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의 ‘The Magic Whip’ 앨범 재킷. 모호(模糊)는 블러(Blur)를, 마편(魔鞭)은 마법의 채찍이라는 앨범 제목을 뜻한다(위). 왼쪽은 블러의 리드싱어 데이먼 알반. [AP = 뉴시스]
물론 이런 호기심은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도 있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수도라는 사실에서도 기인할 터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건 인간의 본성 아닌가. 그런 호기심을 가지는 건 꼭 우리만은 아닌 듯하다. 비자를 발급 받으면 평양을 관광할 수 있는 국가에 살더라도 웬만해선 북한을 방문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이런 평양을 방문하고, 그것에 대한 노래를 발표했던 뮤지션이 있다. 블러와 고릴라즈 등 2개의 밴드를 이끈 영국 뮤지션 데이먼 알반이다. 그는 2013년 가을 BBC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이 최근 평양에 다녀왔다며 그 후기를 방송했다. 공연으로 간 건 아니고, 관광이었다.
현지 음반가게에서 북한 음반을 싹쓸이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 이야기도 했다. 북한 노래방에서 불렀다는 민요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도 틀어줬다. 그때 경험으로 그는 2015년 발매된 블러의 ‘The Magic Whip’ 앨범에 ‘평양(Pyongyang)’이란 곡을 실었다.
북한 여행에서 떠오른 단상들을 묘사한 곡이다. 대동강가의 앵두나무를 보며, 분홍빛의 탁한 조명을 보며 느낀 낯선 도시의 풍경이 음울한 사운드에 담겨 있다. 만약 평양 여행을 가는 날이 오면 서울에 비해 어두운 도시에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언젠가 북한에 가는 날이 온다면 꼭 현지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싶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때 내려온 북한예술단의 솜씨는 실로 엄청났다. 특히 연주자들이 그랬는데, 그 많은 인원이 악보 한 번 보지 않고 온갖 노래를 화려한 테크닉으로 연주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퍼포먼스도 빼어났다. 북한에서 음악 생활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막연하게 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던 건, 연주와 가창의 부조화였다. 뭐랄까, 그런 연주에 따라붙기 마련인 그루브 대신 사회주의 예술 특유의 비장미가 넘쳐나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음역대를 강조하고 바이브레이션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기준으로 가수를 뽑는 것 같은데, 고음역대에 유독 열광하는 남한 대중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봄의 남북정상회담, 초여름의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가을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그때쯤엔 전설의 옥류관 평양냉면을 실제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대동강변에서 냉면과 어복쟁반으로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밤을 기다리고 싶다. 음악과 함께하는 평양 밤문화를 느껴보고 싶다. 북한 음악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 북·미 두 정상이 맞잡은 두 손에 마음이 들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