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9

2015.08.03

“어른들도 칭찬받는 거 좋아해요”

인터뷰 |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8-03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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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도 칭찬받는 거 좋아해요”
    ‘TV유치원 하나둘셋’ ‘혼자서도 잘해요’ ‘딩동댕 유치원’ ‘김영만의 미술나라’…. 어릴 때 색종이 좀 접었다는 어른이라면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김 원장이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출연하자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 ‘반갑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사실 그가 출연한 대교어린이TV ‘김영만의 미술나라’는 지금도 여러 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고, 재작년까지도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에서 ‘꽁이와 요술가의 손’이라는 코너를 진행했다. 훌쩍 자라 어른이 된 ‘TV유치원 하나둘셋’ 세대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 몰랐던 것뿐이다. 그는 여전히 색종이를 접고 있다.

    과거 ‘종이접기 아저씨’는 이제 화제의 ‘뇌색남’(뇌가 색종이로 가득한 남자)이 됐다.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는 섭외 전화를 걸자 모르는 번호임에도 “네~” 하고 쾌활하게 답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에 코딱지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 목소리였지.

    뜨거운 반응, 젊은이들의 채찍 같아

    7월 21일 오전 충남 천안의 미술체험공간 ‘아트·오뜨’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이곳은 2009년 김 원장이 아이들을 위한 체험공간을 만들고 싶다던 꿈을 실현한 공간이다. 청바지에 반팔티셔츠 차림의 그는 “남들은 ‘(방송 후 반응이) 뜨겁다’고 하는데 아날로그 시대 사람인지라 이런 반응이 조금은 부담된다”며 “이번 기회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젊은이들의 채찍 같다”고 말했다.

    1988년 ‘TV유치원 하나둘셋’을 시작으로 카메라 앞에 선 지도 30년 가까이 돼가지만 예능프로그램 출연은 처음이다. 그는 “섭외 전화를 받고 ‘교양국이 아닌 예능국에서 나를 왜 필요로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미안한 게 제작진과 만난 자리에서 ‘마리텔’이 뭔지 잘 몰라 즉답을 못 했거든요. 나중에 검색해보니 젊은 친구들과 채팅하면서 소통하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날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능수능란한 멘트와 표정으로 유쾌하게 방송을 이끈 덕에 7월 18일 ‘마리텔’ 본방송 전반전에서 그의 방송은 ‘인간계’ 출연자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8절지는 문구점 가면 살 수 있어요. 아참, 친구들. 이제 문구점 안 가죠?”라는 그의 말에 한 누리꾼은 ‘저 문구점 해요’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다 큰 코딱지들을 마주한 소감은 어땠을까.

    “강의를 다니면서 워낙 말을 많이 해 멘트 걱정은 안 했어요.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상담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희망을 주고 싶어 중간중간 이야기했는데, 그걸로 누리꾼들이 어록을 만들어줬더라고요. 악성 댓글을 제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없었어요. 코딱지들이 다 커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예전 추억을 꺼내 되살려주는데 어느 어른이라도 그걸 보면 안 예쁘겠어요. 어른들도 칭찬받는 거 좋아해요. ‘왜 젊은이들은 어른들만 보면 피하느냐’고 하는데, 많은 부모 세대가 그렇게 키운 거예요. ‘어디 부모한테 까불어’ 이러면서요. 기죽어 있던 차에 친구 같은 어른이 나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홍익대 미대 도안과를 졸업한 후 대우실업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양복보다 청바지가 편하다. 그는 “직장에서 광고 일을 하다 보니 청바지를 입었다. 지금도 20, 30대용 브랜드에서 옷을 사 입는다”며 웃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종이접기를 접한 뒤 ‘이런 걸 나만 알면 너무 아깝다,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립초교 미술교사와 미술학원을 거쳐 종이접기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는 “아마 방송이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종이접기를 선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그때의 나를 노력하게 만들었고, 그 덕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른들도 칭찬받는 거 좋아해요”
    머리가 복잡하면 차를 끌고 어디로든 떠난다는 그는 “가볼 만한 100선에 나온 곳들은 줄이 길고 사람이 많아 절대 안 간다”며 웃었다. 경치 좋은 곳에선 차를 세워두고 스케치북을 꺼내 든다. 장이 서는 날이면 끝날 때까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으로 힐링을 한다. 산으로, 들로 여행을 다니다 만난 도서지방 분교들은 그에게 하고 싶은 새로운 일을 만들어줬다. 김 원장은 “도서지역 분교의 설움이 말도 못 한다. 함께 해외봉사 다니는 교육원 원장들과 가서 종이접기를 가르쳐주고 놀아주고 선물도 안겨주고 싶다. 사전조사를 많이 하고 말하는 거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재능기부 차원에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데 올려 소통하려고 들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 분교 관계자분들이 연락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 외롭게 두지 말아야

    아직 ‘포스트 김영만’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매체 파워가 옮겨가고 교육 프로그램들이 힘을 잃었기에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김 원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열심히 종이접기를 보급하는 전문가가 많다”고 강조했다.

    “종이문화재단에서 강사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종이접기 재능기부를 하고, 전문강사로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30, 40대 어머니가 많죠. 저는 그분들을 믿어요. 실력자도 많고, 다들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훌륭하게 일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김 원장이 위로를 주는 존재였고, 유년기 추억의 핵심 기억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누가 그런 존재였을까. 그는 “정치도, 경제도 어려웠을 때라 롤라장(롤러스케이트장) 같은 것 외에는 문화랄 게 없었다”며 “이후에는 김재은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 교수가 쓴 아동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고 교수님을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수원여대와 마산대 아동미술학과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제는 자라서 부모가 된 코딱지들에게는 “아이를 외롭게 두지 마라”고 조언했다.

    “제가 강의 다니면서 하는 말이 있어요. ‘너희(어른)들이 함정을 파놓고 아이들에게 피해 가라고 하느냐’고요. 그냥 지나가게 하면 될 걸 꼭 함정을 파놓고 지나가라 하고, 못 지나가면 왜 못 하느냐고 타박하고, 가다 빠지면 꺼내주지도 않고 내 탓 아닌 네 탓이라 하는 거죠. 그리고 잘 지나가면 칭찬을 해줘야 하는데 그건 당연한 일로 여겨요. 어른이 두세 발 앞서가면서 함정을 뛰어넘고 아이가 건너올 수 있게 다리를 놔줘야 되는데 그걸 못 하고 있어요. 어른도 외롭다고 하지만 아이들도 외로워요. 왜 아이들이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친구 말은 듣겠어요. 아이와 하루에 10분이라도 코를 맞대고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러면 속에 가진 것들을 꺼내놓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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