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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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머니볼’ 히어로즈 이장석

2년 연속 메이저리거 배출…한국 내 유일 오너 야구단 대표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5-11-23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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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판 ‘머니볼’ 히어로즈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가 11월 5일 넥센타이어와 3년간 네이밍 타이틀 스폰서 연장계약을 했다.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대표이사(오른쪽)와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이 서울 방배동 넥센빌딩에서 조인식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11월 16일 신인왕 후보를 소개하며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대해 ‘개척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최초의 야수로 큰 성공을 거뒀다.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하지 않았다면 어떤 성적을 올렸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구단에게 아직 미지의 영역이던 한국 프로야구 타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미네소타 트윈스가 박병호(29·넥센 히어로즈)에게 1285만 달러(약 150억 원)의 포스팅(비공개입찰) 액수를 투자한 데도 올 시즌 강정호의 활약이 컸다. 2003년 이승엽(39·삼성 라이온즈)은 56홈런을 기록했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마이너리그 더블A 수준으로 여기던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아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강정호가 한국 프로야구 출신 야수들에 대한 의문부호를 지운 덕에 박병호는 2000년 스즈키 이치로(당시 시애틀 매리너스 1313만 달러)에 이어 역대 아시아 출신 야수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포스팅 액수를 기록했다.

    강정호와 박병호는 모두 넥센이 배출한 선수들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 가운데 유일한 오너 경영자 이장석 대표가 있다. 메이저리그가 강정호를 개척자로 표현했듯 이 대표는 한국 프로스포츠 산업화의 개척자다. 넥센이 2년 동안 강정호, 박병호를 메이저리그에 진출시키며 올린 매출액만 약 1900만 달러(약 223억 원)다. 최근에는 넥센타이어와 연간 100억 원 규모의 네이밍 타이틀 스폰서 계약도 맺었다.

    자생구단 꿈꾸는 히어로즈

    넥센은 지난 시즌 준우승, 올해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LG, KIA, 롯데, 한화 등 국내 굴지 대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연간 수백억 원 규모를 투자하는 팀들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2008년 현대그룹이 야구단을 포기하자 이장석 대표는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기반으로 히어로즈를 창단했다. 당시 각 구단은 물론 야구팬들의 시각은 매우 차가웠다. 이 대표는 “모두가 처음에는 ‘사기꾼’이라고 하다 야구단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하자 ‘바보’라고 하더라”며 당시 분위기를 회고했다. 2009시즌 후 구단 존립을 위해 장원삼(32·삼성) 등 주요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했을 때는 거센 비난이 쏟아졌고 한동안 네이밍 타이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넥센은 2008년 115억 원, 2009년 159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창단 이후 8년이 지난 올해 매출은 2008년에 비해 약 3배 증가한 310억 원이다. 모그룹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입장권, 광고, 상품 판매 등으로 올린 매출이다. 여전히 적자를 기록 중이지만 그 폭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8년 동안 이장석 대표가 계약한 스폰서만 약 70개 업체다.

    넥센타이어와 3년간 연장 계약한 메인 스폰서 계약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존 연간 약 40억 원에서 100억 원 규모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장석 대표가 지난 8년간 간절히 바라며 추진해온 자립 구단의 완성을 향한 순항이다.

    넥센은 강정호를 메이저리그에 진출시킨 대신 김하성(21)이라는 걸출한 신인 유격수를 발굴해 공백을 메웠다. 박병호가 떠난 이후에는 홈런 의존도를 줄이고 팀 기동력을 극대화해 새로운 팀 색깔을 만들 계획이다. 타자 친화적인 목동야구장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고척스카이돔으로 홈구장을 이전하는 것에 맞춰 팀 전력을 바꾸는 과정이다 .

    현장 지휘자는 염경엽 감독이지만 전력 구상의 큰 그림은 이장석 대표가 그리고 있다. 프로야구단 대표이사 가운데 가장 많이 고교야구대회장을 찾으며 직접 선수들을 관찰한다. 비경기인 출신이지만 스카우터 사이에서는 “선수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선수 출신 전문인력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다른 구단보다 단순하고 오너 대표이사로 의사결정이 매우 빠른 것도 강점이다.

    선수 육성에서 답을 찾다

    한국판 ‘머니볼’ 히어로즈 이장석
    2011년 이전까지 넥센은 선수들이 기피하는 구단이었다. ‘곧 매각된다’ ‘지원이 형편없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넥센은 고교, 대학 선수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은 구단으로 꼽힌다. 고척스카이돔 개장 1호 홈런을 날린 서울고 강백호도 “훗날 넥센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이장석 대표는 매년 선발한 신인선수와 부모들을 특급호텔로 초청해 오리엔테이션을 연다. 신인뿐 아니라 육성선수도 모두 초청한다. 올해도 11월 13~14일 이틀간 진행됐는데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앨러드 베어드 수석부사장이 ‘진정한 프로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고, 구단 경영진은 신인선수 부모들과 식사하며 감사를 표했다. 기존 구단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환영 방식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 이장석 대표는 “우리 구단은 신인선수, 육성선수를 1년 만에 방출하지 않는다. 이 직업이 유일한 대안인 신인선수들이다. 3년간 기회를 주겠다. 무책임한 방출은 없다”고 말해 큰 울림을 줬다.

    넥센은 여전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4년간 80억~90억 원이 필요한 특급 FA를 영입하기에는 재정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구단이 요청하면 수십억 원을 추가 지원할 수 있는 모기업이 없기 때문에 외부 선수 영입에 가장 신중한 팀이다. 그러나 선수 육성에 대한 투자는 적극적이다.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FA 자격을 획득한 유한준(34)과 손승락(33)의 이적이 예상되지만 최근 고종욱(26), 조상우(21), 한현희(22), 김택형(19) 등을 주축 선수로 키웠다. 최근에는 뉴욕 양키스 출신 셰인 스펜서를 퓨처스(2군) 감독으로 선임했고, 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브랜든 나이트를 코치로 영입하는 등 새로운 육성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사석에서 “스포츠가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구단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기꾼’ ‘바보’로 시작해 혁신적인 구단 운영으로 ‘머니볼’ 이론을 만든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의 이름을 따 ‘빌리 장석’이라는 멋진 별명을 얻기까지 과정은 그 어떤 스포츠기업 경영자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닌 정권의 의지, 기업 홍보창구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 시장에서 자립 구단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가장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삼성도 최근 자립 구단 실현을 구단 목표로 정하는 등 넥센이 문을 연 새로운 흐름은 리그 전체로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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