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영화사피어나]
은행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예민하고 깔끔하다. 여자 혼자 사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남자 옷과 신발을 집 안에 늘어놓고, 엘리베이터나 골목에서 마주치는 낯선 남자를 경계한다. 도어록 덮개가 열려 있는지, 집 안 물건들의 자리가 바뀌진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비밀번호도 자주 변경한다. 혼자 사는 한국 여자들에겐 익숙한 장면이지만 경민이 점점 더 예민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진 제공 · ㈜영화사피어나]
비정규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불안정성과 마찬가지로, 안락해야 할 집은 감시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편치 않고,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경계해야 하는 처지도 피곤하다. 젊은 그녀지만 세상을 살아가느라 이미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다.
돈, 직장, 주거, 데이트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경민의 원룸에서 낯선 사람의 침입 흔적과 함께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리고 또 피해자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민은 직접 범인을 쫓기로 한다.
‘혼자 사는 내 집에 누군가 몰래 드나든다면?’ 하는 카더라식 괴담이 과잉되게 영화 서사 안에서 응집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을 노리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소재는 진부하다. 하지만 영화는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 규칙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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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감독의 이 영화는 한 가지를 우직하게 끌고 간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경민이 탈출구 없이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면서 느끼게 되는 극도의 공포감이다. 이는 사회의 부조리와 장르적 언어가 서로 효과적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고립되거나 폐쇄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이나,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허위 슬로건을 가뿐히 뿌리치는 여성들 간 연대를 그린 점도 돋보인다. 보통 남성의 영웅서사를 위해 도구화되는 여성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헤쳐 나가는 능동적 주체로서 여성을 그려낸 점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