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 있는 공자학원 본부. [중국 ‘국가한판’ 인터넷 사이트]
중국에서 공자를 본격적으로 숭상한 계기는 2008 베이징올림픽이었다. 당시 개막식 공연에서 공자와 제자 3000명이 행진하는 퍼포먼스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졌다. 이후 공자와 유교를 부활하는 운동이 중국 전역에서 벌어졌다. 2011년에는 베이징 심장부인 톈안먼광장의 중국국가박물관 인근에 높이 9.5m의 공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공묘를 직접 방문했고 공식 석상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공자학원 설립에 숨은 뜻
중국 공자학원이 전 세계에 설립된 모습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 [차이나타임스]
중국 정부가 각국 대학 등과 협력해 중국어·중국사·중국 문화 등을 가르치는 비영리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공자학원’이라 이름 붙인 것도 원모심려(遠謀深慮)가 상당히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 설립 목적을 중국어와 중국 문화 보급으로 다양한 문화 발전과 화목한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체제 선전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서울에 처음 문을 연 공자학원은 현재 138개국, 525곳에 설립돼 있다. 각국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산하 국가한판(國家漢辦)이 관리한다. 운영 총책임자는 최근까지 부총리를 지낸 류옌둥이다. 공자학원의 다른 운영 간부도 모두 공산당 출신 원로다. 공산당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셈이다.
국가한판은 공자학원 설립 비용 100만 달러(약 10억6600만 원)와 매년 운영비 10만∼15만 달러를 대는 것은 물론 교과서를 선정하고, 중국어 교사도 직접 고용해 훈련시킨다. 각국 대학은 중국어 강좌와 강사 양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잖아 공자학원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공자학원 1000개를 설립할 계획이다. 공자학원을 통해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전 세계 수강생은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120년간 137개국에서 1000여 개, 영국 브리티시 카운슬이 70년간 110개국에서 250여 개, 독일 괴테 인스티튜트가 50년간 83개국에서 147개가 설립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공자학원을 설립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미국의 경우 미시간대, 노스캐롤라이나대, 조지워싱턴대 등 캠퍼스에 지금까지 공자학원 110개가 설립됐다. 단일 국가로는 최대다. 유럽 각국 대학에도 공자학원이 들어서고 있다. 또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관련된 51개국에도 공자학원 135개가 설립됐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정부가 각국에 세운 공자학원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공자학원에선 톈안먼 사태, 대만과 티베트 독립 문제 등은 언급조차 할 수 없는 금기사항이다. 중국 군사력 증강, 공산당 지도부의 파벌 문제 등도 건드릴 수 없는 주제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서방국가는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통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체제 선전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방국가 대학에선 공자학원 폐쇄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는 중국 정부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마셜 살린스 시카고대 인류학과 교수는 “공자학원에서는 대만과 티베트 독립 문제, 톈안먼 사태 등에 대한 강의나 학술행사를 열 수 없다”며 “이는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 내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공산당 이념과 정치 선전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도 “전 세계 대학에 세워진 공자학원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교육기관 본래의 기능을 넘어선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미국 정치학자다. 스웨덴 스톡홀름대도 공자학원이 중국 문화 전파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선전도구로 활용돼왔다며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미 공화당의 ‘외국 영향력 투명화 법안’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열린 공자학원 설립 행사모습(왼쪽). 캐나다 토론토에서 학부모와 주민들이 공자학원 설립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 ‘국가한판’ 인터넷 사이트, 에폭타임스]
미국 의회도 공자학원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공화당 마코 루비오, 톰 코튼 상원의원과 조 윌슨 하원의원은 3월 22일 공자학원을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하도록 하는 ‘외국 영향력 투명화 법안’을 상·하원에 각각 제출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공자학원은 학술단체가 아닌, 중국 정부와 공산당을 홍보하는 로비 조직으로 취급받게 된다. 또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의 적용을 받아 앞으로 법무부에 등록하고 활동 범위와 자금원 등을 밝혀야 한다. 이 법안은 각 대학에 외국 기관과 단체 등으로부터 5만 달러(약 5332만 원) 이상 기부와 계약, 사례품 등을 받을 경우 반드시 공시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FARA는 1938년 나치 독일이 미국에서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것을 봉쇄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아무튼 공자학원이 앞으로 교육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공자가 가장 중시했던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울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