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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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젊은 세대에게 특별해진 삼촌세대의 추억

롤러장과 즉석사진 자판기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 모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12-26 17: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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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아재’의 사전적 의미는 아저씨의 낮춤말이지만 요즘은 10, 20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40, 50대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세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요즘, 쏟아지는 신조어와 새로운 놀이문화 때문에 30대만 돼도 ‘아재’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렇게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최근 ‘아재’들의 젊은 시절 놀이에 빠져들고 있다. 1980년대 유행하던 롤러스케이트가 인기를 끌고, 90년대 번성하던 흑백 즉석사진 자판기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일부 ‘아재’도 옛 추억에 흠뻑 취하고 있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롤러스케이트장 부활의 효시가 된 인천의 ‘롤캣’. 이곳에선 기성세대가 젊은 층보다 더 화려한 기량을 선보인다. [박해윤 기자]

    롤러스케이트장 부활의 효시가 된 인천의 ‘롤캣’. 이곳에선 기성세대가 젊은 층보다 더 화려한 기량을 선보인다. [박해윤 기자]

    롤러스케이트가 젊은 층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서울시가 2015년 11월 서울시민청에 한시적으로 ‘롤러장’(롤러스케이트장)을 설치했다. 주말마다 문을 연 롤러장은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린 학생들에겐 롤러스케이트가 새롭게 다가오고, 1980~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 

    2016년 2월 인천에 롤러장이 들어섰다. 상설 롤러장이 처음으로 다시 생긴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롤캣’은 서울시민청에 비해 쾌적한 시설과 독특한 인테리어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매년 문을 여는 서울시민청 롤러장을 ‘롤캣’이 지원하고 있다. 

    12월 19일 찾아간 인천 남구의 롤러장 ‘롤캣’은 1980년대가 배경인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입구서부터 오래된 팝송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늘어서 있는 롤러스케이트들이 보였다. 홀과 트랙은 천장 미러볼에 반사된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났다. 네온사인과 철제 셔터 등으로 만든, 할리우드 영화 속 오래된 롤러장을 완벽하게 재현해놓은 모습이었다. 



    이날 롤캣을 방문한 시간은 오후 4시. 학기 중이라 평일 주요 고객으로 알려진 학생들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벌써 몇몇 학생이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 롤러장을 돌고 있었다. 이처럼 학생층에게 롤러장이 알려진 것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분이다. 영화 속 장면 같은 롤러장에 젊은 연인들이 놀러 와 사진을 찍어 SNS에서 공유했던 것. 

    SNS를 통해 롤캣이 알려지면서 뮤직비디오나 광고 촬영장으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힙합 가수 빈지노와 힙합크루 AOMG 소속 엘로가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롤캣 관계자에 따르면 패션 화보나 광고 사진 등을 찍고자 롤캣을 방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근에 사는 대학생 조모(20·여) 씨는 “뮤직비디오에서 보고 (이곳을)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롤러스케이트도 즐겁고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며 즐거워했다. 

    롤캣의 인테리어가 유명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롤캣을 만든 권기범 대표는 과거 영화 등 영상업계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그 덕분에 롤러장 조명과 내부 장식품은 물론, 매점이나 로커에도 1980년대 감성이 촌스럽지 않게 녹아 있다. 권 대표는 “인테리어에만 1년가량 걸렸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롤캣에서) 뮤직비디오나 화보를 촬영할 때 이곳의 인테리어 소품을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손님들도 주로 거기서 사진을 찍는다”고 밝혔다.

