일이 있었지만 다시 국민들께 실망을 끼쳐드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는 의미다. 겨우 봉합은 했지만, 공동정부 정신이 얼마나 유지될 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