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집값 상승세에 기름 부을까

정부, 재건축 아파트 5년 거주 시 매도 가능하도록 규제 일부 완화

  •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8-01-23 14:33:5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뉴시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뉴시스]

    정부의 오판이었던 걸까. 재건축 아파트 거래를 제한하면 집값이 안정화될 줄 알았지만,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3구의 거래량은 비수기임에도 1865건을 기록하며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수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등록에 한 달가량이 걸리기 때문에 상승폭은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다. 통상 직전 월 실거래가보다 오른 가격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할 때 서울 집값은 강남3구를 중심으로 꾸준히 오르는 양상이다.

    규제 완화되자 기다렸다는 듯 거래

    이런 와중에 정부는 1월 25일부터 재건축 조합원 물량 가운데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경우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 발표 당시 정부는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 조합원 매물은 지위 양도를 할 수 없게 했다. 예외적으로 조합설립 후 3년 이내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없고 3년 이상 소유한 경우, 사업시행인가 후 3년 이내 착공하지 못하고 3년 이상 소유한 경우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뒀다. 

    이를 두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졌다.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건축심의,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이주, 착공, 준공, 입주까지 총 8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정부가 조합설립인가 이후 단계에서 조합원 지위 양도를 못 하게 막았으니 조합원들은 졸지에 출구가 막혀 좋든, 싫든 5년 이상 걸리는 재건축 사업에 동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서울에서도 재건축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강남구 개포동, 서초구 반포동, 송파구 잠실동 등에 거주하고 이에 해당하는 주민들이 국회 등에 민원을 넣었다. 이후 서울 강남을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예외적으로 거래를 허용하는 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실거주 목적으로 오래 보유한 조합원에 한해 지위를 양도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1월 25일부터 일부 재건축 단지는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 4개월간 거래가 막혔던 반포·개포 재건축 아파트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반포동에는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와 신반포3차, 경남아파트 등이 있고 잠실동에는 잠실 주공5단지, 개포동에는 개포 주공4단지 등이 있다.



    매물 없는데 호가는 치솟아

    서울 반포 일대 부동산 앞에 재건축 아파트의 거래 가능 조건을 알리는 전단지가 꽂혀 있다(왼쪽). 서울 재건축 단지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지호영 기자, 뉴시스]

    서울 반포 일대 부동산 앞에 재건축 아파트의 거래 가능 조건을 알리는 전단지가 꽂혀 있다(왼쪽). 서울 재건축 단지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지호영 기자, 뉴시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워낙 노후화된 단지가 많아 5년 거주 요건을 채울 수 있는 조합원이 적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다. 1월 2일 반포동 S부동산중개업소에 전화를 걸어 조합원 지위를 양도받을 수 있는 매물이 있느냐고 묻자 “마침 매물이 1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반포3차 통합 재건축에 속한 신반포2·3차 전용면적 56.9㎡가 11억6000만 원에 나와 있다는 것. 추가 공사비로 4억~5억 원을 내야 하고, 이주비는 2억~ 3억 원가량 지급되며, 향후 전용면적 59㎡를 받는 매물이었다. 즉 해당 매물의 가격은 최소 15억6000만 원으로 3.3㎡당 약 6500만 원인 셈이었다. 

    인근 신축 아파트인 아크로리버파크의 동일 면적이 지난해 10월 16억 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4000만 원가량 낮은 편이었다. 이에 공인중개사는 “싼 가격은 아니지만 향후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3.3㎡당 7000만~ 8000만 원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단지는 지난해 12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했고 2022년 8월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통화하던 중 공인중개사는 “10분 전에 문의한 사람이 계약금을 넣었다. 25일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올해 안에 이주가 예정돼 있어 이주비를 빼고 당장 자기자본이 8억~9억 원가량 있어야 하는데도 살 사람이 금방 나타난 것이다. 

    반포지역 최대 재건축 단지로 지난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해당 단지의 경우 전용면적 59㎡도 있지만 84~196㎡ 등 중·대형 평형이 상당수다. 면적이 넓다 보니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금까지 거주하는 조합원도 많다. 이에 5년 거주 요건을 채운 조합원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반포동 B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현재 물건이 2개 정도 나와 있다. 향후 전용면적 84㎡를 받는 59㎡ 매물은 19억 원, 전용면적 197㎡를 받는 105㎡ 매물은 30억 원에 나와 있다. 추가 공사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매물이지만 워낙 가격이 높아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연초부터 매도와 매수 문의전화는 꾸준히 오는데 조합원은 ‘지금까지 버텼는데 조금만 더 버틸까’를, 매수 희망자는 ‘너무 비싼 것 아닌가’를 고민하고 있어 실제 거래로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전용면적 76㎡, 81㎡, 82㎡ 등 3가지로 구성돼 있는데 중형 평형에 오래 거주한 조합원의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반포동에 비해 매물이 상당수 있는 편이다. 1월 11일 온라인 N부동산거래소에 나와 있는 매물의 가격은 전용면적 76㎡가 17억~18억9000만 원, 82㎡가 18억1000만~20억 원이었다. 잠실동 J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집값이 상당히 올랐다고 판단한 조합원들이 매물을 조금씩 내놓고 있다. 아직까지 거래는 없는데 호가가 상당히 높다. 실제 거래가 된다면 그 가격이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숨통 트였지만, 가격 상승 필연적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는 현재 이주 마무리 단계로, 올해 상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갭투자가 불가능한 데다 추가 분담금까지 있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매물로는 향후 전용면적 59~130㎡를 받을 수 있는 것이 12억~ 15억5000만 원대에 나와 있는데 추가 공사비가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5억 원까지 필요하다. 개포동 H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매도와 매수 문의는 많은데 실제 거래는 쉽지 않다. 적어도 10억 원 이상 현금을 쥐고 있어야 매입이 가능한데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부 규제 완화 조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원장은 “숨통을 트여주는 것은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본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재건축 단지 거래가 불가능했는데, 그러다 보니 호가만 오르는 문제가 있었다. 매물이 시장에 조금씩 풀리고 거래가 되면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도 “최근 집값이 오르는 것은 매수 희망자에 비해 매물이 적어 매도 우위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재건축의 경우 거래를 할 수 없다 보니 더욱 그랬는데, 매물이 풀리면 가격이 소폭 조정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강남3구의 재건축 아파트는 특수성 때문에 가격 조정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팀장은 “강남3구 같은 핵심 지역의 집주인은 장기 보유를 생각한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도 매물이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만큼 강남3구의 집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수요자들이 매도 우위 시장을 쫓는다면 가격 상승세는 꺾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 원장은 “대출금리가 올랐다고 하지만 부담되는 정도는 아니다. 또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이는 부동산을 여전히 좋은 투자처로 생각한다. 이번 일부 규제 완화에 따른 가격 상승은 필연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