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극단 산수유]
붉게 익은 산수유나무에 당시 사회상을 비유한 연극 ‘바알간 산수유나무’는 정치극이다. 정치적 요소를 가미한 연극은 ‘무겁다’는 선입견을 씻어주는 ‘바알간 산수유나무’는 과거의 문제의식을 유쾌하고 서정적으로 바라보고, 현재를 따뜻하게 지켜볼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때는 1970년대 인적이 드문 어느 시골마을의 가을. 오곡백과가 풍성해야 할 추수철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뭄에 따른 흉작으로 당장 겨울나기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보릿고개는 또 어찌 넘길지 걱정이 한 보따리다. 터질 듯이 익어가는 붉은 산수유를 딸 시간도 없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은 뼈 빠지게 일하지만 항상 제자리만 맴돈다. 아이들은 간첩 포상금으로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겠다며 냄비와 보자기로 무장한 채 간첩을 잡으러 산을 헤매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비록 무지했지만 사사로운 잇속보다 공동체의 안녕과 구성원 간 신뢰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러나 치부를 덮기 위해 짜 맞춘 정치프레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공격하던 시절, 그들은 희생을 강요받고 감내해야 했다.
연출자 서유덕은 이념, 사상, 생각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이 각자에게 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과거와 현재를 더욱 열린 마인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덜 심각하지만 더 진지하다.
‘바알간 산수유나무’는 배우 11명의 안성맞춤 호흡으로 최강의 앙상블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공연은 류주연 극단 산수유 대표가 배우로 직접 나서 눈길을 끈다. 극의 시대적 배경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새마을운동이 활발하던 시점으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반세기 전이다. 분단국가의 대립된 이념을 비틀어 국민의 눈과 귀를 왜곡해 권력을 양산하던 비이성적인 흔적과 마을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형상이 교차돼 가슴이 먹먹하다. 2018년의 모습은 그때와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