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현실 왜곡하지 말자”던 김현미 국토부 장관, “집값 11% 올랐다”
김 장관 발언 근거인 한국감정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표본 적고 시세 흐름 놓쳐
감정원이 실제 거래가격으로 산출하는 실거래가격지수가 현실에 더 근접
집값 흐름, 3개월은 지켜봐야…“문 대통령의 ‘주택시장 안정화’ 발언은 성급”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2017년 6월 국토교통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김현미 장관이 연설한 취임사 중 일부다. ‘현장과 괴리된 통계’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던 김 장관은 3년이 지난 현재, 현장과 괴리된 통계를 인용했다는 뭇매를 맞고 있다. 김 장관은 7월 23일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11%(서울 아파트값은 14%) 올랐다”고 발언해 야당으로부터 “어느 나라 장관이냐”는 질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3년간 집값이 52% 올랐다고 발표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김헌동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서울에 어떤 집이 그 정도 올랐는지 다 뒤져봐도 없다”고 일갈했다.
김 장관이 ‘11% 인상’의 근거로 든 것은 한국감정원이 매주, 그리고 매월 조사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이하 감정원 통계). 김 장관은 이 통계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에도 “장관으로서는 국민이 느끼는 체감과 다르더라도 국가가 공인한 통계를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며 입장을 고수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감정원 통계를 근거로 “(8월 들어)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안정화되고 있다”고 발언하자, 경실련은 “그렇다면 국토부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14.2% 통계를 내는 데 사용된 서울 아파트의 위치와 이름을 밝혀 달라”며 청와대에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14%만 오른 서울 아파트 좀 알려 달라”
이중 어떤 통계가 가장 정확한 지는 가리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각 통계마다 설계 방식이 달라, 각 용도에 적합한 것을 취사선택하는 게 올바른 부동산통계 사용법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 주로 활용되는 것은 KB시세.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KB시세가 감정원 통계보다 현재의 시장 흐름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들은 KB시세를 더 선호한다. 매도인과 매수인도 KB시세를 참조하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KB시세가 더 선호되는 것은 통계 조사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감정원 통계와 KB시세 둘 다 표본 조사이지만, 감정원 통계는 감정원 조사원이 실거래가 및 유사 거래를 확인해 산출하는 반면 KB시세는 부동산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실거래가와 호가를 온라인으로 취합해 산출하는 차이가 있다. 표본 규모에서도 차이가 난다. 감정원(2만8360호)보다 KB시세(3만4495호) 표본이 더 많다. 이중 아파트 표본은 KB시세(3만327호)가 감정원(1만7190호)보다 두 배 가량 많다.
그리고 표본에 속한 아파트에서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감정원은 과거 및 유사 거래를 참고해 통계를 내는데, 바로 이 점에서 현실과 괴리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전국 아파트 1000만 호 중 월간 거래 건수는 8만 호 가량으로, 전체 아파트의 0.8%만 거래된다. 이 비율을 적용하면 감정원이 표본으로 삼은 아파트 1만7190호 중 실제 거래가 이뤄진 것은 138호(17,190호×0.008)에 지나지 않는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감정원 조사원들이 부동산 공인중개사들보다 시장에 대한 감(感)이 좋을 리 없고, 감정원이 국토부의 감독을 받다보니 정권 입김을 많이 탈 수 밖에 없다. 또 신축 아파트 등 다이나믹한 시장의 변동을 표본 보정을 통해 그때그때 반영하지 못하다보니 현실과 괴리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부동산 전문가 김현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도 “감정원 통계는 거시경제 상황에서 집값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거나, 집값의 국제 비교에 사용되는 것이지,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보여주는 데 유용한 지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감정원도 “서울 아파트 중위 값 57% 올랐다”
지난 6월 경실련이 KB국민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 3년간(2017년 5월~2020년 5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중위 매매가격은 6억600만 원에서 9억2000만 원으로 52% 올랐다. 부동산114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가구당 평균 매매가격도 2017년 7억125만 원에서 지난 7월 말 10억509만 원으로 올랐다. 3년 새 44% 오른 것이다. 심지어 경실련이 국토부 공개질의를 통해 입수한 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값은 문 정부 들어 5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5월 5억2996만 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 값이 2020년 5월 8억3410만 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감정원의 실거래가격지수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국토부에 신고된 실거래가 전수를 반영해 산출하는 실거래가격지수는 2017년 5월 93.8에서 지난 4월 134.5로 43% 올랐다(기준 100=2017년 11월 가격 수준).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감정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와 실거래가격지수 둘 다 통계청으로부터 승인 받은 국가승인통계”라며 “국토부가 집값 현실과 보다 가까운 실거래가격지수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기준으로 집값 상승 정도를 밝히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거래가격지수와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변동률은 5배 정도 차이 나곤 했는데, 최근에는 그 차이가 더 커져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의 현실성이 더욱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고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물론 실거래가격지수에도 한계가 있다. 실거래가 신고 기간이 거래 완료 후 60일(6월부터는 30일)인 탓에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진 못한다. 60일의 신고 기간 때문에 감정원은 매달 15일 세 달 전 지수와 두 달 전 잠정지수를 발표한다. 발표 시점에서 60일의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거래량이 많거나 적을 때는 통계가 왜곡되기도 한다. 이창무 교수는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실거래가격지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보다는 현실 집값의 흐름을 더 잘 보여 준다. 실제로 실거래가격지수와 KB시세가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 두 통계를 함께 참고하면 시장 파악에 유용하다”며 “실거래가 신고기간이 30일로 단축된 만큼 이 통계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정원 관계자는 “실거래가 신고기간을 30일로 단축한 것이 잘 정책되고 있는지 파악한 뒤 올해 안에 시차를 30일로 단축해 실거래가격지수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