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국가정보원 측에서는 이병호 국정원장(가운데)과 한기범 1차장, 김수민 2차장, 김규석 3차장이 출석했다(맨 뒷줄 왼쪽부터). 뉴시스
지금 위험하다고? 앞으로는 훨씬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0년 이후 국제테러 조직과 연계됐거나 테러 위험인물로 지목된 국내 체류 외국인 48명을 적발해 강제 출국 조치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2년간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출신 노동자 1명은 출국 후 IS에 가입해 활동하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경찰과 국정원은 또 다른 인도네시아 출신 노동자가 서울 경복궁과 북한산을 배경으로 테러단체 ‘알누스라 전선’과 IS를 지지하는 사진을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며 그의 검거 소식을 전했다. 경찰청이 언론에 배포한 문제의 사진은 이튿날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논란의 핵심은 테러방지법. 현재는 대통령훈령으로 돼 있는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을 법률로 승격시켜 구속력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정보당국 요청의 골자다. 19대 국회에 제출돼 있는 관련 법안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2월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같은 당 의원 72명과 공동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그러나 야당 측은 해당 법안이 국정원에게 구조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국정원을 무소불위 기관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반대하고 있다.
11월 18일 현안보고에서 국정원 측이 관련 동향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야당 측 인사들은 의심의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보고 자리에 참석한 정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온 시리아 난민 200명 입국 사실을 굳이 이 자리에서 공개한 것은 파리 테러로 경각심이 정점에 이른 상황에서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계산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18일 붙잡힌 인도네시아 노동자만 해도 실제로는 국정원이 수사해놓고는 정보 공개 문제로 어려움이 예상되자 경찰을 통해 ‘우회 발표’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국정원 대신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컨트롤타워로 삼는 방안이라면 야당으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 또 다른 정보위원회 관계자는 “다양한 ‘사건 사고’로 국민 신뢰를 잃은 국정원에게 굳이 그 같은 막중한 권한을 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들 역시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는 사실. 11월 18일 현안보고를 위해 국회를 찾았던 한 정보당국자는 기자에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장기간 묶여 있던 테러방지법 통과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이는 급증하는 테러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일 뿐, 국정원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파리 테러를 계기로 국제 사회의 응징활동이 궤도에 오를수록 한국의 참여 역시 긴밀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올해 상반기부터 미국 측이 시리아에 파병을 요청할 수 있다고 판단해온 국방부는, 파리 테러 이후 한층 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시리아 전선 상황과 관련해 아직까지 인도주의적 지원에 머물고 있는 한국 정부는 그나마 그 세부 내용이나 시점 등에 대해서는 테러 위험 증가를 우려해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미국 측의 ‘포석 깔기’는 그간에도 꾸준히 진행돼왔다고 말한다. 워싱턴 내부에서조차 지상군을 파병해야 한다는 펜타곤(국방부) 측 견해와 전쟁 장기화를 우려하는 백악관의 기류가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지만, 실제로 지상군을 파병하는 시점이 올 경우 주요 동맹국에게 동참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는 것.
10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공식화한 ‘한미관계 현황 공동 설명서(Joint Fact Sheet)’ 속 관련 문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작성된 이전 버전의 경우 IS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던 것과 달리, 올해 만들어진 버전에는 상당한 분량을 통해 한국 측 동참과 공여를 약속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회의에서 한국 측은 테러 위협 증가를 염려해 명문화를 꺼렸지만, 미국 측의 강한 요청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안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미국은 일본 측에도 유사한 요청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공동 설명서의 해당 문장 역시 미·일 간 합의와 수위를 맞추기 위해 고심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간의 인도주의적 지원에 더해 한국이 IS에 대응하는 ‘국제연대의 안정화 지원 작업반’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다(committed)’는 언급과 관련해서도, 통상 한국어 번역본에서 ‘실무그룹’ 정도로 번역해오던 ‘Working Group’을 ‘작업반’으로 낮춰 번역한 것 역시 다양한 우려가 깔려 있었다는 토로다.
“어디든 같이 가야 동맹 아니냐”
“미 국방부 핵심 관계자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가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는 양국 군대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걸 뜻한다’고 하기에, ‘어디로 함께 가느냐’고 되물었다. 대답은 뜻밖이면서도 섬뜩했다. ‘어디든(Anywhere) 같이 갈 수 있어야 진짜 동맹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전직 안보당국 고위관계자가 전하는 이 같은 일화는 IS 응징작전이 세계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는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한층 더 의미심장하다. 정부 당국자를 포함해 전문가 대부분은 미국이 지상군 파병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 우리 측이 이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를 두고 ‘밀당’(밀고 당기기)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어느 경우든 IS 문제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이슈가 되는 시나리오는 피하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다. 한 당국자는 “지금으로서는 IS가 미국 본토에서 테러를 벌이는 일은 없기를,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지상군 파병을 끝까지 미루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