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은퇴하면 세상이 끝날 줄 알았다
이아손 지음/ 조금희 그림/ 행복한작업실/ 256쪽/ 1만4800원
“은퇴 후 노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세요.” 40, 50대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즉시 “연금을 비롯해 노후에 쓸 자금을 모으고 있고, 사람들과 어울릴 사회 활동도 마련했고, 아내(남편)와 같이할 취미도 개발 중이고….” 이렇게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안 될 것이다.
100세 시대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멀게만 느껴져 당장의 고민거리에서 치워버린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돈 있으면 특별히 힘들 게 없지 않나”라며 방치하고, 경제적으로 빠듯한 사람은 “지금 먹고살기도 힘든데 노후까지 대비할 여력이 없어.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회피한다. 근거 없는 낙관과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은 저자 말대로 ‘제2의 인생’이다. 출퇴근하는 것도, 자녀와 함께 하는 생활도 끝나고 오직 자신과 배우자만이 새롭게 걸어가야 할 길이다.
올해 만 50세인 저자는 스스로에게 7가지 질문을 던졌다. 생활고를 겪고 있는지, 외롭거나 쓸쓸하지는 않은지, 노인성 등 갖가지 질병에 어떻게 대처할지, 치매 등에 걸려 가족의 짐이 되는 상황에는 어떻게 할지, 문화를 향유하고 레저를 즐길 만큼 생활비가 넉넉한지,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자녀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등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런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노후 준비가 시작된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연금(국민, 주택, 개인) 이야기나 저자 주변 지인의 노후 대책에 대한 다양한 사례는 무릎을 탁 칠 만큼 새롭다기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저자가 강조하는 ‘은퇴 유목’도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의 은퇴 버전처럼 보인다. 부부금슬이 좋아야 하고, 자녀와 경제적으로 이별하라는 얘기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조언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 책의 강점이 있다. 이것들을 저자가 촘촘하게 누벼 차근차근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놓으니 ‘나도 은퇴 후 계획을 잘 세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불안하면 회피하고 싶은 것이 본능이다. 은퇴 후가 불안하다면 이 책이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 1등주에 투자하라
조용준 지음/ 한스미디어/ 336쪽/ 1만7500원
주식투자의 본질은 기업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 가치는 하루아침에 자라나지 않는다. ‘장기’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장기투자에 앞서 반드시 숙고할 것이 있으니, 미래 향방을 예측하는 메가트렌드다. 향후 10년을 지배할 메가트렌드는? 답은 쉽다. 4차 산업혁명이다.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워런 버핏이 최근 생각을 고쳐먹고 애플과 아마존 주식을 대규모로 매수한 사실을 보더라도 유망한 장기투자 종목은 4차 산업혁명 관련주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10년 후 크게 성장해 있을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기업은? 아무도 쉽게 확답할 수 없는 이 질문과 관련해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인 저자는 그 후보 리스트를 명료하게 밝힌다. 미국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세일즈포스닷컴과 중국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그리고 일본 소프트뱅크다. 너무 잘 알려졌고,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른 기업들이지 않느냐고 반문하기 전 각 기업이 속한 시장의 규모와 전망, 사업 구성과 매출 현황, 수익성 분석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책은 일등 기업에 대한 투자만 독려하진 않는다. 한국 코스닥이 혁신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우려면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산 자들
장강명 지음/ 민음사/ 384쪽/ 1만4000원
노동 현장에 있는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나아지는 건 딱히 없다.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작가는 여러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그 속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비인간적 경제시스템을 고발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알바생을 자르려 고군분투하는 직장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알바생 자르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프랜차이즈 빵집, 한 개의 개인 빵집 가족들의 생존기를 다룬 ‘현수동 빵집 삼국지’, 철거 예정인 재개발 예정지에서 불안에 떨며 남은 날들을 버티는 철거민의 얘기를 다룬 ‘사람 사는 집’ 등 소시민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 392쪽/ 2만 원
일제는 모두 9개의 제국대학을 뒀다. 이 중 조선 경성제대와 대만 타이베이제대를 빼면 본토에 7개가 있었다. 경성제대의 경우 법문학부, 의학부, 이학부 등 3개 학부밖에 없었으나 도쿄제대와 교토제대는 7개 학부를 갖췄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들 7개 제국대로 유학 간 한국인은 1000여 명. 정종현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그중에서 1, 2위를 다퉜던 도쿄제대와 교토제대의 조선인 졸업생 · 동창생 339명의 명부를 작성하고 이들이 귀국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추적했다. ‘출세’냐 ‘지사’냐를 놓고 고민하던 이들의 내면세계도 함께 들여다봤다.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크리스티 앤더슨 지음/ 이철희 옮김/ 후마니타스/ 252쪽/ 1만5000원
미국의 ‘뉴딜’ 하면 1930년대 초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테네시강 유역 개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뉴딜은 소수파였던 민주당이 이전까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권자를 성공적으로 ‘동원’함으로써 다수파로 변신한 ‘뉴딜연합’의 의미가 강하다. 민주당은 뉴딜연합 이후 30년 가까이 미국 정치를 주름잡았다. 민주당은 어떻게 뉴딜연합을 이뤘을까. 답은 사회보장법과 와그너법, 그리고 세제개혁에 있다. 대공황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던 사회경제적 약자, 이른바 ‘잊힌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기 위한 정책을 주도함으로써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한 것이다.
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창비/ 312쪽/ 1만5000원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평범한 삶의 의미를 짚는 소설가 윤성희의 신작. 주인공 형민은 첫 작품이 국민드라마로 불릴 정도로 성공했지만, 이후 연예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아역배우 출신이다. 왕년의 스타는 평범한 능력으로 비범한 삶을 견딘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촘촘한 설정과 세밀한 묘사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마치 현실 세계 어딘가에 실제로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며 삶을 살아내는 형민과 주변 인물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형민의 삶을 온전히 독자의 눈앞에 옮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