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9

2015.08.03

‘성공보수 무효’ 뒤집어진 법조계

전관예우·무전유죄 근절…변협 헌법소원으로 맞불, 대법원 vs 헌재 갈등 재현되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8-03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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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보수 무효’ 뒤집어진 법조계
    “대법원이 정치를 하니까 변호사단체도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사법부를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7월 23일 대법원의 성공보수 무효 판결 이후 이어지고 있는 법조계 갈등에 대한 한 30대 변호사의 촌평이다. 사법시험 46회로 2007년 개업한 이 변호사는 “그렇지 않아도 법조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나날이 떨어져 가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나마 남아 있던 신뢰와 존중마저 사라져버릴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보수는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면서 의뢰인과 협의해 특정 조건을 달성할 경우 추가 보수를 받기로 약정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관행으로 정착돼 상당수 변호사가 사건을 개시할 때 일정액의 착수금을 받고 추가로 성공보수를 받는 계약을 맺어왔다.

    정당한 판결 vs 부당한 입법권 행사

    그러나 법원 판결에 따라 인신 구속이나 형벌 등 막대한 불이익이 생길 수 있는 형사사건의 경우, 이러한 계약 방식이 의뢰인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특히 검찰과 법원에서 고위직을 지낸 전관 변호사의 경우 수사 및 재판 단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만큼 막대한 액수의 성공보수를 받아왔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때문에 1995년과 99년 두 차례 사법개혁 과정에서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고, 2000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도 이를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를 전격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해당 사건은 구속된 아버지의 석방을 조건으로 변호사에게 성공보수 1억 원을 약속한 A씨가 이를 지급했다 ‘정당한 보수가 아니다’라며 반환 소송을 낸 데서 시작됐다. 원심은 성공보수 약정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액수가 과다하다며 변호사에게 4000만 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변호사가 이에 불복해 낸 상고심에서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그동안 성공보수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약정 자체는 유효하다 보고, 액수가 지나치게 많을 때만 감액하거나 무효 판결하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판결 이후부터 체결된 형사사건 성공보수금 약정은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 무효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7월 24일부터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는 사실상 금지됐다.

    당장 변호사업계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성공보수는 건국 이후 계속 유지돼온 관행이다. 대법원이 이를 한순간에 금지하면서 ‘103조 카드’를 꺼내든 건 오만한 일”이라며 “그동안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해온 변호사들의 행위가 장기매매나 축첩처럼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뜻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중견로펌 소속 변호사도 “당장 오늘 계약 건부터 어떤 계약서를 써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렇게 법률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판결을 아무 의견 수렴이나 준비 절차 없이 내놓은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 변호사 단체도 헌법소원을 내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강신업 변협 공보이사(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변호사업계가 그동안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관행을 이어온 것으로 오해받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법적으로 봐도 계약 체결의 자유 및 평등권 등을 위반한 것으로,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은 헌법소원 청구 대상에서 법원 판결을 제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강 공보이사는 “이번 판결은 일반적인 판결이 아니라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대법원이 향후 모든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로 선언한 것은 새로운 법률을 만든 것과 같은 사실상의 입법행위”라며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제정한 법률도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 그런데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법원의 입법행위를 아무 제한 없이 허용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변협의 헌법소원을 계기로 최고법원 위상을 두고 벌여온 대법원과 헌법재판소(헌재)의 오랜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고 평가한다. 두 기관은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지난해 9월 퇴임사에서 “대법원과 헌재의 관계는 단순히 호양(互讓)적 관행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났다. 정치권이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로 공공연히 힘겨루기를 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헌재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법조계 초미의 관심사다.

    근본 원인은 대법원과 헌재의 기싸움?

    ‘성공보수 무효’ 뒤집어진 법조계
    헌법을 전공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이 헌법소원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헌재 재판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헌재가 이번 사건을 최고법원의 위상을 세울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대법원이 두고 볼 리 없다. 헌법 제101조 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한다. 최근 상고법원을 만들어 정책적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대법원으로서는 헌재의 역할 확대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결국 사법부 내에서 정치게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올 초 변협이 대법관 개업 관행을 비판하면서 차한성 전 대법관의 개업 신고를 반려한 데 대한 대법원 측의 반격이라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대법원은 성공보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상고한 변호사가 소를 취하할까봐 우려했는지, 마치 007작전을 하듯 재판 전 과정에 대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며 “얼마 전 이혼 판결을 두고 공개변론까지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인 것만 봐도 대법원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일단 로펌들은 형사사건 위임 계약서에서 성공보수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자체적으로 새로운 계약서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며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7월 27일 ‘형사사건수임계약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전관예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특정 지위 이상의 고위직 판검사 출신은 변호사 개업을 전면 제한하는 등의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계기로 시작된 사법계의 힘겨루기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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