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2015.09.07

밝히는 게 어때서!

낮은 효과·부작용 등 시장성↓… 성욕저하 여성에겐 한줄기 빛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9-04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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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히는 게 어때서!
    역사상 최초로 여성을 위한 성기능 개선제, 일명 ‘핑크 비아그라’가 나왔다. 8월 중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약회사 스프라우트가 개발한 ‘여성 성욕저하장애 치료제’인 ‘애디(Addyi)’의 판매를 승인한 것. 애디는 스프라우트가 플리반세린(flibanserin)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만든 약으로, 쾌락 및 충동자극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늘리는 대신 성욕을 감퇴시키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줄여 성적 욕구를 증강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알약 색깔이 분홍빛이어서 ‘핑크 비아그라’라고 부르는 애디는 미국에서 10월 17일부터 공식 판매될 예정이다.

    애디를 개발한 스프라우트는 이번 FDA 승인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신시아 화이트헤드 스프라우트 최고경영자는 미국 공영라디오 NPR와 인터뷰에서 “애디는 여성 건강 역사에 획기적 의약품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백만 여성이 성욕을 증진할 이 같은 약을 갈망해왔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운동가도 ‘여권의 승리’라고 평가하며 여성을 위한 성욕저하 치료제가 나온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3가지 신경물질로 성욕 컨트롤

    그러나 미국의 대다수 전문가는 미미한 효과와 각종 부작용 등을 이유로 애디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의학계에서도 애디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전문가가 많다. 백혜경 강동우성의학클리닉연구소 원장은 “애디의 작용 메커니즘을 보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늘리고 세로토닌 분비를 줄여 성적 욕구를 증강한다고 하는데, 사실 여성의 성욕이 단순히 3가지 신경물질로 컨트롤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 교감이나 소통 등 환경적 요인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약으로만 성생활을 개선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성의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약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설현욱 서울성의학클리닉의원 원장은 “남성은 성관계를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반면, 여성은 감정적 친밀감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미국에서 여성 1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관계는 ‘자신만을 위한 신체활동’이라기보다 ‘상호간의 교감 행위’라고 응답한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따라서 약에 의한 신경물질 조절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스프라우트의 임상시험 결과를 놓고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애디는 원래 1995년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서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연구진이 임상시험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기분에 영향을 미쳐 성욕을 증진시킨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후 2011년 스프라우트가 약에 대한 개발권을 인수해 연구를 진행했는데 애디 복용군과 가짜 약을 복용한 대조군을 놓고 6개월 동안 변화를 관찰한 결과, 복용군은 대조군 대비 성관계 횟수가 한 달 기준 1회 늘어났다. 그 가운데 10% 이상이 대조군에 비해 성기능지수 등 3가지 항목에서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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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은 미 제약사 스프라우트의 여성 성욕저하 치료제 ‘애디’.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백 원장은 “가짜 약 환자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성적 만족감이 증가했다는 것은 플라시보 효과(환자에게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 속이고 먹게 했을 때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를 누리는 경우보다 약간 높은 정도라 볼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효과가 신통치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까지 드러난 애디의 부작용으로는 술과 함께 복용했을 때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졸도하는 경우와 불면증, 현기증, 메스꺼움 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FDA는 두 차례 애디의 승인을 거절했다. 설 원장은 “신약을 승인하기 전 부작용에 대한 까다로운 임상시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애디의 경우 복용한 여성이 임신했을 때 태아에 위험성은 없는지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 원장도 “신경정신과에서는 도파민을 잘못 끌어 올리는 경우 환자의 예후가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신중하게 처방한다. 일부 여성은 도파민 상승으로 성생활에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어떤 여성은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약을 의사들이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처방할 수 없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치료 의지와 복용 의지가 관건

