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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난’과 거인의 운명

일본 지바롯데 구단주 직무대행 신동빈, 롯데자이언츠까지 접수할까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형제의 난’과 거인의 운명

‘형제의 난’과 거인의 운명
롯데자이언츠의 2차 스프링캠프는 일본 가고시마다. 검은색 연기를 자주 토해내기로 유명한 활화산 구치노에라부지마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 가까이 보이는 곳이다. 롯데 스프링캠프는 전통적으로 혹독한 훈련보다 즐겁고 밝은 분위기로 진행된다. 그러나 매년 1~2월 활화산의 분화 같은 피하고 싶은 시간이 찾아온다.

롯데자이언츠 구단주는 신격호(93) 롯데그룹 총괄회장. 그러나 지난해까지 실질적인 구단 수장은 신 총괄회장의 장조카인 신동인(69) 구단주 직무대행이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친척으로 로열패밀리이자 가신, 그리고 충신으로 꼽히는 신 직무대행은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스프링캠프를 찾았다. 다른 프로야구단 역시 그룹 오너 일가나 구단주 등 고위 인사가 스프링캠프를 자주 찾는다. 주요 일정은 선수들에게 격려금 지급과 함께 감독에게 건의해 특별회식을 여는 정도다.

“다시 떠올리기 싫다”

그러나 신동인 직무대행은 조금 달랐다. 2월 신 직무대행은 연례행사처럼 가고시마를 찾았다. 그리고 연습경기를 수차례 관람했다.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받는 시간도 가졌다. 한 프로야구 관계자는 “롯데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다. 스프링캠프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한껏 흐름을 타서 열심히 훈련할 때쯤 구단주 직무대행이 나타나 쓴소리를 하면 선수들 전체 컨디션이 급격히 다운된다”고 털어놨다. 롯데 출신 한 선수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고 했다. 올해도 신 직무대행은 아직 진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한 유망주 출신 고참 투수에게 감독과 선수들 앞에서 “에이! 자네는 몇 해째 이러고 있나?”라고 말해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신 직무대행은 감독과 코치 선임에도 깊이 개입해 수차례 잡음이 일었다. 고참 선수 몇 명을 직접 만나 고충을 들은 적도 있다. 소통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구단 실무진과 감독, 코칭스태프로선 그 과정과 되돌아오는 지시사항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감독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생길 수 있는 위험한 개입이다.



2011~2012시즌을 지휘한 양승호 전 감독 시절엔 간접적으로 선수 기용에 대해 선수단 측에 의견이 전달되기도 했다. 양 감독은 강단 있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양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년 동안 롯데는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좋은 성적을 올렸다.

신동인 직무대행은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총괄담당 부사장, 롯데쇼핑 대표이사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최고 실세로 불렸다. 그러나 2005년 신동빈(60)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을 이끌기 시작하며 중심에서 밀려났다. 롯데자이언츠만이 사실상 그의 영역으로 남았는데 지난해 선수들을 폐쇄회로(CC)TV로 불법 감시한 사실이 공개되며 비판의 중심에 섰다. 이후 야구단에서 영향력도 급격히 상실됐다. 그 대신 롯데그룹 정책본부 전무 이창원 대표이사가 구원투수로 투입돼 야구단의 개혁을 주도했다. 사실상 롯데자이언츠가 신동빈 회장의 영역 안으로 확실히 들어간 셈이다.

신동인 직무대행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의 해임을 시도할 때 바로 곁에서 이를 함께 주도했다.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은 “경영권 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최고의 야구팬, 최악의 팀

신동빈 회장은 야구를 매우 좋아하고 프로야구단에 대한 애착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롯데그룹을 이끌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야구단은 일본 지바롯데 마린스의 구단주 직무대행을 맡았다. 롯데자이언츠와는 대외적으로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2007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할 때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은 지바롯데의 우승 카퍼레이드에 직접 참가해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이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난다면 신동인 직무대행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롯데는 1992년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을 못 하고 있다. ‘부산에는 세계 최고의 야구팬이 있지만 최악의 팀도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단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로열패밀리 간 복잡한 영역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형제의 난’과 거인의 운명
롯데그룹은 이번 경영권 분쟁으로 국적 논란에도 휘말렸다. 한국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주주가 일본 롯데홀딩스라는 것이 공개됐고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점도 크게 부각됐다. 국적 논란 속에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도 최고 인기구단으로 꼽히는 롯데자이언츠의 그룹 내 무형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야구단은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단시간에 회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다. 구속과 수감을 반복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로 이미지 변신에 큰 성공을 거뒀다. 삼성은 2000년 초반부터 집중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완성해 외부 자유계약선수(FA) 없이 수년째 정상을 지키며 ‘돈성’으로 불리던 재벌 이미지를 상당 부분 벗고 ‘삼성이 하면 프로야구도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종종 아이들과 함께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소탈하게 맥주를 들이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최종적으로 그룹 분할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그 경우 롯데자이언츠를 누가 손에 넣느냐에 따라 향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롯데자이언츠는 롯데제과(30%), 롯데쇼핑(30%), 롯데칠성음료(20%) 등 야구단 운영에 필요한 지원금을 내는 회사들이 지분을 보유 중이다. LG그룹과 GS그룹이 분리될 때 LG는 야구단을, GS는 축구단을 가져간 사례가 있다.

롯데자이언츠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만약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다면 그동안 활발하지 못했던 지바롯데와 교류 등으로 롯데자이언츠는 전력 면에서 큰 상승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을 가능성도 높다.

프로야구는 주요 그룹에서 매출을 올리는 계열사라기보다 지원금을 쓰며 사회공헌과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기능을 한다. 또한 그룹 전체에서의 비중은 높지 않지만 로열패밀리 간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퇴장은 그룹이 쪼개진 뒤 한동안 현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야구단을 지원했던 협력마저 종료됐음을 뜻했다. 두산그룹은 야구단을 애지중지하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까지 역임했던 고(故) 박용오 회장이 2005년 형제들과 경영권 다툼 끝에 그룹을 떠났다. 그러나 본격적인 형제간 경영권 분쟁 이전에 야구단 경영진 선임 및 해임 문제로 박용오 전 회장과 형제들이 힘겨루기를 하며 갈등의 불씨를 낳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선수 격려차 미국 하와이 전지훈련장을 찾은 로열패밀리 한 명이 회식 중 야구단 경영진에게 “박용오 회장만 무섭냐”고 강하게 질책한 사건은 야구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주간동아 2015.08.10 1000호 (p84~85)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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