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2015.09.07

같은 공간, 같은 배우가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9-07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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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공간, 같은 배우가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
    한 공간, 같은 배우, 다른 세 이야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관객을 만나는 방식이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밤의 대통령이던 시대부터 퇴락하기까지 미국을 배경으로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좁은 방 661호에서 1923, 34, 43년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각각의 공연으로 그려낸 옴니버스 연극이다. 각 에피소드 제목은 ‘로키’ ‘루시퍼’ ‘빈디치’. 한 에피소드당 공연 시간은 70분이다.

    세 에피소드는 코미디, 서스펜스, 하드보일드라는 각기 다른 장르로 구성돼 있다. 출연진은 올드맨과 영맨, 그리고 레이디까지 총 3명. 거액에 팔린 쇼걸과 보스를 잃은 마피아, 복수를 꿈꾸는 경찰 등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은 모두 원치 않는 상황에서 호텔 방에 묵게 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한다. 어둠이 질서를 유지하던 시대여서일까, 이들의 소통방식은 모두 폭력적이다.

    3부작이지만 순서 상관없이 봐도 영향이 없고, 한 편만 봐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이야기에 완결성이 있다. 원하는 장르나 끌리는 이야기에 맞춰 티켓을 예매할 수도 있지만, 한 편을 보고 나면 ‘카포네 트릴로지’를 머릿속에서 완성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퍼즐의 모든 조각을 맞추려면 총 세 번 티켓팅을 해야 한다. ‘로키’ 편에 등장하는 렉싱턴 호텔 바 쇼걸 롤라 킨의 사건과 ‘루시퍼’ 편에 나오는 조직 2인자 닉 니티 부부의 사건은 ‘빈디치’ 편에서 경찰 빈디치의 수사 장면 회상을 통해 언급된다. 지난 편의 인물들이 호텔 방에 남겨놓은 흔적을 발견하는 건 다음 에피소드의 인물들이다. 세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전형적인 범인의 대사’라는 말이나 빨간 풍선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

    공연당 100명의 관객만이 사건 목격자가 될 수 있다. 7월 14일부터 시작된 공연에는 이미 배우 못지않은 장기투숙객(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관객)들이 들어찼다. 극장에 온 관객은 방명록이 놓인 어둑어둑한 호텔 데스크와 복도를 지나 방으로 직행한다. 침대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앉으면 맞은편 관객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 배우도, 옆자리 관객도 지나치게 가깝다. 관객이 답답하고 어두운 방 안의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객석 간 간격을 최소한으로 설계한 결과다. 의도된 불편함인 셈이다.

    하루에 두 편, 주말에는 세 편을 모두 선보인다. 연달아 보면 조금 전까지 아내의 죽음을 곱씹으며 복수를 준비하던 경찰 역의 영맨이 다음 편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부터 벨보이, 마피아 등으로 다채롭게 변신하는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배우들의 팔색조 같은 매력과 살뜰한 공간 활용,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됐지만 렉싱턴 호텔은 여전히 성수기다.



    9월 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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