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밥 차리는 일은 고되다. 차가운 보리차에 밥을 푹푹 말아 오이지무침을 얹어 한 끼 해결한다. 얼마 남지 않은 열무김치와 국물을 밥에 넣고 참기름을 둘러 또 한 끼 비벼 먹는다. 여름이 선사하는 쉽고 맛있는 특미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더위가 이어지는 날에는 입에 착 감기는 음식으로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이럴 때 쓱 꺼내 들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바로 말린 생선이다.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에 가면 해산물을 걸어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획량이 늘고 바람과 해가 좋은 가을·겨울철이 되면 오선지 같은 줄뿐 아니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넓은 건조대와 플라스틱 채반 위에도 빈틈없이 생선이 널려 있다. 계절 따라 날마다 말리는 생선 종류와 수는 달라지지만 1년 내내 어떤 생선이든 해와 바람에 말라간다. 이렇게 말린 생선을 팔기도 하지만 어민들의 양식거리로도 많이 쓰인다. 말린 생선은 거의 손질 없이 조리할 수 있고 요리법도 간단해 실력보다 더 좋은 맛을 내는 재료다.
여기서 말하는 말린 생선은 멸치, 북어, 쥐포처럼 바싹 마른 것이 아니라 손으로 눌렀을 때 살집의 탄력이 느껴지는, 꾸덕꾸덕한 상태를 가리킨다. 가자미, 서대, 굴비, 대구, 민어, 우럭, 곰치, 풀치, 장어를 그렇게 말린다. 물론 꽁치나 청어로 만든 과메기도 있지만 조리하기보다 그대로 먹는 경우가 많으니 안줏거리로 삼는 편이 더 낫다.
몸통이 납작한 가자미 같은 생선은 내장을 빼고 깨끗한 물에 씻어 바닷바람에 그대로 말린다. 빠르면 반나절만 지나도 꾸덕꾸덕해지는데, 이때부터 생물일 때와 사뭇 다른 식감과 감칠맛이 살집에 밴다. 우럭처럼 몸집이 통통하거나 대구, 민어, 곰치처럼 큰 생선은 내장을 빼고 몸통을 반으로 가른 뒤 소금을 쳐 바람에 말린다. 크기가 크니 말리는 기간도 길어진다. 게다가 말릴수록 맛이 깊어지니 대구나 민어처럼 귀한 생선은 좀 더 단단하게 말려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한다. 요리할 때는 물에 헹구거나 원하는 만큼 다시 불리면 된다.
제법 살이 두툼한 말린 가자미는 통째로 쪄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큼직하게 썬 뒤 조림양념을 넣어 자박하게 끓여 먹는다. 도톰하게 썰어 미역국을 끓이면 삼삼하고 시원한 맛이 우러나 개운하다. 크기가 작은 것은 석쇠에 구운 뒤 결대로 찢어 쫄깃하게 먹거나, 기름에 통째로 지져 먹는다. 기름에 지질 때 머리, 꼬리, 지느러미를 잘라 먹기 좋게 손질한 다음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혀 부치면 구수한 맛이 더 좋아진다.
짠맛이 강한 우럭은 물에 불렸다 무와 호박을 썰어 넣어 맑은 탕을 끓여 먹으면 속풀이로 제격이다. 귀하고 맛 좋은 민어 역시 물에 살짝 불린 뒤 매운 고추와 양파를 얹어 정갈하게 쪄낸다. 말린 대구는 살집이 많아 적당히 불리면 먹을 것이 많고 맛도 순해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다. 구이, 조림, 튀김, 부침 등 무엇으로 만들어도 식감과 풍미가 매력적이다. 그리고 말린 대구의 진짜 별미는 머리에 있다. 머리 부분만 떼어 살짝 불려 짠맛을 빼고 부드럽게 한다. 일반 조림보다 물을 넉넉히 붓고 양념을 풀어 뭉근하게 끓인다. 양념 국물이 겨우 냄비 바닥을 덮을 만큼만 조린 다음 뜨거운 밥과 함께 먹는다. 말린 대구 머리 조림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꼭꼭 숨겨두고 혼자 즐기고 싶은 꿀맛이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에 가면 해산물을 걸어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획량이 늘고 바람과 해가 좋은 가을·겨울철이 되면 오선지 같은 줄뿐 아니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넓은 건조대와 플라스틱 채반 위에도 빈틈없이 생선이 널려 있다. 계절 따라 날마다 말리는 생선 종류와 수는 달라지지만 1년 내내 어떤 생선이든 해와 바람에 말라간다. 이렇게 말린 생선을 팔기도 하지만 어민들의 양식거리로도 많이 쓰인다. 말린 생선은 거의 손질 없이 조리할 수 있고 요리법도 간단해 실력보다 더 좋은 맛을 내는 재료다.
겨울에 한창 말리는 곰치와 오징어.
잘 마른 대구.
말린 민어로 만든 찜.
말린 우럭과 우럭젓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