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기숙사 반대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2월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한양대 기숙사 신축계획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서울 시내 기숙사 건립 문제를 두고 대학 구성원과 주민들 간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 성동구 한양대의 캠퍼스 내 기숙사 신축 심사가 통과됐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직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허가를 받은 뒤에도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져 결국 공사가 지연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졸업을 앞둔 한양대생 윤모(25) 씨는 2017년 여름 기숙사 입사 선발에 또 떨어졌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집이 가까운 탓이었다. 윤씨 집은 서울지하철 4호선 종점인 오이도역(경기 시흥시 정왕동) 인근. 대중교통으로는 편도 2시간이 걸린다. 한 학기가 남아 통학도 생각해봤지만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다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한양대 후문 사근동의 9.9㎡짜리 방은 보통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공과금이나 관리비를 합하면 겨우 한 사람 누울 공간의 자취방에서 사는 데 월 55만~60만 원이 나간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이나 영등포구 신길동의 같은 크기 방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40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비싼 편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확인해본 결과 위치가 좋거나 전용면적 9.9㎡ 이상이면 월세가 60만~70만 원까지 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근동보다 깨끗하고 조용한 서울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 6번 출구 인근 원룸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는 65만~70만 원 선이다. 한편 기숙사는 보증금과 공과금 없이 월 18만~26만 원(2인실 기준)을 내면 된다.
윤씨는 결국 월 48만 원인 하숙집에 들어갔다. 한양대 정문 맞은편 골목에는 고시원과 하숙집이 밀집해 있다. 그의 방은 전용면적 9.9㎡에 조금 못 미친다. 침대와 책상이 놓인 공간을 빼면 성인 남성이 쪼그려 누울 공간밖에 남지 않는다. 방 안에 화장실도 없어 씻으려면 같은 하숙집 사람들과 눈치전쟁을 벌여야 한다.
윤씨가 최근 걱정하는 것은 추위다. 그는 “기숙사는 개별난방이지만 이곳은 주인집이 조절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씨는 자취방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따로 관리비를 내지 않는 점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기숙사 떠나면 고생”
한양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임직원, 학생들이 12월 6일 서울시청 앞에서 ‘한양대 기숙사 신축 허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는 “혼자 산다는 이점이 있지만, 월세를 생각하면 기숙사에 있을 때가 훨씬 좋았다. 신입생 때 기숙사에 살았는데 난방비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요즘은 자취방보다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더 따뜻해 집에 들어가기 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한양대는 2015년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1500명가량 수용 가능한 기숙사를 교내에 새로 지을 예정이었다. 2016년 3월에는 이 계획을 바탕으로 대학 세부시설 조성계획(기본계획) 변경설정 심사를 서울시에 신청했다. 이 계획은 2017년 6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 상정됐으나 높이 조정 및 차폐감 최소화 검토를 이유로 보류됐다. 11월 15일 재상정됐으나 위원 가운데 일부가 이 안건 심의를 마치고 중도 퇴장해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학교 인근에서 임대업을 하는 주민들은 기숙사가 신축되면 수입이 줄어든다며 지금까지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반발로 새 기숙사 수용인원은 800여 명까지 떨어졌으나 반대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한양대 학생들은 기숙사 신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양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외부 임대를 합쳐 12.5%로 서울지역 대학 평균(16.1%)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
서울시는 12월 6일 도계위를 다시 열고 ‘한양대 도시계획시설 세부시설 조성계획 변경 결정안’을 수정, 가결했다. 학생들은 도계위에 신축 심의를 촉구하며 전날 밤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밤새 대기했다. 앞으로 한양대는 신축 기숙사인 ‘제7생활관’을 비롯해 대운동장 지하주차장과 연구센터를 새로 지을 수 있게 됐다. 성동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으면 당장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또 허가는 받았지만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외국인 기숙사 공사도 함께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인근 주민들이 구성한 ‘한양대 기숙사 반대 대책위원회’ 측은 구청 허가 사전 절차인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에 제동을 걸 계획이다. 윤씨는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심의심사 통과에도 2년이 걸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의 걱정을 단순히 기우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계위 심사를 통과한 뒤 주민들의 반대로 건립이 중단된 기숙사가 많기 때문. 고려대는 2013년부터 4년간 학교 대지 내 1100명 수용이 가능한 기숙사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성북구청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구청 허가까지 다 받았지만 착공을 못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성북구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는 2월 모든 허가 절차가 끝났다. 행복기숙사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인근 대학생들을 위해 짓는 공공기숙사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아직 삽 한 번 떠보지 못했다. 기숙사 대지 인근 한신·한진아파트 주민들은 공사기간 분진과 소음 발생은 물론, 기숙사가 지어진 뒤 조망권과 일조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과 성북구청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젊은 층의 대거 유입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며 성폭력 사건이 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글도 게재됐다. 성북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행복기숙사는 방학기간인 내년 초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내가 듣기로는 말야”
높은 주거비 탓에 대학생들은 쉽게 자취방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뉴스1]
학교에서 돈을 벌려고 기숙사를 신축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양대 인근에서 임대업을 하는 정모(61) 씨는 “기숙사를 기부채납 방식으로 지어 막상 완공돼도 원룸보다 훨씬 비싸다고 들었다. 결국, 학생들도 희생양”이라고 밝혔다. 사근동 인근 주민 김모(59) 씨는 “집세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여기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해줘야 한다. 학교에서 기숙사를 지을 생각만 하지 말고 인근 원룸을 임대해 기숙사로 활용하는 상생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교 측에 확인한 결과 주민들이 알고 있는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한양대 측에 따르면 새로 지을 기숙사는 내국인 학생들을 위한 시설로 외국인 학생들을 입사시킬 계획이 없다. 게다가 월 기숙사비도 다른 기숙사와 똑같이 책정된다. 한양대 관계자는 “이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자 2017년 5월과 8월 두 번이나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방해로 전부 무산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임대업과 관련 없는 일부 주민은 기숙사 신축을 찬성하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한양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윤모(44·여) 씨는 “기숙사가 생기면 학생들 주머니 사정도 나아지고 근처 상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왕십리역 근처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박모(54) 씨는 “현재 한양대, 왕십리역 인근 원룸 가격이 필요 이상으로 높다. 왕십리역은 교통이 편리해 직장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학교와 가까운 지역은 가격이 너무 비싸 직장인들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기숙사 신축으로 원룸 가격이 안정되면 직장인들이 유입돼 상권에 긍정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