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9

..

전조 많고 진단 쉬운 ‘급성심근경색’ 이건희 회장 치료진 왜 사전에 몰랐나

언제든 재발 위험 커…퇴원 후 지속적 항혈소판 치료가 관건

  •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4-05-26 13: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조 많고 진단 쉬운 ‘급성심근경색’ 이건희 회장 치료진 왜 사전에 몰랐나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3주 전인 4월 18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 당시에도 몸이 많이 불편한 듯 부축을 받았다.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이 5월 10일 밤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많은 음모설이 시중에 떠돌고 있다. 그중에는 삼성그룹 측이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고 할 만큼 악의적 소문도 많다.

    하지만 이 회장이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섰다는 삼성서울병원의 발표가 있은 후 의료계와 제약업계에선 이를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급성심근경색이라는 질환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커진 한편, 혈관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혈관 질환 관련 치료제의 판매량도 부쩍 늘고 있다.

    급성심근경색은 관상동맥이 갑자기 막힘으로써 심장 전체 또는 일부에 산소와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 3개 혈관으로 구성된 관상동맥은 지름 2~4mm 굵기이며 산소와 영양분을 담은 혈액을 심장근육(심근)으로 공급한다. 관상동맥이 막혀 혈액이 흐르지 못하면 심장근육 조직과 세포가 산소, 영양분을 받지 못해 괴사한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심장박동이 멈추고 사망하게 된다.

    명치나 가슴에 둔탁한 통증

    급성심근경색이 위험한 이유는 심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급사’하거나 목숨을 건지더라도 이미 파괴된 심장근육 또는 세포가 회복이 힘들어 뇌 손상 후유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김형곤, 수영선수 조오련, 가수 거북이의 ‘터틀맨’으로 알려진 임성훈이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이유도 바로 급성심근경색 때문이었다.



    급성심근경색은 딱딱해지거나(동맥경화) 좁아진(고지혈증) 혈관을 끈끈하고 탁한 피가 떡이 돼 뭉친 ‘혈전’(피떡)이 꽉 막으면서 발생한다. 의학용어로는 ‘혈관 폐쇄’라 부른다. 혈전은 흔히 상처가 생겼을 때 피가 딱딱하게 굳어진 것을 연상하면 된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이 주된 위험 인자이며 이는 흡연, 운동 부족, 비만 같은 나쁜 생활습관에서 비롯될 수 있다. 또한 급성심근경색, 협심증 등 허혈성 심장질환 관련 가족력이 있는 경우도 위험하며, 고령은 그 자체가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혈압, 호흡, 체온, 심장박동 수 등 모든 바이털사인(vital sign·활력 징후)이 안정돼 일반병실로 옮겨졌지만 이러저러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 의문은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이 회장 자택 인근의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과 협약까지 체결하면서 치밀하게 준비한 삼성서울병원 측이 어떻게 이 회장의 급성심근경색을 미리 예방하지 못했느냐는 부분이다. 관상동맥이 막힐 정도가 되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지병이 있거나 동맥경화가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상동맥의 이상 상태는 간단한 검사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의문의 한 축을 이룬다.

    또한 급성심근경색은 ‘급성’이라는 말이 붙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가슴 통증 같은 전조 증상이 있기 마련인데, 평소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 썼던 이 회장과 그 가족, 특히 주치의가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급성심근경색 환자는 대부분 명치나 가슴 한가운데 부분에서 둔탁한 가슴 통증을 느끼며 조이거나, 짓누르거나,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다. 통증이 가슴 외 부위로 퍼져나갈 수도 있는데 주로 왼팔, 목, 턱 등의 신체부위에 나타난다.

    김석연 서울의료원 심혈관센터장(순환기내과 과장)은 “2000년 폐암수술 후 앓고 있던 폐질환은 급성심근경색과 무관하며 이 회장에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지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급성심근경색은 아무런 지병이나 전조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혈관 상태가 평소 양호하던 환자들에게서도 아주 희박하지만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의문스러울 게 없다. 담배, 스트레스, 추위, 과로에 의해서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의문은 모든 바이털사인이 양호하게 돌아왔는데도 삼성서울병원 측이 진정(수면)치료를 2주 가까이 계속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회장의 건강과 관련한 억측이 계속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급성심근경색 환자는 심장 일시 정지 상태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의식이 깬 뒤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해도 길어야 일주일 입원하고 퇴원하는 게 보통이다.

    김석연 센터장은 “저체온요법은 급성심근경색 환자 가운데 뇌혈관이나 다른 장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사람에게 쓰는, 효과가 이미 검증된 좋은 치료법이지만 비싼 게 흠”이라면서 “CPR 과정에서 뇌혈관에 일부 손상이 갈 수 있지만 저체온요법과 진정치료를 신중하게 하면 정상으로 회복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진정치료를 지속한 이유가 가수면 상태에서 뇌로 가는 혈류량을 조금씩 조절함으로써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많은 혈액이 갑자기 뇌로 들어가 입을 수 있는 뇌혈관 손상을 최소화하려는 제대로 된 치료방법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차세대 항혈소판제 효과

    전조 많고 진단 쉬운 ‘급성심근경색’ 이건희 회장 치료진 왜 사전에 몰랐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목숨을 구한 두 병원. 삼성서울병원과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협약을 맺어둔 것으로 밝혀졌다.

    최대 관심사는 진정치료가 끝나고 이 회장이 잠에서 깨어난 후 경영활동 재개 등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얼마나 빨리 이뤄질까 하는 점이다. 막힌 관상동맥을 뚫어 혈관을 정상 상태로 유지하는 스텐트 시술의 경우 향후 1년여 동안 항혈소판제, 혈전용해제 등의 약물로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다시 막힐 확률이 높고, 그 경우 급성심근경색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데 이때 사망률은 50%에 이른다. 심근경색에는 ‘완치’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 심혈관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텐트 시술로 목숨을 건진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27%가 첫 시술 후 재발로 다시 시술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실제 급성심근경색 후 1년 이내 발생하는 급사가 전체 심장 돌연사의 50%를 차지할 정도다. 또한 급성심근경색의 재발로 목숨을 잃는 환자 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퇴원 후 1년 사망률은 2008년 8.2%, 2009년 8.3%, 2010년 8.1%로 8% 초반에 머물던 것이 2011년 들어 8.8%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0명 중 1명은 퇴원 후 1년 내 급성심근경색이 재발해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회장의 경영활동 복귀는 오히려 퇴원 후 치료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혈관 전문가들은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올바른 식단과 운동 등으로 건강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퇴원 후 1년까지는 항혈소판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항혈소판제는 급성심근경색을 포함한 급성관상동맥증후군 치료의 필수 요소로 이미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표준 약물치료 요법이다.

    김석연 센터장은 “항혈소판제는 혈소판의 응집을 차단함으로써 혈전 생성을 억제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치료제”라면서 “스텐트 시술을 마치고 퇴원한 후에도 혈전 예방을 위해 기본적으로 12개월 이상 꾸준히 항혈소판제를 투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존에 널리 사용하던 항혈소판제의 한계점을 극복한 차세대 항혈소판제 등으로 사망률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 환경이 마련됐다. 기존 항혈소판제보다 약효가 더 빠르게 나타나고, 환자마다 다를 수 있는 약물 효과의 차이가 거의 없이 균일한 효과를 보이는 차세대 항혈소판제가 개발된 것이다. 이로써 기존 치료제에 비해 심혈관 사망률의 상대위험도를 21% 낮추는 등 치료 환경이 개선됐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