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9

2015.08.03

취업난에 허덕, 취직하면 사표

신입사원 평균 1년 6개월 만에 그만둬…고용 불안 악순환, 일자리 질 높여야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8-03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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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난에 허덕, 취직하면 사표
    서울 시내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모(30) 씨는 현재 은행 입사 2년 차 행원이다. 대학시절 금융권 입사를 목표로 관련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며 준비한 덕분에 졸업 6개월 뒤 은행에 입사했다. 처음 한 달은 꿈에 그리던 행원이 됐다는 생각에 즐겁게 회사를 다녔다. 그러나 잔업이 많은 탓에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삶은 기본, 휴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갈수록 힘에 부쳤다.

    정씨는 “지난해부터 틈만 나면 이직을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올해 들어 금융권 사정이 악화하면서 회사 내부 분위기가 나빠졌고, 영업에 대한 압박도 늘어나 스트레스가 쌓였다. 막연하게 이직을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구체적으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7월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이 최종 학교 졸업 후 처음 취업하는 데 평균 11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4개월로 전년 대비 0.4개월 감소했는데, 첫 일자리를 그만둔 청년층 임금근로자는 63.3%로 전년 대비 1%p 상승했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어렵사리 취직해도 오래 다니지 않고 뛰쳐나오는 청년이 늘었다는 뜻이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이들의 사유는 정씨처럼 ‘근로여건 불만족(보수, 근로시간 등)’이 47.4%로 가장 높았으며 이는 전년 대비 0.4%p 상승한 수치다. 이 밖에 ‘개인·가족적 이유’(16.8%), ‘임시적 계절적 일의 완료, 계약기간 끝남’(11.2%) 등이 뒤를 이었다.

    신입의 퇴직, 대리는 괴로워



    힘들게 입사한 직장을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도권 4년제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박모(28) 씨는 2년 동안 직원 10명 이하 소기업에서 일하다 최근 퇴사했다. 일적으로 배울 것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입사한 곳이었지만 연봉이 적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비상식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고. 그는 “정시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고, 저녁 8시에 나서면 칼퇴근이라 생각하는 조직문화가 일반화돼 있었다. 출장도 잦았는데 경비를 일일이 사후 처리하는 방식이어서 영수증을 모아 결제를 올리면 함흥차사였다. 사내 분위기가 좋았더라면 견뎠겠으나,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는 말을 일삼는 직장 상사를 보면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경력 이직을 위해 3년은 채우려 했지만 스트레스가 커서 결국 사표를 냈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서울 시내 4년제 대학 회계학과를 졸업한 김모(29) 씨는 재학 때부터 대기업 재무팀이나 금융권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한 덕에 기업체 2곳에서 최종까지 올라갔다. 한 곳은 원하던 재무팀이었고 다른 한 곳은 일반 사무직이었는데 초봉이 높은 후자를 택했다. 그러나 입사 후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심각하게 사직을 고려하고 있다. 김씨는 “주변에서 ‘어딜 가나 똑같다. 연봉 높은 곳이 최고’라고 하지만 미래를 떠올렸을 때 만족하며 다닐 것 같지 않다. 그만두고 적성에 맞는 회사로 옮기려 한다”고 말했다.

    국내 30대 그룹의 신규채용 인원은 2013년 14만4500명, 2014년 13만 명, 올해 12만1800명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양상. 정년 연장이 시작되는 내년부터는 기업마다 인건비 부담으로 청년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 직원들을 뒤로하고 남아서 일하는 이들의 입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중 은행에서 올해로 7년째 근무 중인 정모(34) 씨는 “신규채용은 줄어드는데 전체 업무량은 늘어나 해가 갈수록 실질적인 1인당 업무량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만 해도 고객정보 보호 정책 변경, 대출규제 등으로 관리해야 할 것들이 더 복잡하고 많아졌다. 이러한 은행권 실무는 신입과 초임 대리 등 직급이 낮은 직원이 도맡아 하는데, 업무량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 위로는 연봉 높고 일하지 않으려는 상사, 아래로는 아직 제몫을 못하는 후임 사이에 껴서 혼자 허덕일 때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난해 대출받아 집을 산 탓에 꾹 참고 다니고 있다”고 토로했다.

    취업난에 허덕, 취직하면 사표
    오래 다닐 인재 골라내는 기업

    이렇다 보니 기업 처지에서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오래 다닐 만한 직원을 뽑는 데 열을 올린다. 신규채용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어렵사리 뽑았다가 퇴사하는 직원이 늘어날수록 손해이기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 인사과 관계자는 “매년 신입 직원 퇴사 사례가 늘고 있다. 학벌이나 능력이 출중하면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능력 미달 지원자는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사표를 쓴다. 이 때문에 능력과 더불어 인내심 등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 청년층의 근속기간 감소 추세에 대해서 그는 “워낙 취업난이 심하다 보니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가자는 심정으로 눈높이를 낮춰 입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 우물만 파면 불안한 시대라 본인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입사부터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또 이제는 외국처럼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지면서 젊은이들이 한 회사에 진득하게 다니겠다는 마음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취준생)들에게는 각종 스펙에 더해 ‘회사를 오래 다닐 만한 인재’라는 것을 입증해야 할 항목이 더 추가된 셈이다. 이렇듯 점점 까다로워지는 취업 관문을 눈앞에 둔 취준생과 이직 희망자 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취업 포기자’도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미취업자 143만9000명 가운데 5월 한 달 동안 ‘그냥 시간을 보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0.2%p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그 외 여가활동 등 취업 준비가 아닌 기타 활동을 한 응답자도 22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0.5%p 늘었는데, 모두 합치면 49만 명에 달하는 청년이 구직에 나서지 않은 셈이다. 일하지도 않고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 이른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의 증가는 생산성 저하, 출산율 하락 등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일자리 질’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취업 후 1~2년 사이 직장을 그만두는 청년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의 정규직으로 취직한 게 아닌, 중소기업에 들어간 경우다. 임금이 낮고 복리후생이 좋지 않으며 사회적 차별까지 당하다 보니 오래 일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각종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일자리의 질이 좋아져야 한다. 구직자와 구인 사업체의 눈높이를 맞추는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고용불안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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