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터틀넥 스웨터 때문에 세계적 패션 브랜드 구치가 공식 사과하고 전량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2월 6일이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랠프 노덤 주지사는 35년 전 대학졸업앨범에 실린 이 사진 때문에 사퇴위기에 몰렸습니다. 2월 1일이었죠.
노덤 주지사는 그날 바로 사과했다가 다음날인 2월 2일 사진 속 흑인분장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며 흑인분장을 한 적이 있어 착각했다는 거죠. 하지만 현지 여론은 싸늘합니다.
노덤 주지사가 사퇴할 경우 주지사 대행이 돼야할 버지니아 주 NO.2 저스틴 페이팩스 부지사는 성폭행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No.3인 마크 해링 검찰총장은 노덤 주지사와 같은 문제로 사퇴위기에 몰렸습니다. 2월 6일이었습니다.
2월 10일 열린 미국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 등 4관왕에 오른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의 뮤직비디오에도 같은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사태를 예고라도 하듯 지난해 5월 발표된 이 노래 가사 중에는 ‘난 구치를 입고 있지(I'm on Gucci)'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이들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블랙페이스입니다. 비흑인이 흑인 분장을 해 사람들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미국에서 2월이 ‘블랙페이스의 달’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게 미국에선 역사가 깊은 문제입니다. 미국은 1863년까지 흑인노예제도를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1830년대 백인들이 그 흑인노예 흉내를 내며 조롱하는 유희가 쇼로 만들어져 19세기말까지 유행했습니다. ‘민스트럴 쇼’라는 겁니다.
민스트럴 쇼의 출발은 1828년 토머스 다트머스 라이스라는 코미디언이 블랙페이스를 하고 부른 노래 ‘점프 짐 크로(Jump Jim Crow)’로 꼽힙니다.
짐 크로는 미국 남부 농촌 사투리를 쓰고 엉덩이를 쑥 빼고 한쪽 다리를 살짝 절룩이는 동작으로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This Is America'의 뮤직비디오에서 차일디시 감비노의 어색한 몸동작은 이를 뒤집어 풍자한 것입니다.
짐 크로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민스트럴 쇼라는 장르로 발전한 블랙페이스는 20세기 전반까지도 유행했습니다. 빙 크로스비와 주디 갈란드 같은 스타도 블랙페이스 흑역사를 갖게된 이유입니다.
1964년 민권법 도입하기 전까지 미국 각 주 별로 실시됐던 흑백 격리법의 이름이 ‘짐 크로 법’일 정도였습니다. 이런 흑역사 때문에 미국에서 블랙페이스는 인종차별적 행위로 지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선 20세기 후반이 되서야 블랙페이스의 문제를 인식합니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긴다는 영국 BBC방송에서 1958~1978년 20년간 방영한 ‘The Black and White Minstrel Show'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KBS2TV의 ‘쇼 비디오 자키’의 인기코너로 방송을 탔던 ‘시커먼스’를 기억하십니까. 이 코너 역시 블랙페이스라는 비판을 빗겨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