    “저 아저씨 멋있어요”

    촌스럽지 않은 복고풍으로 젊은 세대를 사로잡은 인천 ‘롤캣’의 인테리어(왼쪽)와 이곳에 비치된 롤러스케이트. [박해윤 기자]

    촌스럽지 않은 복고풍으로 젊은 세대를 사로잡은 인천 ‘롤캣’의 인테리어(왼쪽)와 이곳에 비치된 롤러스케이트. [박해윤 기자]

    원래 유통업에 종사하던 권 대표가 갑자기 롤러장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들 때문이다. 그는 “일에 바빠 어린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아이와 함께 즐길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때 생각난 것이 롤러장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대가 거셌다. 유행이 지난 지 30년이 다 된 아이템으로 창업에 뛰어들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권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물론 창업 실패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롤러장 창업을 결심한 만큼 큰 수익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롤캣 입구 바닥에 적힌 SH라는 글자는 권 대표 아들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권 대표는 롤러스케이트가 잘 미끄러지지 않으면서도 주행에 불편함이 없는 트랙을 만들고자 트랙 공사를 3번이나 다시 했다. 권 대표는 “초보자에겐 트랙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겠지만, 과거 롤러장에서 살다시피 하던 3040세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롤캣 트랙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은 40대 동호인들이었다.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뒤로 주행하는 기술은 기본이었다. 이들은 멈추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 제동할 때면 롤러스케이트 앞에 붙어 있는 제동장치를 이용해 속도를 줄이면서 트랙 측면에 있는 바를 잡는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자동차 바퀴가 미끄러지는 드리프트(drift)처럼 롤러스케이트의 네 바퀴를 미끄러트리며 트랙에서 멈췄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학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아저씨 봤어?” 

    이처럼 ‘아재’ 베테랑의 기술에 매료된 젊은 친구들이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롤러장은 세대 간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롤캣을 종종 찾는다는 김모(45) 씨는 “이곳이 학창 시절 다니던 롤러장보다 바닥이 더 좋은 것 같다. 살짝만 발을 굴러도 롤러스케이트 바퀴가 빠르게 굴러간다. 가끔 학생들이 다가와 뒤로 주행하는 방법 등을 묻곤 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롤러장을 찾는다는 이모(44) 씨는 “야구 관람, 낚시 등 내 취미를 싫어하던 아이들이 롤러장은 몹시 즐거워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 외출하자고 하면 불평부터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신나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롤캣은 음악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주로 신나는 올드팝을 트는데 원곡은 아니었다. 권 대표는 “젊은 세대도 좋아할 수 있도록 조금씩 편곡이나 믹싱을 한 노래들이다. 주말에는 처음 롤러장을 찾은 손님들을 위해 따로 DJ를 두고 있다. 모두가 알 만한 댄스곡과 올드팝을 번갈아 가면서 틀고 이벤트도 진행해 손님들이 즐거워한다. 물론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기적으로 롤러장을 찾는다는 황모(44) 씨는 “나이가 드니 건강관리를 위해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는데, 이곳에 오면 운동이 즐겁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달리다 보면 학창 시절이 떠올라 힘든 것도 금방 잊는다. (롤러장에) 오기만 하면 서너 시간 동안 롤러스케이트를 벗지 않으니 매주 몸무게가 1kg씩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롤캣에서는 초심자를 위한 강습도 진행하고 있다. 롤캣 관계자는 “젊은 세대도 어렸을 때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배우면 금방 적응해 친구들끼리 장난까지 쳐가며 트랙을 달린다”고 밝혔다. 게다가 롤캣에는 헬멧과 팔꿈치·무릎 보호대 등 안전장구가 비치돼 있다. 

    숙련자를 위한 별도의 롤러스케이트도 팔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롤러스케이트를 판매하는 곳이 없어 해외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롤캣은 더 좋은 성능의 롤러스케이트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바퀴 등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롤러스케이트를 판매 중이다. 

    롤캣은 개업 2년이 채 안 됐지만 벌써 대전에 지점을 열었다. 인천과 경기 일산 등에도 롤러장이 생기고 있다. 이에 대해 권 대표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밝혔다. 

