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축구상’ 시상식에 참석한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1988년 연말 첫발을 내디딘 차범근 축구상은 축구인 차범근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현재 한국 축구를 책임지는 선수 대부분이 이 상 출신이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수상자들에게는 일생일대 사건과도 같은 것이라고. 이날 행사에 초청받은 황희찬(2009년 차범근 축구상 대상 수상자)의 부친 황원경 씨는 “선수로서 아무리 많은 우승을 했어도 그와는 비교가 안 될 동기 부여가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행사 주관사는 차범근 축구상이 걸어온 여정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1978년 SV 다름슈타트 98 합류 차 비행기에 오르던 날, 차 전 감독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저는 오늘 독일로 떠납니다. 앞으로 좋은 축구를 배우고 돌아와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더벅머리 청년은 40년이 넘도록 그 약속을 지켜왔다. 노년이 된 지금, 손주뻘 아이들에게 상을 건네며 두 눈 그렁그렁하던 그는 “늘 벅차고 감격스럽다”고 한다. 아래는 차 전 감독과의 일문일답.
“유소년 양성은 축구인 으로서의 사명”
Q. 축구상 시상식만 되면 유달리 감상에 젖는 듯하다.A.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줬고, 내가 마땅히 보답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시대는 참 어려웠다. 그 당시 유소년 양성을 위한 일을 계획한다는 건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긴 시간 동안 이렇게 축구상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 여러 감회가 얽혀 있다. 책임이 무겁다. 작은 풀뿌리 하나라도 더 심어 다행이기도 하다. 주변인들께 항상 감사하고, 나 스스로 한국 축구에 뭔가를 했다는 데 위로도 된다.
Q.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남긴 메시지가 꽤 묵직했다.
A. 나도 아까 영상을 보는데 그 부분에서 울컥했다.(웃음) 사실 꼭 그렇게 안 살 수도 있잖나. 그걸 보면서 ‘이런 걸 사명이라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축구를 시작해보니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더라. 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했고 높은 곳까지도 올라갔지만, 그곳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미래가 안 보이니 얼마나 절망적이었겠나. 그래서 독일행이란 또 다른 꿈을 꿔야 했다.
Q.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막연하게 생각하던 걸 현실로 옮길 결정적 동력 같은 것 말이다.
A. 독일로 향하던 그해 5월이었다. 국제대회를 뛰기 위해 일본에 갔는데, 그곳에서는 이미 ‘타도 한국’을 외치며 축구교실을 시작했더라. 그때 떠오른 한국 축구 환경에 너무 가슴이 아팠고, 나도 결국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독일의 문이 열렸다. 좋은 축구를 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내가 꼭 선진 축구를 배워 돌아오겠다’라면서 먼 길을 떠났다.
‘유소년 교육’ 이야기만 들어도 빛나는 눈
박지성 JS 파운데이션 이사장 [뉴스1]
A.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어려서부터 볼을 만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유년기에 익히는 감각은 이후 훈련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게 바로 한국에서 차범근 축구교실을 연 이유다. 4세 반, 5세 반부터 시작하고자 했다. 아참. 며칠 전 축구교실 등록 신청을 받는데, 영하 날씨에 새벽 4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더라. 너무 감동해 눈물이 다 났다. 우리가 한 일은 축구 문화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유럽처럼 클럽 시스템을 통해 축구뿐 아니라 공부도 병행하는 것들을 시도해왔다.
Q. 그즈음 시작한 축구상도 여러 실험을 거쳐 왔다. 최근에는 대상, 우수상 등으로 순위를 가리지 않고 포지션별 더 많은 선수들을 꼽았다.
A. 꼭 대상 수상자라고 해서 다른 선수보다 잘되란 법은 없었잖나. 순위를 나누는 것보다 모두에게 다 같은 이름으로 시상하는 게 아이들에게도 더 좋으리라 봤다. 공정성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선수들을 보게 돼 좋았다. 이들이 이제는 ‘팀 차붐’이란 이름으로 독일에 가서 현지 선수들과 겨룬다.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차 전 감독과 마주했을 때다. 1986 멕시코 월드컵 30주년, 당대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와 격돌했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대뜸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무엇인지 맞춰보라”는 것이다. 그때 내놓은 답이 ‘축구상’과 ‘축구교실’ 개설이다. 그러더니 되레 질문을 해왔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유망주에 관한 관심이 지대했다. 국내뿐 아니라 스페인, 독일 등 유럽 일대를 돌며 유소년과 청소년 훈련 및 경기를 보고 돌아온 때였다. 이에 “스페인 아이들의 축구는 독일과 어떻게 다르더냐”며 역으로 인터뷰를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 전 감독은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뭔가에 홀린 듯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도 천진 난만히 웃던 인상이 뇌리에 생생히 박혀 있다. 그렇게 지핀 불씨는 이제 후배 축구인들을 통해 번지고 있다. 박지성 JS파운데이션 이사장은 본인 이니셜을 딴 JS컵으로 유소년, 청소년 국제대회를 개최해왔다. 아들인 차두리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최근 FC서울 U-18(서울오산고) 지휘봉을 잡았다. 개인 SNS에 ‘#한국축구뿌리부터튼튼히’라는 해시태그를 달던 그가 이제는 일선 현장에서 열정을 펼쳐 보이려 한다.
유소년 교육에도 세대교체 이뤄져
차두리 FC서울 U-18 감독. [FC서울 제공]
A. 맞다.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웃음) 지성이도 장학회를 만들고, 그 외 다른 후배들도 이런 걸 많이 시도하는 걸 보면서 ‘이게 바로 한국 축구 발전 아닌가’ 싶다. 내가 선배님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또 그 영향이 다음 세대에 무언의 메시지나 동기 부여로 전달된다고 본다.
Q. 그뿐 아니다. 부친의 유소년 육성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관찰해온 차두리 감독도 있다.
A. 두리가 유소년 쪽으로 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다. 이론적으로 책도 많이 봤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것들을 보면서 유소년 축구 교육 현장의 현실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유럽 현지도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최신 축구 또한 익혔다. 일선에 나가고 난 뒤 대화를 많이 한 건 아닌데 여러모로 잘하는 것도 같다. 선수들이 그런 지도는 처음 받아볼 거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 색다른 시도라면 저항도 있을 텐데.
A. 그동안 한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볼 수 없었을 것들이다. 훈련 지도나 생활 지도 등 이런 것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을 거다. 아이들 의식이 바뀌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거기에 적응이 되면 고등학교 축구 전체 분위기가 변할 수 있다. 내가 처음 감독을 했을 때도 그랬듯, 새로운 시도는 늘 부딪히기 마련이다. 생각했던 대로 다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역시 경험이고, 두리는 그 속에서 또 한국 축구 발전에 접목할 뭔가를 찾아갈 것이다.
먼 미래를 내다본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번 축구상 수상자도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려면 족히 10년 안팎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눈앞 현실이 버거울 때도 꿋꿋이 씨앗을 뿌려오며 확인한 게 있다. 아득한 줄로만 알았던 그 날이 꽃과 열매가 돼 돌아온다는 것 말이다.
“나는 한물갔으니 나중에는 차두리 축구교실로 이름을 바꿔야 하려나”라며 웃던 차 전 감독은 한국 축구 꿈나무 육성사업을 쉬이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