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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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인류세’의 상징 화석은 닭뼈?

‘인류가 만든 지질시대’…20세기 중반이 유력 기점

  •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8-04-17 14: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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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지구 모습. 과학자들은 지구 외형에도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지구 모습. 과학자들은 지구 외형에도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활동하는 과학자 가운데 앞으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될 이는 누굴까. 나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을 꼽고 싶다. 크뤼천은 1970년 지구 대기의 오존층이 사라질 가능성을 최초로 경고한 업적으로 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요즘 크뤼천은 다른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0년 ‘인류세(Anthropocene)’를 처음 제안해 화제가 됐다. 2000년 2월이 마무리될 즈음 그는 멕시코 한 휴양도시에서 다른 과학자 여럿과 함께 지구의 거대한 변화를 놓고 토론 중이었다. 그때 문득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인류세를 살고 있단 말입니다.” 

    ‘인류의 시대(The Human Age)’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크뤼천이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에 지질시대 한 단위인 세를 뜻하는 ‘-cene’을 붙여 즉흥적으로 만든 인류세는 이어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과학잡지에도 등장하는 개념이 됐다. 

    여기서 지질시대에 대한 상식부터 점검해보자. 통상적으로 지구에 다수 생명체가 존재하기 시작한 5억42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 전체 역사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이렇게 셋으로 구분한다. 고생대는 5억4200만 년 전부터 2억5100만 년 전까지를 가리킨다. 오래된 순으로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로 나뉜다.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   

    그다음 중생대는 약 6500만 년 전까지로, 오래된 순으로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이뤄져 있다. 마찬가지로 신생대는 약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이후부터 약 1800만 년 전까지를 제3기로, 그 후부터 현재까지를 제4기로 구분한다. 200만 년 정도에 불과한 제4기는 다시 플라이스토세, 홀로세(Holocene)로 나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홀로세는 약 1만1700년 전 가장 최근의 빙하기(플라이스토세 빙하기)가 끝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지칭한다. 그런데 크뤼천은 인류가 영향을 끼친 수많은 지질학적 규모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더는 홀로세가 아닌 새로운 지질시대, 즉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크뤼천이 내놓은 근거는 상당히 설득력 있다. 먼저 인간 활동으로 지구 육지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가 변형됐다. 지난 100년간 인류는 세계 주요 강을 대부분 댐으로 막거나 그 방향을 바꿨다. 최근 사례만 놓고 보면 중국 정부가 양쯔강에 세운 싼샤(三埉)댐이나 이명박 정부가 4대강 곳곳에 만든 보가 그 유력한 증거다. 

    특히 크뤼천은 인간이 대기의 구성 요소를 변화시킨 데 주목한다. 자연에서 식물이 고정하는 질소보다 훨씬 더 많은 질소비료가 사용되면서 대기 중 일산화질소가 늘어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 삼림 파괴 때문에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200년간 40% 증가했다.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온실기체인 메탄 농도도 같은 기간 2배나 뛰었다. 

    사실 인류세 개념은 인류가 초래한 전 지구적 변화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노(老) 과학자의 발언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과학계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질학적 경계를 결정하는 국제층서위원회(ICS)는 2016년 9월 초 인류세 도입을 지지하는 과학자의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자들이 인류세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 앞으로 10만 년 혹은 100만 년이 지났을 때 (인간이 지구에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설령 인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과학자가 지금의 시점을 돌이켜보면서 연구한다면 또렷한 지질학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인류세의 시작, 1610년? 1964년?   

    강원 인근의 한 건축물 쓰레기 매립장. 인류가 버린 쓰레기가 지형은 물론 대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 제공=뉴스1]

    강원 인근의 한 건축물 쓰레기 매립장. 인류가 버린 쓰레기가 지형은 물론 대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 제공=뉴스1]

    지금 과학자 사이에서 대표적 논쟁거리는 인류세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할지다. 만약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면 정말 그 시점은 언제일까. 

    일반적으로 산업화가 시작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어떤 시점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을 듯하다. 그러나 과학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2015년 3월 11일 사이먼 루이스와 마크 매슬린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Defining the Anthropocene’)을 보면 1610년이 유력한 후보임을 알 수 있다. 

    1610년에는 지구 전체적으로 여러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유럽인이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할 때 옮겨간 천연두로 5000만 명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망했다. 그래서 이즈음 아메리카 대륙의 농업 생산량이 급감해 전 지구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낮았다. 

    또 다른 후보는 1964년이다. 핵실험이 가장 활발해 인공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낙진이 지구에 가장 많이 남은 해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이 계속해서 감소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수십만 년 뒤에도 이 방사성 낙진이 또렷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인류세의 시작으로 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사성 낙진을 제외하면 20세기 중반은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다. 이 시점부터 인공 방사성 물질 외에도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전 지구에 걸쳐 인류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얀 잘라시에비치 같은 과학자는 20세기 후반 지구 곳곳에 마련된 쓰레기 매립장이야말로 인류세의 상징이 되리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류세를 상징하는 화석은 무엇이 될까. 잘라시에비치는 약간의 과장을 섞어 그 유력한 후보로 ‘닭뼈’를 찍었다. 인류가 가장 많이 잡아먹는 동물이 바로 닭이기 때문. 실제로 100만 년 후 어떤 과학자가 인류세의 화석을 연구한다면 곳곳에서 닭뼈를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한 해 도살되는 닭은 500억~600억 마리. 먼 훗날 오늘날을 ‘인류의 시대’가 아닌 ‘닭의 시대’로 기록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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