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유사한 장면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주인공 타곤(장동건 분)이 앉은 왕좌는 ‘왕좌의 게임’ 속 철왕좌를 빼닮았다. [사진 제공 · tvN, 사진 제공 · HBO]
일례로 ‘아스달 연대기’에서 아스달과 그 남부 평야지대를 가르는 대흙벽은 ‘왕좌의 게임’에서 웨스테로스 칠왕국에 사는 문명인과 그 북부에 사는 야인을 가르는 거대한 빙벽을 빼닮았다. 심지어 도르래를 이용해 백척간두 절벽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승강기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왕좌의 게임’의 원작소설 제목 ‘얼음과 불의 노래’에 빗대 ‘마늘과 쑥의 노래’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다. 1회부터 마늘과 쑥이 불쑥 등장하면서 상고시대 아스달이라는 가상공간을 무대로 한국 단군신화를 변주해 고대국가 설립을 담아낸 판타지 사극임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탄야(김지원 분) 주변에 ‘흰늑대할머니’의 환영이 어른거리는 장면(왼쪽)은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연상케 한다. [사진 제공 · tvN, 사진 제공 ·스튜디오 지브리]
구석기 인류가 청동기시대에 등장?
‘아스달 연대기’의 ‘뇌안탈’(왼쪽)은 유럽에서 3만 년 전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을 연상케 한다. ‘왕좌의 게임’의 야인(와이들링)처럼 해골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사진 제공 · tvN, 사진 제공 · HBO]
그런데 ‘아스달 연대기’에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한동안 공존한 네안데르탈인(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을 모델로 했음이 분명한 ‘뇌안탈’이 등장한다. 뇌안탈은 피가 푸르고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와 힘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현생인류보다 체구가 크고 힘이 센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의 변용이라는 점은 그 이름에서부터 확인된다.
문제는 네안데르탈인은 대략 35만 년 전 유럽에 처음 등장하지만 아무리 늦게 잡아도 3만 년 전 무렵 멸종됐다는 점이다. 현생인류와 아무리 오래 공존했다 해도 구석기시대에 사라진 고인류다. 그런데 기원전 8000년쯤 시작된 신석기시대를 넘어 청동기시대까지 생존했다는 설정은 좋게 말해 탈(脫)역사요, 나쁘게 말하면 반(反)역사다.
드라마에선 이 뇌안탈과 현생인류의 혼혈인간도 등장한다. 보라색 피를 지닌 이그트다. 주인공인 은섬(송중기 분)도 그중 하나다. 이는 피가 보라색이라는 상상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과학적 사실에 부합한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유전자가 전혀 다르고, 그래서 짝짓기와 교배가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염기서열 30만 쌍을 꼼꼼히 분석한 결과 유럽인 가운데 4%가량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 2007년 이스라엘 한 동굴에서 발굴된 인류의 두개골을 연구한 결과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렌시스 간 혼혈여성이라는 것이 2015년 규명됐다. 하지만 그 시점은 5만5000년 전으로 역시 구석기시대였다. 따라서 이그트가 존재했다 해도 기원전 3500~2333년 사이에는 이미 인간화가 진행돼 차별성을 띠기 어렵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나 유적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군과 연계할 그 어떤 개연성도 없는 상태다.
한자 이름과 등자는 또 어쩌나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로 문명에 물들지 않은 채 자란 주인공 은섬(송중기 분)은 ‘왕좌의 게임’에서 신석기 시대 순수영혼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 ‘숲의 아이들’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 HBO, 사진 제공 · tvN]
한자는 갑골문을 그 기점으로 잡더라도 기원전 1300년이 돼야 등장한다. 그런데 기원전 3000년 전후, 그것도 한국 건국설화를 변용한 드라마에서 한자 이름을 지닌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기마(騎馬)문화에 대한 시대착오도 황당하다. 주인공 은섬이 청동기 초기 문화에 진입한 와한족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문명사회에 진입한 아스달 부족연맹이 와한족을 공격해 그들을 노비로 끌고 간다. 이에 맞서는 은섬은 이때 말안장도 없이 겨우 말을 타는 반면, 아스달 부족연맹은 등자(발받침대)까지 달린 말안장 위에서 마상궁술을 펼친다.
인간이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500년 무렵으로 추정되니, 은섬을 통해 기마술에 눈뜨게 된다는 설정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대국가가 세워지기 전 아스달 부족연맹이 등자를 활용해 기마궁술까지 자유자재로 선보인다는 설정은 어불성설이다. 안장은 기원전 4세기쯤 철기시대가 된 뒤에야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에 의해 등장한다. 등자가 일반화된 것은 중국의 경우 2세기 전후고, 유럽에선 그보다 600년 뒤인 8세기 때 일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 같은 유럽 판타지는 물론, 일본 신화에 토대한 ‘원령공주’가 중세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여기 있다. 인류가 당연히 누린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총기와 기계문명을 제외하면 대략 중세 때 완비되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하고 무모하게 고대시대로 뛰어들어 좌충우돌하는 ‘아스달 연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 ‘단적비연수’(2000)가 떠오른다. 중세와 현재를 넘나드는 한국적 판타지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가 대성공을 거두자 무대를 상고시대로 옮겨 속편을 제작했지만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참패를 맛본 영화다. 20년 전 한국 영화계가 겪은 시행착오를 한류 선두주자가 된 한국드라마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