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핵추진 순항미사일을 소개하고 있다. [TASS]
러시아의 최신예 탱크 T-14 아르마타가 전승절에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지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특히 적 미사일이나 로켓을 요격하는 최신형 능동방호 장비인 ‘아프가니트’를 장착했다. 아프가니트는 날아오는 대전차 미사일이나 로켓을 단순히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요격탄을 발사해 직접 파괴하는 ‘하드 킬(Hard Kill)’ 방식의 무기다. 125mm 주포는 분당 12발을 발사하며 최대 12km 떨어진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다. 중량은 48t으로 가벼운 편이다. 최고 시속은 80〜90km로 미군의 최신예 전차 M1A2 SEP V3 에이브럼스보다 빠르다. 러시아 국방부는 2025년까지 최대 2300대를 양산할 계획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100대로 줄였다 2021년까지 32대만 도입키로 했다. 게다가 야시경 등 T-14의 일부 부품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제대로 장착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뿐 아니라 성능에도 문제가 있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는 미사일
러시아군이 2017년 12월 핵추진 순항미사일 9M730 부레베스트니크를 시험발사하고 있다(왼쪽). 러시아의 핵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가 비행하는 모습. [mil.ru, 러시아 1 방송]
8월 8일 러시아 북부 아르한겔스크주 백해(白海·White Sea) 연안의 세베로드빈스크시로부터 25km 떨어진 뇨녹사 핵미사일 시험장에서 엔진을 시험하던 부레베스트니크 미사일이 폭발하는 바람에 7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당시 러시아 국방부와 로사톰(국영 원자력공사)은 그동안 부레베스트니크 미사일의 성능 개선 작업을 해왔다. 사망자 가운데 5명은 러시아 실험물리연구소 소속 과학자들이었다. 로사톰은 사고 이틀 후인 10일 성명을 통해 “미사일 액체 추진체의 동위원소 동력원에 공학적, 기술적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비극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용 동위원소 동력원은 사거리를 증가시키고자 소형 원자로를 탑재한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어로 ‘바다제비’라는 뜻을 가진 이 미사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국정연설에서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는 미사일”이라고 자랑한 적이 있고, 2월에는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신무기다.
나토명 SSC-X-9 스카이 폴(sky fall)인 이 미사일은 소형 원자력 엔진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이론상 사거리가 무제한이다. 또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낮게 날 수 있고, 적의 레이더망을 피해 항로도 변경 가능하다. 러시아에서 발사해 미국이나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 모든 곳을 공격할 수 있다. 특히 기존 미사일방어(MD)체계로는 이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천하무적’이라고 자랑해왔다. 러시아가 이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미국은 MD체계 구축을 위해 1972년 소련과 맺었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에서 탈퇴했다. 미국이 새로운 ‘방패’를 만들려 하자 러시아도 새로운 ‘창’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미사일 폭발 사고 당시 대규모 방사능이 유출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사고 직후 대기 중에 노출된 유해 화학물질은 없었으며 방사능 수준도 정상이라고 발표하는 등 방사능 유출을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방사능 유출 문제를 지적하자 러시아 기상환경감시청은 마지못해 신형 미사일 엔진 폭발 사고로 방사능 수준이 최대 16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기관이 방사능 수준 증가를 확인해준 건 이번이 사상 처음이었다.
러시아 기상환경감시청은 세베로드빈스크시 지역의 방사능 감시센터 8곳 가운데 6곳에서 감마선이 평소의 4~16배까지 증대된 것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방사능 수준이 20배까지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서방 미사일 전문가들과 미국 정보기관은 이 미사일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소형 원자로가 폭발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금까지 사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플루토 프로젝트
이런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러시아 정부는 인근 주민들을 제대로 대피시키지도 않고 사고 현장을 봉쇄하는 등 보안 유지에만 신경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세베로드빈스크시 당국은 정확한 피해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에게 한때 대피령을 내렸다 취소하기도 했다. 방사능 유출 소식을 뒤늦게 들은 주민들은 시내 모든 약국에서 앞다퉈 방사능 치료제인 요오드를 구입하기도 했다. 세베로드빈스크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18만5000명이나 된다.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상당수 미사일 전문가들이 소형 원자력 엔진을 미사일에 안정적으로 장착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주장하는 이 미사일의 성능에 의문을 제기해왔다는 점이다. 이 미사일은 핵탄두를 탑재하지 않아도 원자력 엔진을 장착해 핵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비행 도중 폭발하거나 고장이 날 경우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도 1960년대 ‘플루토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핵추진 순항미사일 개발을 시도하다 폐기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이 이 프로젝트를 폐기한 이유는 미사일이 비행 도중 방사성 입자를 지상에 뿌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비밀 소형 핵잠수함 AS-12 로샤리크. ‘톱기어(Top Gear) 매거진’ 러시아판에 우연히 촬영된 모습이다. [톱기어 매거진]
러시아의 스파이 핵잠수함 AS-12 로샤리크.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러시아 유일 항공모함은 3년째 수리 중
러시아의 유일한 항공모함 아드미랄 쿠즈네초프의 모습. [러시아 국방부]
길이 305m, 폭 72m로 5만9000t급인 쿠즈네초프호는 현재 러시아 북해함대에 소속돼 있다. 러시아 해군은 2017년 9월부터 시작한 엔진, 이착륙 장치, 전자 장비 등에 대한 현대화 작업을 거쳐 이 항모를 2020년 말까지 재배치할 예정이지만, 부품과 예산 부족 등으로 작업을 제때 마칠지는 불확실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중국은 러시아 측에 이 항모를 자국 조선소에서 수리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핵심 기술 유출 우려와 중국에서 자국 항모를 수리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이번 핵추진 순항미사일 폭발 사고는 8월 2일 미국과 러시아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한 이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양국의 치열한 군비경쟁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NF는 양국의 핵개발 경쟁을 막는 안전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양국의 군비경쟁에 따라 또 다른 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도 2021년 만료 후 갱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는 입장인 만큼 앞으로 새로운 무기와 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가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경쟁에 나설 경우 자칫하면 대형 핵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국제사회는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