    즉석사진 자판기도 젊은 세대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인생네컷’을 검색하면 사진 십수만 개가 뜬다. 과거 스티커사진 자판기와 유사한 즉석사진 자판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인생네컷의 즉석사진 자판기는 과거 일부 지하철역에 설치됐던 자동 증명사진 자판기와 유사한 모습이다. 흑막으로 가려진 부스 안에 작은 간이의자가 설치돼 있고, 그곳에 앉아 사진을 찍는 것.

    사진 자판기 화려하게 부활

    서울 홍대 앞 인근의 ‘인생네컷’ 즉석사진 자판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인생네컷 페이스북]

    서울 홍대 앞 인근의 ‘인생네컷’ 즉석사진 자판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인생네컷 페이스북]

    ‘인생네컷’ 즉석사진 자판기의 결과물. 4컷을 고르면 사진 4장으로 이뤄진 한 세트가 2장 출력된다. [박해윤 기자]

    ‘인생네컷’ 즉석사진 자판기의 결과물. 4컷을 고르면 사진 4장으로 이뤄진 한 세트가 2장 출력된다. [박해윤 기자]

    스티커사진 자판기와 유사한 측면도 있다. 증명사진 자판기는 사진을 찍은 뒤 보정을 할 수 없었지만, 인생네컷은 스티커사진 자판기처럼 보정이 가능하다. 물론 과거 스티커사진 자판기처럼 가발을 쓰거나 없는 이미지를 추가하는 등의 기능은 없다. 그 대신 스마트폰 사진 애플리케이션(앱)에 주로 사용되는 필터 기능이 있다. 인생네컷의 필터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흑백 필터’. 인생네컷 관계자에 따르면 흑백사진 필터 중에서도 오래전 찍은 사진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필터의 인기가 높다. 사진을 찍고 보정을 마치면 사진을 4장 골라 이를 인쇄하는 방식이다. 

    서울 홍대 앞과 명동 등 번화가나 대학가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 자판기 앞에는 항상 줄이 끊이지 않는다. 좁은 부스 안에서 찍는 즉석사진을 위해 추운 날씨에도 손을 불어가며 자판기 앞에 줄을 서는 것. 홍대 앞 등에서는 아예 건물 안으로 즉석사진 자판기를 들여놓은 경우도 많다. 기존 사진 자판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젊은 층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역시 SNS 때문이다. SNS에서 즉석사진 인증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데이트 코스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 

    서울 왕십리 인생네컷 자판기 앞에서 만난 윤모(24·여) 씨와 김모(26) 씨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인화된 사진을 본 지가 오래됐다. 그날의 만남, 기분 등을 기억하겠다며 사진을 찍지만 정작 손에 들어오는 실물은 없다. 하지만 즉석사진 자판기로 사진을 찍으면 그 자리에서 딱 둘이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두 세트의 사진이 나오는데, 이를 간직하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재훈 인생네컷 대표는 “외국에서는 젊은 세대가 해외 주요 도시를 여행하며 사진 자판기에서 찍은 본인의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등 사진 자판기 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스티커사진 자판기만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새로운 형식의 즉석사진 자판기를 만들면 시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고 말했다. 

    양 대표의 전략은 주효했다. 홍대 인근 즉석사진 자판기에서 사진을 찍은 강모(21·여) 씨는 “해외 영화나 드라마에서 지하철역 등에 설치된 사진 자판기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장면을 종종 봤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서울 지하철역에는 사진 자판기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고 공주풍으로 화려하게 꾸미는 스티커사진 자판기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 인생네컷에서 찍은 사진을 SNS 등에서 보고 내가 원하던 분위기의 즉석사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양 대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스티커사진이 널리 퍼져 30대 이상 세대에게는 즉석사진 문화가 익숙하다. 하지만 10, 20대 젊은 세대는 즉석사진 자판기에 호기심을 느껴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스티커사진과 달리 장식을 최소화하고 필터만 적용되는 방식이라 기성세대도 거부감 없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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