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기록을 새로 쓰는 두 남자

‘미들라이커’ 기성용, 폭발적인 골잡이 손흥민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6-01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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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붐’ 차범근(62)과 ‘산소탱크’ 박지성(34)은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차범근은 현역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한국 축구의 존재를 유럽에 처음 알린 ‘전도사’였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끈 박지성은 유럽 축구의 중심이라 부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활약하며 변방에 머물던 한국 축구를 세계 주류에 편입시켰다.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축구 2014~2015시즌이 최근 마무리됐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26승9무3패를 기록한 첼시FC가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이, 프리메라리가에서는 FC바르셀로나가 챔피언에 올랐다. 각 리그 모두 내로라하는 명문 팀이 챔피언에 오른 가운데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활약도 어느 해보다 풍성한 결과를 얻었다. 단연 눈에 띄는 선수는 바로 박지성을 넘어선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 기성용(26)과 차범근에 다가선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손흥민(23)이다.

    기성용, 박지성을 뛰어넘다

    5월 초 미국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은 ‘스완지의 스타가 된 코리안 제라드, 리버풀도 눈독’이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기성용을 더는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와 비교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다뤘다. 기성용은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 요긴할 때 터지는 중거리포 등을 갖춰 제라드와 닮았다 해서 ‘기라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이제 아시아 최고 미드필더이자 프리미어리그 스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리버풀이 올 시즌이 끝나면 프리미어리그를 떠나 미국 무대로 진출하는 제라드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기라드’ 기성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는 기성용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만 팀 내 최다인 8골을 터뜨리며 맨유에서 주전 공격수로 뛰던 박지성이 보유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한 시즌 최다골(정규리그 5골·리그컵 2골·챔피언스리그 1골)과 타이를 이뤘다. 정규리그 골만 놓고 보면 기성용은 역대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 출신 프리미어리거 최다골 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박지성은 2006~2007시즌과 2010~2011시즌 정규리그에서 5골을 터뜨려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정규리그 최다골을 기록했지만 이번에 기성용이 이를 넘어섰다.



    리그 막판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로 시즌을 조기 마감한 기성용은 올 시즌 리그 30경기(선발 27경기)에서 총 28차례 슈팅을 날렸고, 그중 정확히 반인 14개가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 슈팅이었다. 이 중 8개가 골망을 흔들며 최고 골성공률을 자랑했다.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의 합성어인 ‘미들라이커’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다.

    2009년 스코틀랜드 셀틱FC를 통해 유럽무대를 처음 밟은 기성용은 2012년 스완지시티로 이적해 처음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이적 직후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등 어려움을 겪다 선덜랜드로 임대돼 새 팀에서 이름을 날린 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스완지시티로 복귀해 개인 최고 활약을 펼쳤다.

    특히 지난해 8월 16일 맨유와 시즌 개막전에서 중거리포로 선제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고, 2월 22일 리턴 매치에서도 짜릿한 골맛을 보며 2-1 승리 주역이 돼 ‘맨유 킬러’로 우뚝 섰다. 팀 내 최다골을 기록한 기성용의 활약 덕에 스완지시티는 이번 시즌 16승8무14패, 승점 56으로 팀 창단 후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 최다승점 신기록이란 값진 열매도 얻었다.

    특히 기성용은 올해 초 호주에서 열린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아시안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27년 만에 한국 축구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구자철(마인츠)과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등 주축 자원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높은 패스 성공률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팀의 중심을 잡으며 ‘슈틸리케호’의 기둥 노릇을 했다. “개인과 팀 모두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해 내 축구 커리어 중 가장 인상적인 시즌이었다”고 말한 기성용은 “맨유전 골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아시안컵에서 결승에 오른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되돌아봤다. 현재 기성용은 여러 클럽의 관심을 받고 있어 다음 시즌에도 스완지시티에서 뛸지는 미지수다.

    손흥민, 차범근에 다가서다

    영국에 기성용이 있다면, 독일 무대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기성용과 함께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준우승을 이끈 손흥민도 2014~2015시즌 개인 최고 활약을 펼치며 팬들을 흥분케 했다. 대표팀은 물론 소속팀에서도 주로 왼쪽 날개로 뛰는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정규리그에서 11골을 포함해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컵 1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플레이오프 2골·본선 3골) 골을 합쳐 2014~2015시즌 총 17골을 폭발했다.

    2010~2011시즌 3골을 기록했던 손흥민은 다음 시즌 5골을 뽑았다. 2012~2013시즌 개인 첫 두 자릿수 득점(12점)에 성공한 후 2013~2014시즌에도 12골을 작렬했고, 이번 시즌 개인 최고인 17골을 터뜨렸다.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면서 분데스리가 톱클래스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손흥민이 분데스리가 정규리그에서 뽑아낸 11골은 리그 득점랭킹 6위에 해당한다. 카림 벨라라비(12골)에 이어 팀 내 2위다.

    4월 11일 손흥민이 마인츠전에서 시즌 17호 골을 터뜨린 뒤 한국 축구의 시선은 그의 발끝에 모아졌다. 차범근이 가지고 있는 분데스리가 역대 한국인 한 시즌 최다골(19골)이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시즌 중반까지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던 손흥민은 그러나 마인츠전 이후 최종전까지 6경기에서 침묵하며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소속팀 경기뿐 아니라 A매치까지 포함해 한 시즌 동안 50경기 이상을 소화한 손흥민은 시즌 막판 체력 저하 탓에 득점포가 터지지 않으며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차범근을 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관리로 별다른 잔부상 한 번 없이 무리에 가까운 힘겨운 일정을 소화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번 시즌은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스스로의 평가처럼, 그는 12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손흥민이 이제 20대 초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손흥민은 “부족한 부분을 앞으로 더 보완해 완벽하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솔직히 차범근 위원의 기록을 깨지 못한 건 아쉽다. 하지만 한 단계씩 천천히 다시 도전하겠다. 다음 시즌엔 더 멋진 골,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손흥민 역시 기성용과 마찬가지로 여러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어 다음 시즌 레버쿠젠 유니폼을 다시 입을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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