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들의 외식문화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화와 맞물리며 변화하고 있다. 동아일보
이지은(29) 씨는 남자친구와 식당에 갈 때면 늘 휴대전화 카메라로 음식 사진을 찍는다. #먹스타그램 #먹방 등의 해시태그를 걸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순식간에 30~40여 명이 하트를 누른다. 이씨는 “처음에는 재미 삼아 올렸는데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맛있겠다며 댓글을 달아주니 맛있는 메뉴를 주문할 때는 꼭 사진을 찍는다. 풍경 사진보다 음식 사진에 대한 반응이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2 정수영(27) 씨는 얼마 전 서울 마포구 상수역 근처에 있는 유명 디저트 카페에 친구들과 다녀왔다. 날이 추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생각이었으나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가 빙수라는 말에 빙수를 주문하고 사람 수대로 케이크도 주문했다. 모두가 약속한 듯 스마트폰 카메라로 음식을 찍고 SNS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서로를 태그해 올렸다.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이곳을 찾았다는 정씨는 “예쁜 메뉴로 유명한 집인데 혼자 여러 메뉴를 주문하는 건 부담스러워 친구들과 왔다”고 말했다.
3390만 건.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표적인 인기 해시태그 ‘먹스타그램’으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게시물 양이다. 비슷한 의미의 ‘맛스타그램’으로 검색해도 1250여만 건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소비자들의 외식문화가 달라졌다. 한동안 건강 중심의 웰빙이 트렌드였다면 이제는 남에게 보여주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이런 현상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에서 ‘delicious’로 검색하면 4000여만 건의 음식 사진이 쏟아진다.
예쁘거나 특이하면 SNS에 자발적 업로드
국내 외식산업은 2013년 기준으로 80조 원 규모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2015년 외식산업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한 달 평균 외식 횟수는 9.1회였고,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외식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67%였다. 식당 선택에서 중요한 요인(복수응답 허용)으로는 맛(83%)과 가격(64%)이 꼽혔다. 식당 정보는 인터넷(86%)에서 얻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며, 응답자의 77%는 식당 이벤트 정보를 SNS에서 얻는다고 답했다. SNS에 자신이 주문한 음식 사진을 올린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46%였고, 이 중 40%는 정기적으로 음식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린다고 답했다.이제는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린 손님에게 할인을 해주거나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는 식당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는 SNS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해서 좋고, 사업자는 SNS 입소문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SNS에서 외식브랜드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하는 업체 관계자는 “블로그는 사진을 여러 장 올리고 글도 써야 해서 정성이 많이 들고 검색어나 방문자 수, 상위권 노출 등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사진 한 장으로 승부할 수 있어 유명한 계정이 아니어도 노출이 쉽고 해시태그를 잘만 쓰면 검색도 용이해 새로운 홍보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특이하거나 예쁜 외식 메뉴라면 금전적인 이득이 없어도 SNS에서 공유하곤 한다. 경남 통영 동피랑 마을에 있는 ‘카페 울라봉’은 커피를 주문하면 우유 거품 위에 욕설을 써주는 ‘쌍욕라테’로 SNS에서 유명해졌다. 커피 위에 쓰일 욕은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카페 주인에게 욕을 듣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자발적으로 SNS에 커피 사진을 올려 전파한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 있는 빵집 ‘퀸즈베이글’ 매장에는 점심때마다 크림치즈베이글을 사려는 긴 줄이 늘어선다. 인스타그램에서 상호명으로 검색하면 손에 베이글을 들고 찍은 사진이 1만 건 넘게 쏟아진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상호명보다 ‘SNS에서 본 크림치즈 엄청 들어 있는 베이글 파는 곳’으로 기억한다.
케이블TV방송 tvN ‘수요미식회’와 올리브TV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테이스티로드’ 등 음식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식당을 찾는 소비자도 많다. ‘TV에 나온 맛집을 실제로 다녀왔다’는 내용 아래에는 ‘부럽다’거나 ‘나도 데리고 가’ 같은 반응이 이어진다.
외식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R’을 발행하는 쿠켄네트의 이윤화 대표는 “경기가 안 좋더라도 나만을 위한 사치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다. 외식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생계형에서 모임, 접대 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형을 넘어 문화의 한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다. 서촌 골목, 연남동 연트럴파크의 경의선숲길, 성수동 서울숲거리, 경리단 뒷길 장진우거리 등 골목 속 작은 맛집을 찾는 재미 또한 SNS의 영향으로 불이 붙었다. SNS는 누구도 알 것 같지 않은 골목까지 나는 와봤다는 뿌듯함을 과시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김철환 적정마케팅연구소 소장은 “SNS 문화가 외식 서비스 공급자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맛있는 음식을 제공받는 게 중요했지만 이제는 혀만 즐겁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눈도 즐거운 음식을 원한다. 카페에서 갈아서 제공하던 과일음료가 과육을 살려서 나오는데, 그렇게 해야 보기도 좋고 SNS에서 많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걸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맛은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다 보니 비주얼 특징이 두드러지는 메뉴가 각광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당히 사치스럽지만 허세는 아냐
대표적인 이미지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는 초 단위로 음식 사진이 올라온다. 동아일보
김철환 소장은 “나를 표현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자랑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수위라는 게 분명히 있다. 옷이나 가방 등 다른 제품은 잘못 올렸다가는 ‘사치스럽다’ ‘허세 있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은 좋은 걸 먹어도 타인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작은 사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일상적인 SNS 업로드는 외식 메뉴 공급자들로 하여금 음식 맛뿐 아니라 가게 인테리어, 플레이팅, 푸드데커레이션까지 바꾸게 만들었다. 이윤화 대표는 “유명 브랜드만 살아남던 시장에서 1인 브랜드 파워를 실감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시장의 내실 있는 발전이 저해되는 경향도 있다”고 우려했다.
“레스토랑 랭킹에 집중한 매체의 상위권 레스토랑에는 컨템퍼러리 퀴진이 많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메뉴스타일을 ‘뉴 코리안’ ‘현대서울음식’ 등으로 명명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죠. 트렌드를 반영한 외식업장일수록 SNS에 민감한 고객들이 와서 감탄하고 사진으로 퍼 나르는 화제의 대상이 돼야 하기 때문에 여러 아이디어를 내고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비주얼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조리 분야에 지원한 젊은 친구들이 기본기를 위해 10~15년 시간을 보내기보다 비주얼만 좇다 보면 음식 분야의 발전이 저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 외식시장에서 기본기에 충실한 정통 프렌치 음식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모던 프렌치나 가벼운 웨스턴 스타일은 늘어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