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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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관투자자도 안 사는 걸 개인에게 팔다니

해외금리 연계 DLF·DLS, +4%에서 -95% 사이 움직이는 초고위험 상품 1994년 美 오렌지카운티 파산시킨 파생상품과 유사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8-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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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사진 제공 ·우리은행]

    [박해윤 기자, 사진 제공 ·우리은행]

    1994년 2월 4일 앨런 그린스펀이 이끌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하루짜리 단기금리를 연 3%에서 3.25%로 인상했다. 그린스펀 의장이 경기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소폭의 금리인상이 투자를 다소 위축시키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결정은 미국 경제사에 남을 대규모 금융 스캔들로 이어진다. 금리 연계 파생상품을 통해 ‘저금리’에 베팅한 지방정부와 투자은행 등 기관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당시는 3%가 저금리였다). 

    투자회사 출신으로 파생상품 전문가인 프랭크 파트노이 샌디에이고대 법대 교수는 저서 ‘전염성 탐욕’(필맥/2004)에서 이 금융 스캔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재무 책임자 로버트 시트론을 꼽는다. 시트론은 오렌지카운티 자금에 각종 대출까지 얹어 200억 달러(약 25조 원)를 ‘금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파생상품에 올인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자 17억 달러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오렌지카운티는 그해 12월 파산을 신청한다.

    “은행 직원이 실적 도와달래서 가입했다”

    25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서 오렌지카운티의 파산과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금리가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많게는 원금의 95%까지 잃을 위기에 처했다. 8월 20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국내 금융회사가 판매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DLS·Tip 참조) 잔액이 8224억 원으로(8월 7일 기준), 이 중 영국과 미국의 이자율스와프(CMS)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은 원금의 56.2%,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은 원금의 95.1%가 날아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표 참조). 

    문제는 투자자가 대부분 개인이며, 해당 상품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은행 직원의 강한 권유로 가입한 정황과 주장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8224억 원 중 개인이 투자한 금액은 7326억 원으로 전체의 89%에 달한다. 개인투자자는 모두 3645명으로 인당 평균 2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DLF·DLS의 최소 가입금액은 1억 원이다. 

    이들 상품을 주로 판매한 곳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우리은행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영국 금리 연계 상품을 2757억 원, 3~5월 독일 국채금리 연계 상품을 1255억 원어치 팔았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이들 상품은 올해 들어 처음 판매한 ‘신상품’이다. 하나은행 노동조합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16년 10월부터 미·영 금리 연계 DLF를 판매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누적 판매가 2조 원가량 된다. 현재 잔액은 3876억 원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안전한 상품으로 믿고 가입했다” “은행에서 독일이라는 나라가 망해서 없어지지 않는 한 절대 안전하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이들 파생결합상품에 투자한 개인들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어머니가 우리은행 고객이라는 한 참여자는 “항상 얼굴 보던 부지점장이 진짜 좋은 상품이라며 실적을 맞춰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어머니가 1억 원짜리 상품에 가입했다”며 “투자 성향 분석도 ‘기대수익이 높다면 위험이 높아도 상관하지 않음’ 등으로 은행 측이 답안을 작성한 뒤 서명만 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참여자는 “DLF·DLS 피해자는 대부분 은행 점포의 주거래 고객으로, 정기예금이 만기돼 은행을 찾았다 자주 보던 프라이빗뱅커(PB)가 좋은 상품이 나왔다며 지금까지 여러 번 (수익을 달성하고) 조기 상환된 상품이니 걱정 말고 넣으라고 권유해 가입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은행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구현주 변호사는 “소송을 의뢰하거나 상담을 원하는 개인투자자는 고령자가 많고, 은행으로부터 ‘안정적이며 원금이 손실 난 적 없는 상품’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들 한다. 초고위험 상품인 줄도 몰랐다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해외금리 연계 DLF·DLS는 투자성향 등급 1단계(공격투자형)에 해당하는 초고위험 상품으로, 2~5등급(적극투자형·위험중립형·안정추구형·안정형)으로 평가된 투자자에게는 권유할 수 없는 상품이다.

    Tip

    • DLS(Derivatives-Linked Securities) 파생결합증권. 기초자산의 가격, 이자율, 지표, 단위 또는 이를 기초로 하는 지수 등의 변동과 연계해 미리 정해진 방법에 따라 지급 금액 또는 회수 금액이 결정되는 권리가 표시된 증권. 금, 원유, 국고채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는다.
    • DLF(Derivatives-Linked Fund) 파생결합펀드. DLS를 편입한 펀드다.


