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디오시네마]
일본 영화 ‘13년의 공백’은 사라졌다 어느 날 나타난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담담하게 그려낸 소품 같은 영화다. 71분의 짧은 러닝타임과 평이해 보이는 극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는 여운과 잔상이 만만치 않다.
나란히 위치한 두 절에서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자들의 장례식이 동시에 거행된다. 한 곳은 조문객이 빽빽이 들어차고, 다른 한 곳은 찾는 사람이 드물어 더욱 초라하게 보인다. 영화는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서로 다른 장르의 두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반부는 아버지가 떠나기까지 가족의 고난을 회고하는 가족드라마고, 후반부는 장례식에 온 조문객이 각자 망자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는 한 편의 코믹한 소동극이다.
그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두 아들은 그를 싫어했다. 노름꾼이던 아버지 마사토(릴리 프랭키 분)는 가정에 무심했고, 어느 날 “담배를 사러 간다”며 떠난 뒤 소식이 끊긴 채 13년이 흘렀다. 남겨진 가족의 삶은 눈물겨웠다. 어머니 요코(간노 미스즈 분)는 어린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면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한다. 날이 밝을 땐 온갖 육체노동으로 몸을 혹사하고, 밤이 되면 유흥가로 출근한다. 공부를 잘하는 장남 요시유키(사이토 다쿠미 분)는 엄마를 대신해 집 안 살림을 도맡는다. 야구 선수가 꿈이던 둘째 코지(다카하시 잇세이 분)는 어느 날 3개월 시한부 처지로 나타난 아버지를 어쩔 수 없이 만나러 간다.
코지의 기억 속 아버지는 무능했고, 무책임했으며, 자유로웠다. 야구를 성의 있게 가르쳐준 아버지는 재미있고 따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뒤 그를 잊고 살았다. 가족을 버린 그는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펼쳐진다.
화장 전 그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순간, 조문객들이 마사토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한다. 각자 마사토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 추억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고귀하게 만드는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웃기고 엉뚱한 것들이다. 그는 분명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소소하고 재미난 추억을 만들어줬다. 그는 한없이 착했고, 노래를 불렀고, 마술을 배웠으며, 야한 사진을 모았고, 돈을 그냥 주는 사람이었다.
요란하게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는 이 영화의 장례식 장면에서 관객은 저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곧 닥칠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오랜 세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았지만 서로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통곡하는 사람은 없어도 작은 기억만으로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면 그 인생은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을 둘러싸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깊이 있는 영화는 장남 역을 연기하는 배우 사이토 다쿠미의 연출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