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심비’ ‘미코노미’ ‘포미족’은 최근 산업 전반을 강타하며 소비자 트렌드의 중심에 떠오른 단어들이다. 나심비(나+심리+가성비)는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지갑을 여는 것에 망설이지 않는 소비 심리를 말한다. 미코노미(me+economy)는 소비 가치를 자신에게 집중하고, 포미(for me)족 역시 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런 유행에 발맞춰 개인의 개성과 취향에 맞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바람이 불고 있다. 커스터마이징이라는 단어는 ‘주문 제작하다’라는 뜻의 ‘customize’에서 나왔다. 소비자 요구에 맞춰 제품 또는 기능을 제작하거나 변경하는, 일종의 맞춤제작 서비스를 일컫는다. ‘나’에게 최적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커스터마이징 열풍의 주축에 있는 건 밀레니얼 세대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그들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 불릴 만큼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하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한다. 이로 인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도 개척해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커스터마이징에 열광하는 이유는 타인과는 다른 나만의 것을 추구하고 차별화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라며 “특히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고 SNS를 통한 과시문화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로지 ‘나’를 위한 화장품과 옷을 꿈꾸다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겔랑의 ‘루즈G’(왼쪽)와 크리니크의 ‘크리니크 iD’. [사진 제공 · 겔랑 크리니크]
일찍부터 커스터마이징에 특화된 분야는 뷰티업계다.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조합할 수 있도록 가짓수를 다양화한 제품 출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커스터마이즈 립스틱’으로 불리는 ‘겔랑’의 ‘루즈G’는 42개의 컬러(각 3.5g·3만8000원)와 25개의 케이스(더블 미러 캡·개당 2만5000원)를 갖췄다. 원하는 컬러와 케이스를 선택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데, 2030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회사원 표모(27) 씨는 루즈G 케이스를 5개 갖고 있다. 그는 “립스틱도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며 “옷에 맞춰 케이스를 바꿔 사용할 수 있고, 나만의 특별한 패션이 완성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3월 출시된 ‘크리니크’의 부스팅 로션 ‘크리니크 iD’(125mℓ·5만5000원대)는 피부 타입에 따른 3가지 베이스 로션과 피부 고민에 맞는 5가지 액티브 부스터로 구성돼 있다. 자신의 피부에 맞게 베이스 로션에 액티브 부스터를 끼우면 완성. 총 15가지 부스팅 로션 선택지가 있는 셈이다.
정보통신기술이 접목된 맞춤형 의류 생산 매장 ‘위드인24’의 내부 모습(왼쪽)과 키오스크. [사진 제공 · 한국패션산업협회]
패션업계는 예전부터 커스터마이징에 집중해왔다. 옷이나 신발, 가방을 리폼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패션템을 만드는 일이 이제는 특별하지 않다. 최근에는 수작업 위주의 패션 커스터마이징이 한층 진화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됐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서울시, 한국패션산업협회, KT 등이 협력해 4월 서울 동대문 롯데피트인에 문을 연 ‘위드인24(Within 24)’가 그런 곳이다. 개인 맞춤형 의류 생산 시범 매장인 이곳에서는 16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선보인 옷을 취향에 맞게 고쳐 주문할 수 있다. 기본 디자인을 고른 뒤 ‘디자인 커스텀 키오스크’를 통해 기호에 맞게 소매나 컬러를 바꾸는 등 디자인을 선택한다. 그 후 3차원 아바타를 생성해 옷을 입혀보고, 마음에 들면 주문하는 방식이다. 주문 즉시 디지털·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생산협력업체로 패턴이 전달되고, 24시간 안에 제품이 완성된다. 한국패션산업협회 관계자는 “동대문에 제조사와 원단사가 모여 있어 빠른 맞춤옷 제작이 가능하다”며 “여성용 여름옷 가격은 평균 15만 원”이라고 말했다. 동대문 기성복에 비하면 비싸지만, 맞춤옷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그 이유는 시범 매장이라 예산을 지원받고, 패턴·재단·봉제 공장과의 직거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맞춤옷 제작 과정에서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는 공정은 디지털 자동화 덕분에 추가 제작비가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격 인상 폭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9월과 10월에는 백화점 팝업 스토어도 열 계획이다.
