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페로 만든 버거. [위키피디아]
“동짓달에 콩을 삶아 콩콩 빻아 으깨서 덩어리 덩어리 나눠 모양을 잡아, 한 덩어리씩 볏짚으로 묶어 뜨끈한 겨울 방에 주렁주렁 걸어두지. 만약 콩 삶아 덩어리로 뭉치는 날 해가 좋으면 하루 이틀 마당에 걸어 말렸다 방에 넣어. 그렇게 메주를 띄워. 정월이 되면 독에다 메주와 소금물을 넣고 장을 담그지. 그리고 꽃 피는 봄이 오면 장 뜨러 가야지.”
듣고 있노라면 마치 동요 한 곡을 읊조리는 것 같다. 이 맛 좋은 동요 사이사이에 매년 새로운 이야기와 장맛의 비결이 더해져 해가 갈수록 풍성해졌다. 그렇게 매년 친구들과 고향 가까이로 장을 뜨러 가던 엄마의 봄나들이는 칠순이 가까워오면서 멈추고 말았다. 장을 뜨러 가지는 못해도 어디에 무슨 장이 맛있는지 까다롭게 수소문해 조금씩 구해다 드신다. 엄마에게 장은 봄꽃보다 예쁘고, 금보다 귀하며, 딸보다 친한 벗이었던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선 된장만큼 대중적
1, 2, 3, 4 템페를 만드는 콩과 템페 생산 과정. [사진 제공·파아프]
콩 발효식품이라고 하면 발효된 향 혹은 짭짤한 맛, 실처럼 죽죽 늘어지는 진액이 떠오른다. 하지만 요즘 즐겨 먹는 콩 발효식품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나를 사로잡았다. 주인공은 바로 인도네시아의 콩 발효식품 ‘템페(tempeh)’다. 멀리서 보면 두부인가 싶다가도 가까이서 보면 쫀쫀하게 가공된 치즈처럼 생겼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콩 알갱이의 형태가 흰 표면 위로 올록볼록 근육처럼 튀어나와 있다. 힘을 줘 꾹 눌러야 손자국이 날 만큼 단단하고 크기에 비해 묵직하다. 누가(nougat)처럼 희고 매끈한 표면을 만져보니 손에 묻어나는 것이 없다. 킁킁거리며 향을 맡아보지만 겨우 나는 시큼한 냄새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이것이 정말 발효식품인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다.
반가운 점은 한국에도 템페를 제대로 빚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장한철-장홍석 부자(父子)다. 아들 홍석 씨가 출장 중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템페의 매력에 빠진 것이 계기였다. 템페 제조법을 제대로 익히고자 일본으로 건너가 ‘루스토노 템페(RUSTO’S Tempeh)’ 마스터를 만나 배움과 경험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꽤 긴 시간 동안 시도와 실패를 반복했다.
5, 6, 7 곰팡이가 균일하게 피어나 잘 완성된 템페. [사진 제공·파아프]
쫀득하게 구워 소스 곁들이면 술안주로 그만
기름에 살짝 지진 템페는 술안주로 그만이다. [사진 제공·파아프]
대파를 넣은 튀김옷을 입혀 튀긴 템페. [사진 제공·파아프]
가장 쉬운 방법은 구워 먹는 것이다. 손가락처럼 도톰하게 잘라 기름에 지지거나 오븐에 넣어 쫀득하게 굽는다. 굽기 전 짭조름한 소금물에 템페를 잠시 담갔다 물을 뺀 뒤 구우면 더 맛있다. 꿀, 참기름,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등 집에 있는 소스에 콕콕 찍어 간식이나 술안주로 먹으면 된다. 더 적극적으로 요리하고 싶다면 튀기면 된다. 얇게 잘라 기름에 튀겨 소금 또는 허브 소금을 살살 뿌려 먹으면 정말 맛있다. 허브를 섞어 튀김반죽을 만든 뒤 옷을 입혀 튀기면 한 접시 요리가 된다. 템페 튀김은 프렌치프라이, 피시 앤드 칩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맛이 좋다.
밑간을 한 뒤 구워 패티로 활용한 템페. [사진 제공·파아프]
템페를 넣은 카레. [사진 제공·파아프]
장홍석 ‘파아프’ 대표 일문일답
[사진 제공·파아프]
“현대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다. 어느 날 템페의 매력에 빠져 지금은 충남 태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템페를 만들며 ‘파아프(PaAp)’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파아프는 템페를 통해 발효에 관한 색다른 고민과 행보를 이어가고자 하며, 한국만의 색다른 템페를 만들어내려 한다.”
템페의 매력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템페는 만드는 과정이 단순한 식품이지만 제맛을 내는 일은 어렵다. 사람이 템페의 기본 형태를 만들어놓고, 완성은 자연과 시간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만들수록 더 빠져드는 식품이고, 먹을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맛이다.”
‘파아프’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대동로 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