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원기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상임이사. [지호영 기자]
비영리단체 회계 전문가인 배원기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상임이사의 말이다. 배 이사는 지난해 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미국 비영리단체 연합조직체 인디펜던트 섹터의 ‘비영리단체의 바람직한 운영원칙’을 번역했다. 이 책 2000권을 KB국민은행, 생명보험협회, 동아시아경제연구원 후원으로 소규모 비영리단체에 무상 배포할 예정이다. 배 이사는 “비영리단체가 대부분 기본 운영원칙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감사를 철저히 하는 것뿐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문제점 전반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연 사태 이후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보완 입법에도 비판을 이어갔다. 1월 6일 서울 강남구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배 이사를 만나 비영리단체의 문제점을 물었다.
해외 비영리단체의 시스템을 국내에 알리는 작업을 했다. 책 출간에 참여한 계기가 무엇인가.
“정의연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5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여론조사를 했다.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53.2%가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외부 감사가 중요하긴 해도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 역시 조직의 의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이사회의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최고책임자 등에 대한 내부 통제 수단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디펜던트 섹터가 제시한 33개 운영원칙 중 국내 비영리단체에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3번 원칙과 13번 원칙이 특히 중요하다. 3번 원칙은 비영리단체에서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예외 없이 이를 공시 또는 회피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13번 원칙은 이사회가 매년 최고책임자를 감독하고 성과를 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최고책임자, 즉 이사장에 대한 평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의연 사태의 본질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나.
“이사장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재했다. 언론에 따르면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초창기에는 내부 토론이 활발했다. 그러다 점차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독단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로 바뀐 것으로 안다. 윤 의원 부친이 안성 쉼터 관리자로 근무한 일이나 안성 쉼터 매매 건 모두 사전에 복수의 이사로부터 견제를 받거나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이사회가 상근책임자를 감독해야 한다. 상근책임자들의 양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왜 국내 비영리단체는 이사회의 자정 기능이 미약했을까.
“기본적으로 이사의 임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이사들은 단체 업무와 관련한 이해관계 조정 등 여러 일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사들이 이름만 올려놓은 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복지법인 신임 이사의 경우 서울시가 그들을 대상으로 이사의 역할에 대해 4시간가량 교육시킨다. 받아봤는데 유익했다. 시민공익위원회가 비영리단체 이사를 대상으로 기초 교육을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
배 이사가 언급한 시민공익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19대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시민공익위원회로 여러 부처에 흩어진 비영리단체 지원 및 관리 업무를 통합하고 감사한다는 계획이었다. 배 이사는 “시민공익위원회를 통해 비영리단체의 주무 부처가 통합돼 절차가 명확해진다. 또한 비영리단체 전담 기관이 설치되는 만큼 여러 지원을 예상했다. 비영리단체 문제도 상당수 해결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고 말했다.
집권 이후 이 공약의 이행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정부 및 여당은 지난해 5월 정의연 사태가 본격화되고 나서야 입법에 나섰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지난해 6월 10일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공익법인의 운영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21일 공익위원회에 관한 세부 내용을 정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안을 살펴본 배 이사는 “기대와 달리 문제가 많았다”며 “이들 법안으로는 제2의 정의연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지난해 9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했다. 이날 검찰은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실 의혹과 관련해 횡령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윤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뉴스1]
“2017년 6월 기준 정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는 2만5596개다. 이 중 민법상 비영리법인이 2만414개로 가장 많고 공익법인(3407개), 특수법인(1775개) 순이다. 법무부 안을 따를 경우 시민공익위원회는 공익법인과 사회복지법인 일부만 담당한다. 3500여 개 법인이 시민공익위원회의 관리·감독 대상에 포함되는 셈인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면서 문제 또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민법상 비영리법인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회계 문제가 불거졌던 정의연 역시 민법상 비영리법인에 속한다.”
민관기관이라 하더라도 업무가 확장되면 비영리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지 않나.
“오히려 법무부 안에서 독립성을 침해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공익위원회를 법무부로부터 독립시킨다지만 그럼에도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뒀다. 이런 구조로는 비영리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국무총리 산하 조직으로 둬야 한다. 앞서의 문제점들 때문에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역시 법무부 안(案)을 ‘개악’이라고 부르며 반대한다. 법무부로 힘이 쏠리는 방식인 탓에 기존에 공익법인 업무를 담당했던 여타 행정부처도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
윤호중 의원 안은 어떤가.
“시민공익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조직으로 둔 점에서는 법무부 안보다 낫다. 하지만 윤 의원 안은 너무 모호하다. 비영리법인과 공익법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없어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의연처럼 민법에 의한 비영리법인이 탈선했을 때 공익위원회에서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민법상 비영리법인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윤호중 의원 안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와 윤호중 의원은 왜 공익위원회의 관리·감독 범위를 좁게 잡았을까.
“답답한 일이다. 비영리단체에 대한 개념 정리가 바르게 되지 않은 탓인 것 같다. 공익법인은 비영리단체 중 일부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옳다고 보나.
“비영리단체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이들의 투명성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시민공익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시민들이 비영리단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짜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가인권위원회 방식을 따라야 한다. 또한 비영리단체를 감사하는 회계사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비영리단체 역시 회계에 전문성을 가진 이사를 둬야 한다. 정의연에는 파이낸셜 리터러시(financial literacy)를 가진 이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영리단체 관계자들이 공과 사를 구별했으면 한다. ‘빙공영사(憑公營私)’라는 말이 있다. 공익활동을 하면서 사익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비영리단체는 ‘법인과 나는 별개’라는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윤미향 의원이) 개인계좌로 후원금을 모금한 일도 이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법인과 개인을 구별하는 동시에 이사회 내에서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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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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