    부작용 우려에도 성욕저하 탓에 부부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맞은 일부 여성은 애디의 출시를 기다리기도 한다. 자녀 둘을 낳고 회사를 그만둔 뒤 전업주부로 돌아선 김상미(41·가명) 씨는 “첫아이 출산 때는 덜했는데 둘째를 낳고 나니 성관계에 대한 의지가 아예 없어졌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집안일을 하는 일상이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힘든데 남편이 퇴근 후 관계를 요구하면 너무 싫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남편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한 번은 이 문제로 심하게 싸워 이혼 이야기가 오간 적도 있다. 부부 사이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데, 성생활로 두 사람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성욕이 생기는 약이 출시되면 복용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애디를 국내에 도입할 계획이 있는 제약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여러 이유로 출시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에서 시판되려면 동양인에게 맞는 약인지 인종 간 차이를 확인하는 가교시험이 이뤄져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국내 도입 의지를 가진 회사가 나타나야 하고, 그 회사가 스프라우트와 계약을 맺고 가교시험을 진행한 다음 한국에서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야 판매가 가능하다. 그런데 가교시험에서 부작용이 나오면 승인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국내 여성용 비아그라의 시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제외하고 조루치료제도 판매가 미미했다. 조루치료제는 남성만을 위한 약이 아니라 성관계 시간을 늘리는 측면에서 여성을 위한 약이기도 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해 판매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성기능 개선제 시장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한 국내 제약사들은 ‘과연 여성을 위한 비아그라가 잘 팔릴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미국에서의 성공 여부를 주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윤수 비뇨기과 전문의도 국내 시장에서 여성용 비아그라의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남성 주도의 성생활이 이뤄지는 한국에서는 여성용 비아그라처럼 약에 의한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우선적으로 여성이 성생활에 대한 치료 의지와 약에 대한 복용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가능할까 싶다. 지금으로서는 약보다 성생활이 원활하지 않은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부부가 함께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알아내는 것이 갈등 해소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성관계 주도도 여권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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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출시된 후 남성을 위한 성생활 보조의약품은 26종이 개발됐다. 사진은 화이자의 ‘비아그라’.

    까다로운 복용 방법과 비용도 판매 걸림돌로 제기되고 있다. 성욕 증진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애디 한 알을 최소 2개월 이상 1일 1회 복용해야 한다. 약을 먹는 동안 음주나 항진균제, 피임제 복용은 금해야 한다. 한 달 동안 복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350~400달러(약 41만~47만 원) 선으로 두 달치가 100만 원에 이른다. 이렇게 복용할 경우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복용 전에 비해 한 달에 한 번 더 만족할 만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한 30대 워킹맘은 “여성용 비아그라 출시 기사를 접하고 성욕저하로 고민하는 여성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복용 기간과 비용,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아마 힘들게 복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 FDA의 여성 성욕저하 치료제 판매 승인은 1998년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출시된 후 17년 만의 일이다. 그사이 남성을 위한 성생활 보조의약품은 비아그라를 비롯해 26종이 개발됐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는 FDA가 편견을 갖고 여성을 차별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실제로 미 여성단체들은 “비아그라가 개발 2년 만에 FDA 승인을 받은 반면 애디는 5년 동안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는 여성의 성욕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성차별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밝히는 게 어때서!
    애디가 나오기 전 제약사들이 여성 성욕저하 치료제 개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여러 시도 가운데 하나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활용한 연구가 있었다. 베링거인겔하임에서 폐경 이후 여성들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투여한 경우 성욕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베링거인겔하임은 테스토스테론을 활용해 몸에 붙이는 형태로 패치를 개발한 뒤 미 FDA에 승인 신청을 했지만 부작용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여성에게서 목소리가 걸걸해지거나 수염이 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 탓이다. 이외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도 여성용 비아그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아 좌절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행착오 끝에 올해 겨우 역사상 첫 여성용 비아그라가 탄생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두재균 전 전북대 총장은 “앞으로 이런 종류의 여성용 비아그라 개발이 계속돼야 하고 성공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보통 여성이 국회의원이나 판사가 되는 등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을 여권신장의 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의 권리를 증진하고, 성관계에서 여성이 주도적 기능을 하는 것도 결국 여권신장의 일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전문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성욕저하로 고민하는 여성이 2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성욕저하 문제로 남편의 외도를 경험하거나 이혼 위기에 몰린 여성이 적잖다. 두재균 전문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아그라 이후 유사 약물이 잇달아 출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애디 출시 이후 여성의 성욕저하, 성기능장애 등을 치료하는 약물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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