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018년 7월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그런데 한국군에는 진급을 실력과 명예의 증표로 여기는 문화가 퍼져 있다. 국가가 아니라 진급시켜주는 이에게 충성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개혁과 대(對)전복을 이유로 군 문제에 개입해 파행은 심해진다.
“용장·지장·덕장이 아니라 ×장”
군을 우대한 박정희 정부는 대위 전역자를 고시 합격자와 같이 대우해 정부 사무관으로 채용했다(유신사무관). 최근 사무관에 불과한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50만 대군을 지휘하는 대장(육군참모총장)을 불러내 논란을 빚고 있다. 한 언론인은 “장성에는 용장·지장·덕장만 있는 줄 알았더니 ‘×장’도 있다”고 비판했다. 중·소령급 부관을 보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주면’ 될 일을 왜 대장이 토요일에 직접 나갔느냐는 지적이다.처음에는 만난 곳이 카페라고 하더니 예비역 중령인 여모 씨의 사무실로 바뀌고, 20분간 만났다고 하더니 식사하고 술잔도 돌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그러나 김용우 총장은 술을 하지 않는다). 참석자도 4~5명으로 불어났다. 그 자리에 있던 국가안보실 파견자인 심모 육군 대령은 그 후 준장, 여씨는 요직인 국방부 정책실장이 됐다.
이에 대해 육군은 그날 김 총장은 국방부 인근 카페에서 20분 동안 행정관과 심모 대령만 만났고, 그 전이나 그후 이들이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문서를 분실 했는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바로 국정운영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부처별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국정인수를 했는데, 심 대령은 그곳에 가 있다 국가안보실로 옮겼다. 그리고 김 총장을 만난 뒤 진급했다. 여씨가 정책실장이 된 것은 육군이 아닌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한 일이다.
그런데 관점을 돌리면 다른 현상이 발견된다. 은밀한 만남이 왜 1년 반 뒤 보도됐느냐는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장성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인사수석실 행정관은 대통령의 철학과 지침에 대해 육군참모총장과 얘기할 수 있다”고 두둔했다. 육군도 “인사수석실에서 조언을 요청해와 주말 서울에 간 총장이 짬을 내 잠깐 만났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육군참모총장의 명예를 희생시켜가며 ‘행정관’을 구하기로 한 듯하다.
한 육군 관계자는 2017년 시점을 봐달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을 국방부 장관에 앉혀 국방개혁을 했는데 그 방향은 육군, 그중에서도 육사 출신을 치는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육군 관계자는 “이를 막아야 하는 사람은 육군참모총장뿐이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군 인사 패턴은 노무현 정부와 흡사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2·12사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중령을 4차, 대령을 3차로 진급했음에도 그 후 선두를 질주한 남재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지명했다. 이후 유력한 육군참모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김병관, 김관진 1·3군 사령관(대장)을 건너뛰고, 이들과 동기인 박흥렬 중장(참모차장)을 육군참모총장으로도 지명했다.
장성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
2017년 8월 28일 국방부 및 국가보훈처 핵심정책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용우 육군참모총장(가운데).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인사수석실 행정관을 만났다. [동아DB]
그런데 남 전 육군참모총장은 준장 진급 인사를 놓고 청와대와 충돌했다.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김의겸 대변인처럼 통수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니 자기들이 원하는 인물을 진급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 전 총장은 육군진급심사위원회가 관련 법령에 따라 실시한 인사에 잘못이 없으면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와대 마음대로 하려면 나를 전역시키라”고까지 말하며 대항했다. 율사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그를 불러 법률 논쟁을 했는데 남 전 총장 말이 법률상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맞담배를 피우며 화해했다.
그러자 ‘남 총장이 육군본부 회의에서 정중부의 난을 거론하며 전복을 모의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조사에 나섰으나 혐의 없음이 밝혀져 다시 두 사람은 화해했다.
당시 청와대에 있던 A씨는 기자에게 “다루기 힘든 남 전 총장은 임기가 끝나면 전역시키고, 말 잘 듣는 이를 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 전 총장이 퇴임할 무렵 육군본부 인사 담당자들은 줄줄이 불이익을 받았다. 군사재판까지 받는 이가 나오자, 그의 육사 동기생들은 성금을 걷기도 했다.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으니 이들은 진급에서 배제됐다. 그런데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들어서, 그들 중 일부인 R씨와 K씨를 뒤늦게 장성으로 진급시키는 배려를 했다. 그때 김 총장도 이들과 무관하지만 3차로 별을 달았다.
그러나 김 총장은 문재인 정부 첫해 실시된 첫 장성 인사에서 남 전 총장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직위 진급자는 진급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인데 진급하기도 했다. 그해 문재인 정부의 장성 인사는 육군진급심사위원회 안을 많이 뒤집었다. 그와 동시에 육군은 송영무 전 장관이 추진한 육군 때리기에 직면했다. 그때 청와대에 의해 3차로 장성으로 진급한 육군 B씨가 송 전 장관의 측근이 돼 앞장섰다. 그 역시 태스크포스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청와대의 통수권 남용
지난해 11월 12일 강원 철원지역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가 철거되는 모습을 둘러보는 김용우 육군참모총장(가운데). 우리 군은 적보다 내부에 더 신경 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진 제공 · 육군]
기무사 쿠데타 사건을 조사할 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김 전 실장의 구속에는 실패했다. 그때 김 총장은 ‘김관진계’로 불렸으니 입장이 곤란했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이뤄진 육군 장성 인사에서도 ‘청와대 맘대로’라고 할 정도로 육군진급심사위원회가 만든 인사안이 흔들렸다.
그리고 기무사 쿠데타 사건도 흐지부지됐다. 기무사 이름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로 바꿨을 뿐이다. 안보지원사는 법이 아니라 대통령령을 근거로 한 부대다. 따라서 대통령령만 바꾸면 임무를 대폭 개편할 수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하지 않았다. 기무사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근거가 된 대(對)전복 임무 등을 안보지원사는 그대로 이어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군개혁의 속내가 무엇인지 분명해진 셈이다.
그리고 터져 나온 것이 김 총장이 청와대 행정관의 부름을 받고 만나러 갔는데, 그 행정관이 담배를 피우다 갖고 나온 2급 군사기밀에 준하는 인사자료와 청와대 출입증을 분실했다는 모 언론의 보도였다. 극소수만 알 수 있는 일이 알려진 셈인데, 이는 내부 제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의겸 대변인은 그 행정관이 분실한 자료는 공식 문서가 아니라 개인 자료라고 해명했다. 기밀 누설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는 안보지원사도 이 사건은 이미 종료된 것이라 조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군인들 세계에는 ‘진급철만 되면 묘지에 묻힌 군인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혹시 내가 진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줄 만 잘 서면 되니까 ‘혹시나’ 하는 것이다. 고급 장교의 진급일수록 원칙이 없으니 정치권 실세에 대한 줄서기에 애쓴다. 그리고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뜻밖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왜 진급에 목매는 군을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한 군 관계자는 “이 사건은 청와대가 군 인사를 원하는 대로 하려다 생겨난 것”이라며 “이러한 군이 국가 위기 시 위국헌신(爲國獻身)을 할 수 있을까”라고 답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