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 국가대표트레이팅 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는 이강인(발렌시아CF). [동아DB]
지난번 U-20 월드컵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2년 전 이맘때, 대회 반년 전 급작스레 지휘봉을 잡게 된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이 부랴부랴 팀을 쇼케이스에 세웠다. 조련 기간이 짧아 어설픈 구석도 있었지만, 이들을 향한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명문 구단 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인 백승호, 이승우가 총출동해 국가대표팀에 버금가는 인기를 몰고 다녔다. 16강에서 떨어졌지만, 당시 멤버 가운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 획득과 파울루 벤투 감독의 국가대표팀 승선을 이룬 이도 꽤 됐다.
이번 폴란드 U-20 월드컵도 기대가 크다. 만 18세 나이에 이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데뷔를 일군 ‘특급’ 이강인이 버티고 있다. 월반했음에도 두 살 많은 형들 틈바구니에서 에이스로 팀을 진두지휘한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정우영도 있다. 이처럼 한국 축구의 미래로 꼽히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2년 전 U-20 대표팀과 현 U-20 대표팀을 모두 경험한 한 코칭스태프는 “개개인의 기량부터 팀 전체 밸런스까지 승호, 승우 때보다 나은 거 같다”고 말했다.
4월 23일 정정용 감독의 U-20 대표팀이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집결했다. 이강인은 소속팀 일정으로 하루 늦게 입소했다. 훈련 합류만으로도 이슈가 되면서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A매치에 버금가는 취재 열기였다.
이윽고 이강인의 스탠딩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강인은 유년 시절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레 스포트라이트에 노출됐지만 대중의 관심을 그리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머리를 물들이거나 도발적인 언행을 보였던 몇몇 선배와 달랐다.
이강인은 이날 “축구란 11명이 함께하는 거니까요”라며 동료들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했다. 또 본인과 정우영 등이 관심받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형들과도 잘 맞춰야죠”라며 모두를 강조했다. 아직 앳되지만 특정 선수만 부각되는 ‘원맨팀’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이강인은 자신이 받고 있는 관심의 화살을 능숙히 돌리면서 ‘원팀’으로 끌고 갔다.
어차피 핵심은 이강인
5월 2일 경기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정용 U-20 대표팀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하지만 정 감독은 스페인에 체류 중인 이강인을 아무 때나 불러올 수 없었다. 플랜A의 주축이 될 핵심 선수임은 분명하나 함께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어쩌면 플랜B는 울며 겨자 먹기였다. 감독 처지에서는 난감한 노릇이다. 정 감독은 폴란드행 비행기가 뜨기 직전 통화에서도 “할 만큼 하긴 했는데 같이 훈련한 게 얼마 안 돼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U-20 대표팀은 4-1-4-1과 4-2-3-1을 혼용해왔다. 이강인은 두 형태 모두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바 있다. 다만 대회 직전 스리백으로 옮겨가려는 모양새다. 최전방에 투 스트라이커를 배치하는 3-5-2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하나 놓는 정삼각형일 때 3-4-1-2, 반대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하나 놓는 역삼각형일 때 3-1-4-2로 나뉜다. 이런 포메이션은 궁극적으로 이강인을 자유롭게 풀어놓겠다는 것이다. 중원 형태가 정해져 있을지라도, 이강인에게 최전방 공격수 바로 아래에서 공격 전반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임무를 맡길 전망이다.
축구에서 골이 나오려면 슈팅 직전 장면을 연출할 기술자의 존재가 필수다. 패스 방향에 오차가 없고 강약 조절이 완벽해야 한다. 특히 상대 수비진을 순간적으로 흩뜨리는 ‘속도 변화’가 절실한데, 이 부분은 후천적 노력은 물론 선천적 재능에도 어느 정도 기대야 한다. 세계적으로 해당 포지션 선수의 몸값이 비싼 것도 그 때문. 이 역할을 떠안을 이강인의 존재만으로도 U-20 대표팀의 전력은 몇 배나 뛰었다.
수비만 탄탄하다면 좋은 성적 가능
이강인과 함께 U-20 대표팀의 주축을 맡고 있는 정우영(바이에른 뮌헨). [FC 바이에른 뮌헨 트위터]
“그래도 우리 팀 공격은 유럽, 남미팀들과 견줘도 해볼 만할걸요.”
U-20 대표팀 소속으로 스페인 무르시아 전지훈련 등에서 여러 팀과 붙어본 소감을 반영했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U-20 대표팀은 이강인 말고도 특급 윙어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고교 졸업 뒤 바이에른 뮌헨과 정식 계약을 체결한 정우영, 아주대를 거쳐 광주FC 유니폼을 입은 엄원상 등이다. 축구는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갈리기 마련인데, 이 두 선수의 속도라면 상대도 분명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까이 있는 공을 먼저 따낼 수 있는 잔 스텝에 능하고, 가속을 붙여 보폭을 넓혀나가는 주력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 정우영은 유럽에서 1년 반 동안 뛰며 수준급 선수들과 겨뤄본 경험이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다리가 길고, 탄력이 빼어나며, 몸싸움 요령을 익힌 이들과 쉼 없이 부딪혔다.
여기에 조영욱, 전세진, 오세훈이라는 무기도 있다. 조영욱은 2년 전 월반해 U-20 월드컵을 뛴 귀한 경험을 했다. 전세진은 수원삼성블루윙즈에서 프로 2년 차를 맞았고, 오세훈은 울산현대축구단에서 아산무궁화프로축구단으로 임대되면서까지 출전 시간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세계무대에서 나올 이들의 퍼포먼스가 곧 K리그의 경쟁력을 가리킬 수도 있다.
후방은 불안한 감이 없지 않다. 수비형 미드필더나 중앙 수비 진영에서 상대를 얼마나 잘 제어할지는 지켜볼 일. GNK 디나모 자그레브 소속 김현우나 강원FC 이재익, FC서울 김주성 등이 주축이 될 예정이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려면 수비가 최대한 버텨줘야 한다. 수비수만 막아서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뛰며 압박하는 그림이 필수다. ‘1+1=2’가 아닌,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게 축구의 묘미다.
이강인에게 시선이 몰린 감이 있지만, 나머지 선수들도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