    우리·하나은행만 적극 판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기관투자자도 잘 사지 않는 상품을 개인에게 적극적으로 판매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F·DLS는 12개월 만기 기준으로 각각 3.5%, 4%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그래프 참조).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1% 후반대로 주저앉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괜찮은 중수익으로 볼 수 있지만, 기대수익에 비해 위험도가 매우 높다. 기초자산으로 삼은 미·영 CMS 금리나 독일 국채 금리가 ‘수익 구간’을 벗어나 하락하면 원금을 거의 대부분 잃을 수 있게끔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 전문가는 “기관투자자는 고작 3~4%에 불과한 수익을 얻고자 그렇게 큰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DLF·DLS 중 법인투자자가 사들인 금액은 898억 원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했다. 

    특히 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F·DLS의 경우 판매금액(우리은행 1255억 원, NH투자증권 11억 원) 전체가 이미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이 상품은 독일 국채 금리가 -0.25% 이상인 경우 연 4% 확정금리를 지급하는데, 세계경기 둔화로 금리가 올해 들어 급격히 하락해 현재 -0.6% 이하로 내려앉은 상태다. 또 다른 투자업계 전문가는 “역사적으로 볼 때 독일 장기국채 금리가 -0.3%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상품이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됐던 3월은 이미 마이너스로 떨어진 금리가 하락세를 계속 이어가던 때”라며 “충분히 추가 하락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은행과 투자자가 모두 이를 간과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주가연계증권(ELS)은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삼을 뿐, DLS와 상품 구조가 거의 같다. 하지만 위험성은 DLS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때 홍콩지수가 급락하면서 크게 손실이 난 이후 원금을 보장하는 식으로 위험성을 낮춘 상품이 다양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을 판매한 은행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두 곳뿐이다. KB국민은행도 262억 원어치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을 판매했지만(8월 7일 잔액 기준) 우리·하나은행과 달리 ‘스텝업’ 구조로, 금리가 하락하면 수익이 나기 때문에 현재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 우리에게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을 팔자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이미 해외 주요국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추세여서 담당 실무자 선에서 팔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고객에게 판매하는 투자상품은 은행 내 상품선정협의회와 상품선정위원회를 거쳐 결정하는데, 협의회 안건으로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이 해외금리 연계 DLF를 마지막으로 판매했던 때는 2017년. 당시에도 누적 판매액이 80억 원에 그쳤을 정도로 주요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4월부터 프라이빗뱅커들도 동요

    거의 전액이 손실 위기에 놓인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은 대부분 우리은행이 판매했다. [사진 제공 ·우리은행]

    거의 전액이 손실 위기에 놓인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은 대부분 우리은행이 판매했다. [사진 제공 ·우리은행]

    금융계에서는 우리·하나은행이 초고위험군의 해외금리 연계 DLF·DLS를 적극 판매한 것은 비(非)이자 수익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은행은 이들 상품 판매액(투자원금)의 1~1.5%에 해당하는 선취 판매수수료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1억 원당 100만~150만 원 수익을 내는 셈이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이들 상품의 만기는 4개월에서 1년으로 짧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이 만기 때마다 새 상품으로 갈아타면 새로운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하나은행 노동조합은 8월 20일 성명서를 통해 “금리 하락 추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감지한 PB들이 4월부터 관련 부서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경영진이 무능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해외금리 연계 DLF·DLS의 설계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점검하고, 불완전 판매 관련 분쟁조정 절차를 다음 달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구현주 변호사는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가 나온 이후 소송을 통해 민법 제109·110조에 따라 사기나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주장하고, 불완전 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염성 탐욕’에서 파트노이 교수는 오렌지카운티를 파산에 몰아넣은 시트론이 금융 지식이나 경험이 아주 모자란 인물이었음을 거론하며 ‘일반 시민은 (파생상품을) 아예 모르고 지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조나단 머세이 코넬대 법대 교수의 충고를 인용한다. 보통 사람들이 복잡한 파생상품을 알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은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편익에 비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일부 은행의 불완전 판매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며 “개인들도 무조건 은행만 믿지 말고, 투자하기 전에 투자상품의 내용과 위험성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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