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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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의 낭만과 오색의 음악

서울의 보물 낙원상가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jerome363@uos.ac.kr

    입력2015-12-02 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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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는 4대의 기타가 있다. 가끔 꺼내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치던 꽤 오래된 클래식 기타가 한 대 있었는데, 5년 전쯤 아내와 함께 기타를 배우면서 클래식 기타를 하나 더 장만했다. 엄마 아빠를 보면서 제 몸보다 큰 기타를 보듬고 치는 막내딸에게 생일선물로 자그마한 기타를 사줘 하나가 더 늘었고, 밴드활동을 하는 대학생 아들이 지난해 제 돈으로 통기타를 하나 더 마련했다. 가끔 집에서 기타를 치면 아이들도 제 기타를 들고 와 함께 연주한다. 아직 기타 넷이 다 모인 적은 없는데 마음먹고 한번 해봐야겠다. 아주 볼만하겠다.
    우리 집에 있는 이 4대의 기타는 모두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샀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서울시민 중에는 낙원상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젊은 층에서는 이름은 들어봤어도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음악의 메카라 부르는 낙원상가에는 구석구석 흥미로운 곳이 많다. 서울의 깊고 진한 맛을 두루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지번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284-6. 원래 탑동으로 불리던 이 지역 이름은 일제강점기 낙원동으로 바뀌었다. 가까이 있는 탑골공원이 서울에서 처음 조성된 서구식 공원이라 도심 속 낙원으로 불린 데서 기인했다. 6·25전쟁 이후 현재 낙원상가 자리에 피난민들의 노점시장이 생겼고, 1960년대 후반 서울시의 도심재개발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낙원시장도 철거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낙원상가가 ‘음악 중심’된 사연

    1960의 낭만과 오색의 음악

    1960년대 말 건축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낙원상가 전경.

    서울메트로 3호선 안국역에서 낙원상가를 지나는 삼일대로는 KDB산업은행 빌딩(옛 삼일빌딩)과 명동성당, 그리고 남산 1호터널과 한남대교, 경부고속도로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가장 중요한 남북도로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낙원상가를 짓기 전까지 이곳은 도로가 아니었다. 이곳에 도로를 만들고, 도로 위에 상가를 지어 시장 상인을 수용하고, 상가 위에 아파트를 지어 주택도 공급하는, 말하자면 1석3조의 해법으로 낙원상가와 낙원아파트가 탄생했다. 지금도 현판이 남아 있는 그때 건물 이름은 ‘낙원삘딍’이었다.
    1967년 공사가 시작돼 70년 준공됐고, 68년 사용승인을 얻어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건물 지상층에는 도로가 지나갔고 지하에는 시장과 상점이 들어섰다. 지상 2층부터 5층까지는 상가와 극장과 사무실이, 지상 6층부터 16층까지는 가운데 마당을 둔 미음(ㅁ) 자 모양의 중정형 아파트가 세워졌으니 주상복합건물의 아주 선구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낙원상가가 문을 열었던 당시부터 악기상가로 특화된 것은 아니었다. 슈퍼마켓, 볼링장, 당구장, 카바레, 극장 같은 다양한 업종이 있었는데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악기상가로 특화됐다. 낙원상가가 악기점이 밀집한 곳이 되고 음악의 메카로 부상했다 다시 침체기를 맞는 과정은 한 사람의 인생처럼 드라마틱하다.
    낙원상가 건립과 비슷한 시기에 탑골공원 담장을 둘러싼 파고다아케이드가 건설됐는데, 1층과 2층 약 200개 점포는 피아노 악기점을 비롯해 양복점과 양장점 같은 고급가게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파고다아케이드는 1983년 철거됐다. 탑골공원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정비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로 인해 이곳 악기점들이 낙원상가로 옮겨왔다. 70년대 말 남대문시장 화재로 남대문시장에 있던 악기점들이 낙원상가로 옮겨온 것과 맞물리면서 낙원상가는 악기상가로 특화됐다.
    1970년대 통기타 문화는 명동과 종로, 광화문을 음악의 메카로 키웠고 낙원상가에는 음악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80년대는 특히 낙원 악기상가의 전성기였다. 통금해제 조치로 심야 유흥업이 살아나면서 악사와 악기 수요가 폭증했고 낙원상가도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내리막을 걷는다. 심야영업시간 단축과 금융위기에 따른 침체기, 그리고 노래방기계의 등장으로 악사 수요가 줄어든 것 등이 악기상가의 위축을 가져왔다. 급기야 2008년에는 낙원상가 철거론까지 대두됐지만, 서울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인식하고 지혜롭게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낙원상가 산책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서울메트로 종로3가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낙원상가에 이른다. 먼저 2층과 3층 악기상가를 둘러보자. 300개 가까운 가게마다 기타와 드럼, 바이올린과 첼로, 관악기와 건반악기부터 음향기기까지 온갖 종류의 악기가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넋을 잃을지도 모른다.  
    4층과 5층에는 극장이 있다.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과 함께 서울을 대표했던 허리우드극장은 사라졌지만 노년과 중년층을 위한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추억의 명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50년 전으로 떠나는 타임머신

    1960의 낭만과 오색의 음악

    낙원아파트 내 중정과 낙원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벽화. 사진 제공·정석

    내친 김에 1960년대 지은 아파트까지 구경해보자. 아파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리면 요즘 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중정형 아파트를 볼 수 있다. 복도에서 뻥 뚫린 천장을 볼 수 있고 마당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도 내려다볼 수 있다. 아파트의 하얀 안쪽 벽에는 예쁜 그림이 조각돼 있는데, 건물을 지을 때 외벽에 시멘트를 칠하던 분이 흙손으로 쓱쓱 새겨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낙원을 표현한 그림 같은데, 솜씨도 대단하고 느낌도 아주 따뜻하다. 작가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낙원아파트와 낙원상가는 50년 가까이 된 건물인데도 짱짱하고 깔끔하다.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엘리베이터 인테리어가 범상치 않고, 복도와 화장실과 옥상까지 꼼꼼하고 깨끗하게 관리한 흔적도 보인다. 5층과 6층, 그리고 15층 아파트 위까지 세 곳에 너른 옥상이 있는데 서울 도심부의 동서남북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장소다. 이곳 옥상도 쓰기에 따라 아주 귀한 장소가 될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배가 출출해질 즈음이면 지하로 내려가도 좋겠다. 낙원상가 지하 한쪽은 악기 수리와 보관 장소로 쓰이고, 나머지 공간에는 재래시장이 펼쳐져 있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2000원 하는 ‘착한 가게’가 많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 ‘먹거리 X파일’이 선정한 착한식당 제1호 ‘일미식당’도 이곳에 있다. 낙원상가 주변에도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다. 돼지머리 고기에 막걸리를 먹을 수 있는 선술집과 아귀찜 식당, 떡집이 몰려 있다.  
    금은보화와 다이아몬드만 보물이 아니다. 다른 곳에 없는 귀한 것, 다른 데 있어도 이만 못한 것이 바로 보물이다. 낙원상가는 서울의 귀한 보물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다시 낙원상가 철거론이 나오는 모양이다. 부수고 없애는 건 쉬워도 다시 이만큼 키우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도시는 물건이 아닌 생명체다. 도시를 생명체로 보고 사람처럼 생각한다면 애써 이만큼 키운 자식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정성껏 돌보고 키워야 한다. 생명 다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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