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이상 항모의 전투기 출격 방식은 두 가지다. 먼저 사출기 이함 방식(CATOBAR·증기 등 동력으로 함선에서 항공기를 발진)이다. 미국 F-35C나 F/A-18 계열, 프랑스 라팔-M 등 세 종류가 있다. 또 다른 방식은 스키점프대 형태의 구조물(항모 활주로 끝을 위로 들어 올린 이륙 설비)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인도를 위해 개발한 F/A-18E/F STOBAR(Short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스키점프 이륙), 러시아 Su-33이나 MIG-29K, 인도 테자스, 스웨덴이 브라질에 제안한 그리펜 네이비 등 네 종류를 꼽을 수 있다.
비싼데 성능 떨어지는 수직이착륙 전투기
한국군이 경항공모함 함재기로 도입하려는 F-35B. [사진 제공 · 미국 해병대]
이런 이유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한 경항모 함재기는 모두 해리어였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태국, 인도의 경항모는 모두 해리어 계열 기체를 운용했다. 미 해군의 강습상륙함(强襲上陸艦·병력과 물자를 양륙하는 군함)도 그랬다.
F-35B는 경항모 운용 국가의 요구로 미국 록히드마틴사(社)가 개발한 차세대 수직이착륙 전투기다. F-35라는 이름을 따르지만 공군용 A형이나 해군용(지상 비행장 또는 중형 이상 항모에서 운용) C형과 크기·중량·구조·엔진 등 설계 자체가 다르다. 사실상 별개 기종으로 봐도 무방하다.
당초 F-35B 도입을 결정한 나라는 미국(353대), 영국(138대), 일본(42대), 이탈리아(30대), 싱가포르(12대) 5개국이었다. 터키는 아나돌루급 항모용으로 40대 이상 도입을 추진했으나 계획이 좌초했다.
문제는 각국이 F-35B 도입 물량을 대폭 줄일 전망이라는 것. 최대 구매자인 미 해병대는 지난해 군 개혁 일환으로 대규모 편제 개편을 발표했다. 현재 1개 비행대(飛行隊)당 전투기 16대가 배속된 편제를 10대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당초 미 해병대는 2032년(회계연도 기준)까지 22개 비행대의 F-35B 기종 전환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각 비행대 소속 전투기 편제가 10대로 감축돼 F-35B 도입 물량도 최대 130여 대 줄어들 전망이다.
138대를 구매해 세계 2위 F-35B 도입국이 될 예정이던 영국도 2025년까지 F-35B 48대 도입만 확정했다. 나머지 90대는 취소를 검토 중이다. 영국 정부는 F-35B 구입에 쓸 예산을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와 무인전투기 개발·획득에 투입할 전망이다. 예산 전용은 의회의 지지도 받고 있다. 함재기 부족은 미 해병대 F-35B를 영국 항모에서 함께 운용하는 ‘연합전단’ 구성으로 해결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지난해부터 연합전단을 시범운용하기 시작했다.
6개 나라가 600대 이상(터키가 취소한 40대 포함) 주문할 예정이던 F-35B는 발주 축소·취소로 실제 생산 물량은 220대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F-35 계열 기체 중 가장 비싼 F-35B의 획득·유지 비용이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전투기 양산(量産) 수량이 줄면 대당 제작 단가와 후속 군수 지원 비용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F-35B를 도입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까. 2019년 록히드마틴 측은 F-35B 전투기의 기체 가격(flyaway cost)이 대당 1억130만 달러(약 1120억 원)라고 밝혔다(제14차 저율초도생산(LRIP) 물량 기준). 이 가격은 순수 전투기 납품가만 따진 것이다. 다른 성능 옵션 등을 추가한 실제 구매 가격은 훨씬 높아진다. 무기체계 구입 가격은 도입 시기와 물량,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국군이 소요(所要)를 제기한 F-35B 전투기 물량은 20대. 대당 가격을 2500억 원으로 잡아도 5조 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8월 군은 F-35B 20대 도입에 4조7000억 원(대당 235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F-35B 운용, 별도 인프라 필요
1969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도입한 수직이착륙 전투기 해리어(Harrier). [사진 제공 · 미국 해병대]
문제는 이마저도 미 해병대의 대규모 편제 개편, 영국의 구매 물량 축소 전 가격이라는 것이다. 양산 물량이 크게 줄면서 F-35B 대당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F-35B를 도입할 2020년대 중반 이후 실제 가격은 세계 최고가 전투기 F-22에 근접한 3000억 원 수준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
F-35B는 한국군이 이미 도입한 공군용 F-35A와 기체의 구조·부품이 다르다. 별도의 정비·훈련·지원 인프라가 필요하다. 획득 후 유지 비용도 더 비싸질 수 있다. 영국이 F-35B 대량 도입 포기를 검토한 것도 ‘돈 문제’ 때문이었다.
한국 공군은 F-35B 외에도 굵직한 무기 도입·개량 사업을 앞두고 있다. F-35A 20대 추가 도입(3조3000억 원 이상), 조기경보기 2대 추가 도입(1조3000억 원 이상), KF-16 성능 개량(2조979억 원 이상), F-15K 성능 개량(3조 원 이상), 한국형 전투기 KFX 양산(8조 원 이상)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 5조 원, 최악의 경우 7조 원 이상 들여 F-35B를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F-35B 도입과 관련한 난맥상은 한국군의 사업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군은 약 5조 원대 7만t급 정규 항모 도입이 부담스럽다며 2조 원대 경항모를 도입하기로 했다. 예산 3조 원을 절감한 셈이다. 그런데 함재기 가격이 폭등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항모 구입에서 아낀 예산을 함재기 구입 비용으로 쓰게 될 공산이 크다. 심지어 그렇게 도입할 함재기가 한국의 안보 환경에는 맞지 않는다. 이른바 ‘가격 대비 성능’이 나쁜 기종이다.
한국군이 고집하는 4만t급 경항모의 도입 가격 자체는 정규 항모보다 싸다. 다만 운용 가능한 함재기는 F-35B 한 기종뿐이다. 획득·유지 비용은 정규 항모에서 운용 가능한 함재기보다 비싸다. 이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작전 능력은 정규 항모에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