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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29·서울 강동구) 씨는 “더는 미래통합당(통합당)을 지지하지 않으려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이번 4·15 총선 서울 강동을 지역구에서 이재영 통합당 후보를 찍었다. 비례정당도 미래한국당에게 표를 줬다. 그가 통합당을 지지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퍼주기 식 포퓰리즘 정책과 대북정책이 못마땅하기 때문. 그는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싸움만 하는 모습을 보니 통합당이 민주당에 진 게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이 당은 답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포기했다. (통합당이) 한심해서….”
택시회사 간부로 오랜 세월 통합당을 지지해온 최모(61·경기 김포) 씨도 혀를 찼다. 그는 총선 후 통합당이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에게 비대위장을 맡기는 문제로 사분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저마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일갈했다.
총선 참패 후 지지율 6%p 하락
4·15 총선에서 103석 확보(미래한국당 의석 포함)에 그치며 참패한 통합당에 대해 보수 유권자들이 지지를 철회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총선 직전인 4월 13~14일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41%, 통합당은 25%를 보였다. 하지만 총선 2주 후인 28~29일 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43%로 2%p로 높아진 반면, 통합당 지지율은 19%로 6%p가 떨어졌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총선 후 통합당에 실망감을 느낀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보수 유권자들은 “통합당이 반성도 하지 않고 변화도 없다”고 성토한다. 경기 안양에 사는 전업주부 박모(61) 씨는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에 표를 줬지만, 앞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에 더해 민주당의 경제정책이 싫어 통합당을 지지했지만, 총선 후 통합당에 대한 실망감만 더 커졌다. 그는 “통합당이 선거 참패에 대해 반성하고 국민과 나라를 위한 대안 정도는 마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변화도 없다. 졌으면 더 잘해야 하는데, 더 못한다. 미래가 없는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진의원들이 모범을 보이며 기득권을 내려놔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지키려고만 한다. 그럴 바엔 아예 당을 해체하고 싹 갈아엎었으면 한다”고도 덧붙였다.
자영업자 김모(61·대구 북구) 씨 역시 “자강론이니, 비대위니 하며 싸움을 일삼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정말 한심하다”며 “대구 사람이라고 항상 통합당을 지지하리라 여기는 것은 오해”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워낙 몰표를 받다 보니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영남 사람들이 통합당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요즘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는 통합당을 지지해봤자 낙심하기만 할 뿐이라는 사람이 적잖다”고도 전했다. 종교인 김모(57·서울 강서구) 씨 역시 실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 통합당 내 다툼에 여전히 과거 계파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보수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련이 남은 사람들부터 유승민계, 황교안계까지 모두가 과거를 불문에 부치고 새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청산대회라도 가져야 하는데 싸움만 하고 있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젊은 보수 유권자도 통합당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다. 대학생 장모(29·경기 용인시) 씨는 통합당을 ‘매번 리모델링한다면서 간판 하나만 바꿔 다는 가게’에 비유했다. 장씨는 “총선 참패에도 제1야당이라는 권력을 유지하게 돼 그 권력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는 것 아니냐”며 “차라리 완전히 박살나 제1야당 지위도 사라지면 정신을 좀 차리지 않을까 싶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이모(29·서울 서초구) 씨는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그리고 이번 총선까지 보수는 4연패했지만 매번 똑같은 실책을 반복한다. 선거 결과에 대해 반성한다고 해놓고는 보수의 가치를 재건하려는 노력 대신 한두 사람 위주로 새판을 짜려 한다”고 비판했다.
민생에 관심 없는 통합당…“강한 여당이 더 도움 될 듯”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뉴시스]
아예 앞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겠다고 돌아선 보수 유권자도 있다. 민생에 관심 없는 통합당보다 ‘강한 여당’이 자신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을 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전업주부 이모(60·대구 수성구) 씨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있었던 정부의 ‘대구 봉쇄’ 발언에 대한 반감으로 총선에서 통합당을 지지했지만, 더는 통합당에 표를 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의 남편은 대구·경북지역 공장에 연료를 공급하는 사업을 한다. 이씨는 “코로나19 사태로 가동을 멈춘 공장이 많아 남편 사업이 크게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가 심각하게 나빠졌는데도 세력 다툼만 일삼는 통합당이 도움이 될 리 없다. 힘 있는 여당인 민주당을 밀어주는 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취업해 새내기 직장인이 된 현모(24·경기 성남시) 씨는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려 하는데 보증금과 월세가 너무 비싸다. 이래서는 언제 돈을 모을지, 결혼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그간 민주당 정책이 포퓰리즘에 치우쳤다고 생각해 통합당을 지지해왔는데, 돌이켜보면 실제 내게 도움이 되는 정책은 대개 민주당이 추진한 것”이라며 “총선 패배 후에도 싸우기만 하는 통합당은 청년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이 없는 듯해 표를 준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놓았다. 경북 경산의 취업준비생 성모(26) 씨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해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을 지지했다. 그는 “늙은 통합당이 젊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기대한 것이 바보 같았다”며 “다음 선거 때는 청년 민생에 나서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난 극복 위한 실질적 대안 제시해야
4월 17일 오전 미래통합당 당 지도부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통합당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도 보수 유권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통합당은 ‘학습능력이 없는’ 집단이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통합당의 가장 큰 문제는 선거에서 연달아 패했으면서도 혁신이나 체질 개선을 통한 ‘새로움’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금 상태로는 ‘발전적 해체’ 외에는 답이 없다. 이미 국민에게 사망 선고를 받은 당이나 마찬가지인데, 긴급조치를 취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은 정치인이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지만, 서로 싸웠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이어지는 당내 갈등은 보수 지지자뿐 아니라 중도층에게도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야권이 경제난 극복 등과 관련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형준 교수는 “18대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현 통합당) 후보가 득표율 3.6%p 차이로 신승(辛勝)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경제민주화, 맞춤형 복지 등 진보의 가치를 수용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했기 때문”이라며 “영국 노동당이 중도를 끌어안고자 제3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중도층을 선점할 방도를 찾아야만 통합당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