모듈화 도입으로 가전·가구의 커스터마이징 확산돼
온라인 ‘인테리어 카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삼성전자 냉장고 ‘비스포크’(왼쪽)와에넥스가 선보이고 있는 커스터마이징 주방 시스템 ‘키친 팔레트 시리즈’.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사진 제공 · 에넥스]
다품종 소량생산이 어려웠던 대형가전과 가구도 모듈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졌다. 수요자 기반에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홈족(Home族)’ 트렌드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수십만, 수백만 원이 넘는 가격이라도 자신이 원한다면 아낌없이 제품을 소비하는 층이다.
최근 온라인 ‘인테리어 카페’에서 단연 화제는 6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인테리어 맞춤형 냉장고 ‘비스포크’다. 디자인 문의부터 사용 후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올라와 있다. 10월 결혼을 앞둔 필라테스 강사 이모(29) 씨도 혼수로 이 제품을 구입했다. “일반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각기 사면 디자인이 달라 예쁘지 않다”며 “원하는 대로 조합해 보기 좋게 주방을 꾸밀 수 있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비스포크(bespoke)’는 맞춤형 양복이나 주문 제작을 뜻하는 단어다. 이 냉장고는 1도어에서 4도어까지 총 8개 타입의 모델로 구성돼 있다. 가족 수, 식습관, 라이프스타일, 주방 형태에 따라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다. 도어 전면 패널도 선택지를 다양화해 소재는 3가지, 컬러는 9가지로 구성됐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생산을 위해 주문 제작이 가능한 방식으로 일부 공장 라인을 변경했다. 강점으로 꼽히는 공급망 관리(SCM) 시스템도 비스포크 제작에 맞췄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원하는 스타일을 구성하면 색상과 재질 등이 시스템을 통해 전달되고, 바로 공장에서 제품이 조립된 뒤 배송 처리된다. 각 단계마다 주문에 맞게 생산되는지 철저히 관리한다고 한다. 출고가는 104만9000~484만 원. 기존 일반 냉장고와 비교할 때 가격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삼성 냉장고 구매자의 반 이상이 비스포크를 찾는다”고 전했다.
자유롭게 조합해 완성하는 ‘스트링 시스템’ [사진 제공 · 에잇컬러스]
에넥스는 지난해 국내 주방 브랜드 최초로 커스터마이징 주방 시스템인 ‘키친 팔레트 시리즈’를 선보였다. 가구 구성 요소를 모듈화해 5가지 도어 형태, 13가지 도어 컬러, 15가지 손잡이를 제공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지현 씨는 “소장 가치가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모듈형 가구도 가격 부담은 있지만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들의 ‘최애’ 제품은 스웨덴 건축가 닐스 스트리닝의 ‘스트링 시스템’. 철을 이용한 기본 패널에 선반, 책상, 서랍, 캐비닛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다. 책장, 장식장, 화장대, 책상 등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선반 3개와 플로어 패널 2개, 책상으로 이뤄진 스트링 시스템의 경우 60만 원대다.
속도 붙는 커스터마이징 영역의 다양화
현대자동차 베뉴의 다양한 튜익스 상품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
얼마 전에는 커스터마이징 여행 플랫폼 ‘트래블메이커’도 오픈했다. 여행지, 예산, 일정, 인원수, 가이드 스타일, 이동 수단 등 20가지의 여행 조건을 고르면 이를 분석해 맞춤 여행을 제작하거나 연결해준다. 자유여행을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뿐 아니라, 장애인 또는 어린아이를 둔 가족 단위 여행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커스터마이징 브랜드 ‘튜익스(TUIX)’를 운영 중이다. 7월에는 초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베뉴(VENUE)’를 출시하며 다양한 튜익스 상품을 선보였다. 이 차량은 적외선 무릎워머, 스마트폰 IoT(사물인터넷) 패키지, 오토캠핑용 공기주입식 에어 카텐트, 프리미엄 스피커, 반려동물 패키지 등을 선택해 ‘나만의 차’로 꾸밀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커스터마이징의 확산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제품 탐색이나 구입은 ‘나’에 대한 투자와 동급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생산비 절감 효과로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는 문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