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 ‘멜론 TOP100’
이른바 ‘역주행 음원’이라고 잘못 불리는, 즉 아이돌이나 음악 예능프로그램 출연자의 음원이 아닌 ‘일반’ 또는 ‘무명’ 음악가의 노래가 갑자기 차트에 진입할 때는 반드시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TV 또는 사용자가 많은 뉴미디어에 소개되거나, 팬이 직접 찍은 영상이 화제가 되는 등 분명한 원인이 있다는 얘기다.
반면 사재기 논란이 있는 경우엔 명확한 원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이다. 음악 홍보 면에서 SNS가 방송을 비롯한 올드미디어 못지않게 중요해진 건 맞다. 예전 ‘입소문’이 ‘바이럴’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윤종신의 ‘좋니’는 ‘세로라이브’라는 페이스북 콘텐츠에서 역주행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현희와김루트의 ‘오빠야’도 아프리카TV 인기 BJ(방송자키)가 방송에서 BGM(백그라운드뮤직)으로 사용하면서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유령 계정으로 벌이는 SNS 마케팅
그런데 ‘사재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음원들의 SNS 마케팅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자체 콘텐츠의 개발 없이 기존 라이브클립에 SNS 특유의 문체로 포장한, 음악 홍보 페이지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는 점에서다. 화제라는 단어를 강조한 이유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사용자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콘텐츠는 ‘좋아요’ 수, 그리고 댓글 및 공유 횟수와 정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페이지는 대체로 수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갖고 있고, 올리는 음악마다 수백 개 이상 댓글이 붙는다. 친구를 태그하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할까’ 싶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올린 사용자의 계정에 들어가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해당 페이지의 콘텐츠를 공유한 것 외에는 아무 게시물도 없는 계정이 태반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홍보 페이지들이 더 많은 전파를 위해 수많은 유령 계정을 사들였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미심쩍은 방법을 통해 SNS 인기 콘텐츠에 오른다고 꼭 차트 1위를 찍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미심쩍은 구석은 이런 노래들이 차트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다. 멜론 실시간 차트에는 ‘프리징 타임’이라는 게 있다. 일반 사용자의 활동이 줄어드는 새벽 1시부터 6시간 동안 집계를 멈추는 것이다. 취약 시간대를 노려 사재기나 팬덤의 집단 스트리밍으로 차트가 왜곡되는 걸 막겠다는 의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팬덤도 진화했다. 자정을 기점으로 스트리밍 총공세를 퍼부어 프리징 타임 직전에 1위를 만들어놓는다. 그럼 다음 날 아침까지 그 노래가 1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팬덤의 행동 없이도 취약 시간대에 갑자기 1위로 치고 올라오는 노래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기서 사재기 논란이 발생한다. 이런 노래들이 차트에서 급상승하는 시간대 역시 프리징 타임이기 때문이다.
왜 사재기까지 하면서 차트 1위를 노리는 걸까. 이는 주먹 크기의 눈뭉치를 산 위에서 굴리면 알아서 커다란 눈덩어리가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에 들어가보자. 최상단에 최신음악이, 바로 아래에 실시간 차트가 있다. 여기서 일반 사용자는 어떤 서비스에 관심을 가질까. 당연히 실시간 차트다. 첫 화면에 노출되는 순위는 1위부터 5위까지. 이 안에 들기만 하면 월정액 스트리밍 사용자는 설령 모르는 노래라 해도 일단 듣게 된다.
휴대전화 매장 등에선 아예 실시간 차트 1위부터 100위까지 자동재생으로 틀어놓는 곳이 태반이다. 실시간 차트 1위란 이유만으로 압도적인 사용자를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방송 출연, 각종 행사 등 ‘1위’라는 타이틀로 거둘 수 있는 유무형의 수익을 감안하면 홍보를 통해 1위가 되는 것보다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압도적 홍보가 될 수밖에 없다. ‘차트에 없으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 된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실시간 1위는 유령 아이디 보유한 브로커의 짓?
방송 출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밴드 칵스 멤버 숀의 솔로곡 ‘Way Back Home’이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해 논란이 됐다(왼쪽). 지난해 10월 발표한 노래 ‘지나오다’의 온라인 음원차트 순위가 급상승하면서 사재기 의혹에 휘말렸던 가수 닐로. [동아DB, 사진 제공 ·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여기서 단순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해외에선 이런 사례가 없을까. 없다고 봐도 좋다. 일단 음원 서비스의 인터페이스가 다르다. 애플뮤직을 보자. 첫 페이지에 있는 서비스는 ‘For You’, 즉 사용자 취향에 기반을 둔 추천 음악들이다. 노래와 앨범, 플레이리스트까지 다양하다. 신곡 역시 사용자 취향에 맞게 제시된다. 실시간 차트는 하위 페이지에 한 카테고리로 존재할 뿐이다. 큐레이션 기능이 하위 페이지에 있는 국내 서비스와는 대조적이다. 차트는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당연한 개념의 반영이다. 음원 서비스가 제공해야 할 것은 ‘사용자가 듣고 싶을 음악’이 먼저지, ‘지금 남들은 뭘 듣고 있다’가 아니지 않은가.
미국 빌보드, 일본 오리콘 등은 제작·유통 등 음악 산업의 다른 분야와 연결고리가 없는 독자적 차트다. 공정성과 시의성을 확보하고자 시대에 맞는 다양한 지표를 종합해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떤가. 음원 서비스, 즉 음원을 유통하는 회사의 실시간 차트가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영화계는 진작 통합 박스오피스를 통한 흥행 현황 집계 시스템을 마련했건만, 음악 산업계는 지금껏 무엇을 했나 묻고 싶다. 제대로 된 차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20세기 후반부터 나왔는데 말이다.
차트란 ‘대중의 무의식’의 거울이다. 브로커, 팬덤 등 이 무의식을 흔들어 차트의 공정성을 흔드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지긋지긋한 의혹과 논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묻고 싶다. 케이팝(K-pop)이 한국 문화 수출의 주역으로 자리를 굳힌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쯤이나 차트의 본질을 곁에 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