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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에 올라 창경으로 미역을 채취하는 모습. [진재중]
우리는 해양 분야를 전공하면서도 그간 이 단어를 듣지 못했다. 얼마 전 특강 때 진재중 강릉KBS PD로부터 “앞으로는 창경바리만 제대로 해도 관광객 서비스나 1인 미디어 활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에 창경바리가 과연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 나섰다.
강릉 시내 기차역에서 112, 또는 113번 시내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내려가면 등명해변에 닿는다. 새해맞이 때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해안 일출 명소 정동진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이다. 11월 어느 토요일 오전, 미리 전화로 약속한 정상록(73) 강릉시 정동1리 어촌계장을 만났다.
정 계장은 “창경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안경 같은 것”이라고 아주 쉽게 설명했다. 창경(窓鏡)은 말 그대로 ‘유리창+거울’인 셈이다. ‘바리’는 일 또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유리창 같은 것으로 수심 10m 이내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를 잡거나 미역 등을 채취하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창경바리다.
정 계장은 “1960년대 동해, 남해, 제주에서 유행했다. 지금은 일부 어민이 어업으로, 또는 체험 관광 서비스로 창경바리를 하고 있다”며 “어촌의 오랜 전통이 점점 발전하는 어선 설비에 밀려나고, 어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옛것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찬 바다에서 해녀는 1시간 남짓 작업할 수 있지만, 창경바리는 더 오래 작업이 가능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봄철 미역 채취 때 절반은 해녀 작업, 절반은 창경바리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창경바리를 할 때 등명해변 쪽에서는 뗏목을, 정동진역부터 심곡항에 이르는 정동2리에서는 배를 이용했다. 등명해변의 크고 작은 바위에 부딪힐 경우 배보다 뗏목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바위 사이에서 조업해야 할까. 정 계장은 “바위 아래서 채취한 미역이 질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물질보다 안전한데 소멸 중
창경. [서덕화]
창경은 가로세로 30×20cm, 높이 40cm 정도의 사각통이다. 위는 뚫려 있고, 아래에 유리를 달았다. 수면에 대고 바닷속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오동나무로 만들어 바다에 잘 뜨고, 손으로 들고 있어도 무겁지 않다. 어부는 창경을 볼 때 무릎을 꿇게 되는데, 이때 무릎이 아프지 않도록 배의 뒤쪽 나무에 스펀지를 덧대놓았다.
창경을 통해 바닷속 미역을 발견하면 ‘낫대’로 채취한다. 낫대는 대부분 가벼운 대나무로 돼 있다. 물속에 쉽게 넣을 수 있게 아랫부분은 단단하고 무거운 박달나무로 만든다. 고기는 뜰채로 건지고 바다 밑 성게는 작살로 잡아 올린다. 채취한 해산물은 뗏목에 올려두는데, 흘러내리지 않게 옆에 칸막이도 대놓았다.
도시인의 창경바리 체험은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구석구석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강릉시는 한때 정동1리를 창경바리 체험 관광지로 가꾸려 했다. 하지만 당시 관광객, 피서객의 호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스노클링과 투명 카누, 배낚시로 방향을 틀었고, 최근에는 서핑이 인기 종목이 돼가고 있다. 정 계장은 “10년 전에는 창경바리가 TV에도 자주 나왔다”며 “그때 창경바리를 했던 어민들은 이제 연세가 많으니 젊은 사람이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동1리 147가구 중 어촌계원은 17명뿐이고 젊은이는 거의 없다.
최근 레저와 스포츠를 즐기려는 어촌 방문객이 증가하고, 창경바리를 체험할 만한 사람도 그만큼 늘었다. 내년 봄에는 창경바리 체험 프로그램이 더 알차게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