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없이 호령이나 위협으로 으르는 짓.’ 국어사전에 나오는 ‘엄포’라는 단어의 뜻풀이다.
갈등 상황에서 한쪽이 ‘당신 가만두지 않겠다’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이를 엄포로 알아들었다면 ‘해볼 테면 해봐라’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적 위협으로 받아들였을 때는 ‘그러지 말고 대화로 풀자’고 말하거나 성난 상대방을 달래는 태도를 취한다. 진짜 법적 절차를 밟거나 정면충돌할 경우 입을 수 있는 손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연일 ‘말 전쟁’을 하고 있다. 급기야 “북한 김정은은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죽이는 일을 개의치 않는 분명한 미치광이(mad man)”(트럼프)라거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미국 통수권자의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김정은) 같은 막말로 치달았다.
미국과 북한의 국력이나 군사력을 단순 비교하면 어른과 초등학생 수준인데도, 미국과 북한은 끊임없이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응해 김정은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미국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쟁은 분명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될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전쟁 불가라는 우리의 확고한 뜻만 주변 나라들에게 밝히면 된다”고 하지만 엄연한 국제관계의 현실에서 보면 순진무구한 희망으로 보인다. 평소 나(한국)를 보살펴주는 삼촌(미국)에게 삼촌을 싫어하는 내 또래(북한)를 감싸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사이좋게 지낼 테니 삼촌은 그냥 그 녀석을 혼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또래가 다치는 것보다 내가 다칠까 봐 걱정이다.
센 척하는 사람, 복종 강요하는 사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관점에서 엄포를 놓는 심리를 분석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하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겁 많음을 숨기고자 일부러 센 척 말하고 행동하는 유형이다. 실제로는 자기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초조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이 엄포를 받아들여 자신의 뜻대로 일이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만일 주변에서 엄포를 무시하거나 그것에 개의치 않으면 꼬리를 내린다. 이때 주변에서 ‘당신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나’라고 물으면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모두를 위해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가는 게 더 낫다’고 말을 바꾸거나 변명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떠버리’나 ‘허풍쟁이’로 인식한다. 이처럼 속으로는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데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거나 더 나아가 매우 센 척 행동하는 것을 ‘역(逆)공포행동’(counterphobic behavior·무서운 상황을 스스로 찾는 행동)이라고 한다.
어릴 적 겁이 많고 심약하던 소년이 커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거나, 병원에 가기를 무서워하던 소녀가 나중에 외과의사가 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거친 비방을 들은 뒤 속으로는 매우 겁이 나고 불안하지만, 겉으로는 ‘미제(美帝) 타도’와 ‘백악관 공격’을 다짐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엄포는 뜻 이루려는 경고’
다른 하나는 지배적인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지배와 영향 안에 두고자 하는 유형으로, 이른바 ‘권력 지향형’ ‘권력 향유형’이다. 엄포를 놓음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따르고,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알아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다.실제로 트럼프는 중국을 상대로 경제제재를 엄포하고 미국의 한발 앞선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중국의 대북 압박 동참을 어느 정도 이끌어냈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가능성을 거론해 개정 협상을 시작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서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데다, ‘트럼프 성격상 한미 FTA를 폐기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낳아 우리 정부를 재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것이다. 대미 교역에서 지금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한미동맹 유지가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트럼프가 자신의 엄포가 통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그의 실행을 막을 수 있기도 하다. 즉 엄포를 놓는 사람의 두 가지 유형 가운데 트럼프는 겁쟁이라기보다 지배자에 가깝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우리로서는 끔찍한 일이지만,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내면서도 북한을 상대로 선제공격에 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고 최종적으로 미국 국익과 자국민을 지킨다면 행동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몰락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순순히 핵 폐기를 받아들여야 우리의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및 제재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과 러시아 처지에서 남북관계를 진단하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다 보면 나중에 미국은 “너는 그때 동네의 다른 삼촌들(중국, 러시아)과 친했잖아. 그때 그 녀석(북한)을 감싸줬잖아. 그러니 앞으로 너는 빠져 있어”라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트럼프의 엄포는 허풍쟁이의 엄포가 아니라 뜻을 이루기 위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경고를 연이어 날린 다음 행동으로 옮기면서 “내가 그때 여러 번 말했잖아. 말로 했을 때 들었어야지”라고 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트럼프의 엄포 정치가 실제 행동이 아닌 그저 엄포로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