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풍물공연 중단 위기의 순간 관객들이 나서 “Let them play”

미국 LA~뉴욕

  • 김은열 독도레이서 www.facebook.com/dokdoracer

    입력2011-04-04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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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공연 중단 위기의 순간 관객들이 나서 “Let them play”

    말문조차 막히게 하는 그랜드캐니언의 웅장한 모습.

    3월 9일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를 떠났다. “좀 더 머물다 가라”는 많은 이의 말을 뒤로하고 여명이 밝아오는 동쪽으로 향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2주를 보낸 LA는 온화한 기후 속에서 교민의 호의와 격려를 받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낯선 언어와 식단에 적응해갔다. 돌이켜보면 그간 우리를 보살펴준 사람 모두가 바로 ‘천사’였는지 모른다.

    다음 행선지는 뉴욕. 우리는 비행기나 버스 대신 렌트한 차로 가기로 했다. 즉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것이다. 협곡과 사막, 초원을 넘어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그 길에는 갖가지 기후대는 물론이요, 시간대도 3개가 걸쳐 있다. 날짜변경선을 지날 때마다 얻은 총 17시간 중 3시간을 미국 곳곳에 조금씩 내려놓는 것. 편한 길을 마다하고 미지의 길을 달리는 우리에게 많은 사람이 “미쳤다”고 했다.

    굳이 ‘미친’ 일정을 강행한 것은 ‘대륙횡단이야말로 젊을 때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행길인 데다 도로 사정, 교통법규조차 익숙지 않은 상황. 작은 내비게이션 하나에 의존해 하루 평균 800km를 이동하다 보니 기존의 거리감각마저 희미해졌다. 미국에서 ‘어머니의 길’로 통하는 66번 도로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은 길을 달리다 보면, 그대로 지평선을 뚫고 하늘까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루 800km씩 ‘미친’ 미국 대륙횡단

    가는 길마다 광야와 협곡이 펼쳐졌던 첫날의 일정은 그랜드캐니언에서 끝났다. 해발 2000m를 훌쩍 넘긴 리판 포인트(Lipan Point)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며 협곡 위로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살폈다. 어느덧 가라앉은 석양이 구름을 타고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으로 스며들었다. 그 절벽의 아찔한 끝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찬송가를 읊조렸다. 감히 범접하지 못할 대자연의 한 자락을 맛볼 때 인간은 얼마나 경건해지는가. 카메라에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광활함, 우리 여섯 명의 대원은 그 앞에 서서 인간 기술의 한계를 한탄하다가도 자연이 선사한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힘껏 소리쳐봐도 깊고 장대한 협곡은 메아리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넓은 요동 벌판을 ‘통곡할 만한 자리’라 일컬은 연암의 감동이 이러했을까. 그의 ‘통곡’은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은 것에 대한 깊은 감사와 감동에서 우러나온 울음일 터다. 광활한 광야, 그 위로 솟아오른 협곡, 장구한 세월을 견뎌낸 한 줄기 강물까지….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순수한 세상 역시 ‘통곡할 만한 자리’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대륙횡단에 이런 감동만 계속됐을 리 없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경찰을 맞닥뜨리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애리조나 주에서 뉴멕시코 주, 텍사스 주까지 무려 900km를 이동해야 했던 횡단 둘째 날에는 목적지 애머릴로(Amarillo)를 10km 남기고 잠복 중이던 교통경찰에게 붙들렸다. 피곤했던 우리는 빨리 숙소에 도착해 몸을 누일 생각에, 제한속도인 시속 65마일(약 105km)을 훨씬 넘는 속도로 달렸던 것이다. 도로도 한산했기에 우리가 얼마나 속도를 냈는지도 몰랐다. 어느새 차 뒤로 순찰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고, 한참을 우물쭈물하다 갓길에 차를 댔다.

    “왜 그렇게 멈추는 데 오래 걸렸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텍사스 경찰을 앞에 두고 다들 긴장했다. 건장한 체격의 여자 경찰은 위압감을 뿜어내며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물었다. 우리는 어설픈 영어로 변명해봤지만 경찰이 건네준 벌금통지서에는 떡하니 ‘195달러’(약 22만 원)라고 찍혀 있었다. 기껏 며칠 동안 아껴온 식비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다. 애써 “앞으로 안전에 더 주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풍물공연 중단 위기의 순간 관객들이 나서 “Let them play”

    애틀랜타 올림픽 센테니얼 파크에서 풍물공연을 열었다.

    경찰과의 얄궂은 인연은 애틀랜타에서도 계속됐다. 아침부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 멤피스를 떠나 도착한 애틀랜타는 남북전쟁의 격전지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인 동시에 CNN과 코카콜라의 본사가 있는 대도시다. 우리는 올림픽 센테니얼 파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국 풍물놀이 공연을 열기로 했다. 정신없이 가락에 취해 클라이맥스인 휘모리장단에 다다르는데 언제부턴가 귓가에 무전기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자전거를 탄 남녀 경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허가받지 않은 공연은 안 됩니다.”

    애틀랜타에서 시민 도움으로 공연 재개

    얼마 남지 않은 가락이 아쉬워 “조금만 더 하고 떠나겠다”고 사정했지만 경찰의 굳은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애원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심지어 “비키지 않으면 경찰기동대를 부르겠다”는 협박까지 이어졌다. 살짝 겁이나 슬금슬금 일어나려는 우리. 그런데 관객들이 소리쳤다.

    “Let them play(연주하도록 두시오)!”

    자리를 지키던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외치자, 난감한 표정을 짓던 경찰이 마지못해 공연을 허락하고 자리를 떴다. 박수가 쏟아졌고 다시 공연이 이어졌다.

    대륙횡단 7일간은 매일매일이 ‘무한도전’이었다. 우리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 끼니마다 10달러어치(약 1만1000원)의 빵과 샐러드로 7명이 주린 배를 채웠다. 누군가 이 장면을 두고 “그야말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어쩌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조미료와 일회용품을 주머니에 넣었다. 여관에서 방값을 깎으려 주인과 실랑이하는 것은 기본. 14개 주를 지나며 주유를 하다 보니 어느새 지역별 유가를 줄줄 뀄을 정도다.

    7일간 이어진 5000km의 대륙횡단은 3월 16일 늦은 오후 홀랜드 터널(Holland Tunnel)을 지나 뉴욕에 입성하며 막을 내렸다. 그동안 피로와 허기, 변비와 싸워가며 달려온 우리는 맨해튼의 야경을 감상하며 긴 여정이 무사히 끝난 것을 자축했다. 여관방에 지친 몸을 누이는 것으로 좌충우돌 미국 서부횡단을 마쳤다. 미국 동부,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상상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어찌나 피곤했는지 꿈도 안 꾸고 잤다.

    * 독도레이서 팀은 6개월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섬 ‘독도’를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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