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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의 밥꽃, 목숨꽃 사랑 ③

달달 아삭 노란색의 유혹

봄에 먹는 채소 꽃, 배추꽃

  •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달달 아삭 노란색의 유혹

달달 아삭 노란색의 유혹
우리가 기르는 채소 가운데 배추만큼 즐겨 먹는 게 있을까. 어느 집 밥상에서나 배추김치는 기본이요, 배추를 국이나 겉절이, 쌈으로도 즐겨 먹으니까. 게다가 김치냉장고가 일반화하면서 사시사철 배추김치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배추꽃을 본 적 있는가. 가을이면 전국 어디나 배추밭이 널리는데 왜 꽃을 보기는 어려울까. 그 이유는 재배농가에서 꽃을 원하지 않기 때문. 꽃을 피운다는 건 곧 씨를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농가에서는 대부분 씨앗을 손수 받지 않고, 종묘상에서 사다 심는다. 농사꾼이 배추를 기르면서 원하는 건 속이 잘 찬 배추. 어쩌다 꽃을 피우려고 꽃줄기를 올리는 순간, 그 배추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사라진다. 안타깝지만 배추는 돈에 가려 제대로 된 한살이를 마치지 못한다.

눈도 입도 즐겁게

그럼에도 배추꽃을 관상용으로 즐기거나 토종 씨앗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꽃을 피워 씨앗 받는 일을 기꺼이 하려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좀 번거롭다.

배추가 꽃을 피우자면 가을에 심은 배추가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꽃줄기를 올려야 한다.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먼저 시간부터 그렇다. 가을배추는 씨를 뿌리고 석 달 정도면 속이 차 시장에 나온다. 그런데 꽃을 피우려면 긴긴 겨울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개량 배추는 영하 4도면 냉해를 입고, 추운 겨울을 나면서 대부분 얼어 죽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9월 말 늦게 배추 씨를 뿌려, 포기가 차지 않은 로제트 상태에서 겨울을 나게 하면 된다.



달달 아삭 노란색의 유혹

고구마 수프에 넣은 배추꽃. 배추김치 버무리기. 배추꽃과 거의 같은 시기에 피는 살구꽃(왼쪽부터).

4월에 접어들면 우리 산천에 피는 꽃들이 제법 많다. 매화나무와 앵두나무가 하얀 꽃을 활짝 피운다. 살구꽃은 연분홍빛으로 그 모습을 막 드러낸다. 이와 견줘 채소 꽃은 딸기 말고는 아직 귀한 철. 배추가 슬그머니 장다리(꽃줄기)를 올린다. 푸른 잎을 배경으로 노란 꽃이 점점이 피어난다. 한창 필 때는 눈길을 확 잡아챌 만큼 유혹적이다. 향기는 덤덤한 편.

배추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다. 달달하면서도 약간 매운맛이 난다. 또 아삭하니 씹히는 식감이 좋다. 봄을 깨우는 맛이라고도 하겠다. 혀가 살고 몸이 깨어나는 그런 맛. 또한 배추꽃은 꽃차례를 따라 아주 많이 또 오래도록 피니 음식에 고루 넣어 먹어도 좋다. 샐러드에 넣기도 하고, 주먹밥에 넣으면 눈이 즐겁고 저절로 손이 간다. 화분에 배추 두어 포기만 살려두면 이렇게 봄꽃 밥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내가 배추꽃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배추꽃이 지닌 성질 때문이다. 배추는 십자화과 식물로 사랑을 좀 특별나게 한다. 한집안 식구끼리는 쉽게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생물학 용어를 빌리면 ‘자가불화합성’. 안정된 삶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늘 새롭고자 하는 성질이라고나 할까.

안정보다 새로움을

달달 아삭 노란색의 유혹

알록달록 봄된장주먹밥.

좀 더 설명해보자. 배추꽃은 갖춘꽃으로 한 꽃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다. 하지만 한 꽃 안의 암술과 수술은 물론이고, 같은 포기에 있는 꽃끼리는 수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으로 치면 한집안끼리는 결혼을 꺼리는 것과 비슷하다 할까. 어쩔 수 없이 자가수정하게 되면 부모 때보다 세력이 약해진다. 싹이 잘 트지 않으며, 싹이 트더라도 다른 식물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만일 강제로 3~4대까지 계속 자가수정을 시도하면 배추는 단호히 거부한다.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느니 아예 대를 끊고자 한다. 마치 배추라는 종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결기가 느껴질 만큼.

반대로 자연 상태에서는 교잡이 쉽게 일어난다. 그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오래전 지중해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숭’이라는 채소가 중국에서 자연교잡을 해 원시형 배추가 됐다. 이 배추가 속이 차는 결구배추로 발전한 건 청나라 초기였다. 다시 이 배추가 지금처럼 속이 꽉 찬 포기배추가 된 건 1950년대 우장춘 박사가 육종한 결과다. 지금은 봄배추와 여름배추까지 나왔다. 그러니까 배추는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접어든 100여 년 사이 엄청나게 변화 발전하고 있는 채소다.

오늘날도 배추는 자신과 비슷한 갓이나 유채하고도 쉽게 사랑을 해 생명을 이어간다. 이렇게 교잡이 일어나면 그 배추는 ‘사람 기준으로 봤을 때’ 결구가 잘 안 되고, 수량도 떨어진다. 전문 육종가들은 이런 교잡을 방지하고자 채종포(씨받이밭) 사이 거리를 2km 이상 띄운다.

하지만 배추는 스스로를 믿는다. 사람을 포함한 자연환경이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 않는가. 하여, 배추는 한집안끼리 사랑을 거부하고 다양한 유전자를 가짐으로써 그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본능을 꾸준히 살려가려 한다. 오늘 나는 배추꽃을 먹고, 꿈에서나마 노란 배추꽃 속으로 유전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

배추꽃 : 십자화과 두해살이풀. 노란 배추꽃은 꽃잎 4개가 활짝 벌어져 핀다. 꽃잎은 낱낱이 떨어지고 4개의 꽃받침조각마다 꽃잎이 하나씩 달려 열십자를 이룬다. 꽃에는 암술 1개와 수술 6개가 있는데, 수술 4개는 길고 2개는 짧다. 긴 장다리(꽃줄기)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 아래서부터 피기 시작해 꽃줄기를 위로 계속 밀어 올리며 차례차례 핀다(총상꽃차례). 4월부터 피기 시작해 5월 말까지 볼 수 있다. 꽃말은 쾌활.



주간동아 2015.04.06 982호 (p70~71)

김광화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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