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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 박주영 보고 싶다 원샷 원킬

브라질월드컵 이후 계속된 위기…7년 만에 K리그에서 반전 드라마 쓰나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돌아왔다 박주영 보고 싶다 원샷 원킬

돌아왔다 박주영 보고 싶다 원샷 원킬

7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해 FC서울에 입단한 박주영이 3월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3월 A매치 2연전을 마무리했다. 3월 27일 대전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첫 번째 경기에서는 1-1로 비겼고, 31일 서울에서 펼쳐진 뉴질랜드와의 두 번째 평가전에서는 ‘K리그 2년 차’ 이재성(23·전북현대)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평가전에서 이재성에게 A매치 데뷔전 기회를 주고, ‘원톱형 자원’인 지동원(24·아우크스부르크)을 부임 후 첫 발탁해 테스트했다. 한국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 네 번째로 대표팀을 소집한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에도 다양한 공격조합 실험을 통해 6월부터 시작될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준비했다. “대표팀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문턱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지론을 생각하면, K리그로 돌아온 박주영(30·FC서울)이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건 예정된 결과였다.

박주영은 3월 10일 친정팀 서울 유니폼을 입고 전격적으로 K리그에 복귀했다. 공격수 부진에 허덕이던 서울과 익숙한 환경에서 부활을 노리겠다는 박주영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프로 데뷔 첫해 18골, 4도움의 신화

박주영은 2014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한동안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알 샤밥에 입단했다. 잠시 반짝했던 그는 ‘슈틸리케호’ 2기 명단에 포함돼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 눈에 드는 데 실패했고, 결국 1월 호주에서 열린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출전 명단에 들지 못했다. 국내 복귀 결정 후 발표된 3월 A매치 명단에서도 ‘당연히’ 빠졌다.

박주영이 누구인가. 지금은 부활을 노리는 별 볼 일 없는 선수가 됐지만 한때 한국 축구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축구천재’였다. 대구 반야월초교 4학년 때인 1995년 4월, 학년별 학급대항경기에서 펄펄 날던 박주영은 시덕준 감독의 눈에 들어 정식으로 축구에 입문한 뒤 승승장구했다. 청구중, 청구고를 거치며 일찌감치 ‘킬러 본능’을 과시했다. 고3 때인 2004년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선 홀로 6골을 몰아넣어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이듬해 1월 카타르 8개국 초청대회 때는 4경기에서 9골을 뽑아 우승컵, 득점왕, MVP를 휩쓸며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에 이어 한국 축구의 대형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스타로 부상했다.



고려대를 중퇴한 뒤 2005년 서울에 입단해 프로생활을 시작한 박주영은 데뷔 첫해 18골, 4도움의 눈부신 활약으로 득점왕과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그해 6월 3일 우즈베키스탄과의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매치에 데뷔해 골까지 터뜨리며 팬들을 열광케 했다. 2008년 프랑스 명문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영은 2011년 9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에 입단하기 전까지 거침없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아스널 입단은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셀타 데 비고,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왓포드로 임대를 전전한 박주영은 부상과 부진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브라질월드컵 개막 직전 아스널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팬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2 런던올림픽을 앞두고였다. 병역 논란에 휩싸인 그는 올림픽 개막 직전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지만 비난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브라질월드컵 최종 엔트리 선발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홍 감독은 자신의 원칙을 깼고, 봉와직염 때문에 조기 귀국한 박주영에게는 ‘황제훈련’ 논란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에서 박주영은 무기력했다. 우리 대표팀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비운을 맛봤다. 결국 홍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대회 직후 사임했다. 8할 이상이 ‘박주영 때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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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 이웅희(3번)가 3월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3차전 웨스턴시드니(호주)와의 홈경기 도중 헤딩으로 공을 처리하고 있다.

축구천재는 위기에 강했다

1985년생인 박주영은 올해 만 서른 살이다. 여전히 그라운드를 맹렬히 누비고 있는 이동국(36·전북현대)에 비하면 여섯 살이나 젊고, 세계 톱클래스 선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는 동갑이다. 박주영은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동안 축구팬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그가 K리그에 데뷔했던 2005년 대한민국은 박주영으로 뜨거웠다. 가는 곳마다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 서울은 그해 45만8605명을 동원하며 당시 K리그 단일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을 작성했다. 박주영의 티켓파워는 원정팀에게도 축복이었다. 그 덕에 K리그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그해 12월 한 스포츠마케팅 전문조사기관이 발표한 ‘박주영의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보고서를 보면 서울의 광고효과 1016억 원 등 ‘축구선수 박주영’으로부터 파생된 경제효과를 총 1755억 원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박주영은 알 샤밥과의 이적 절차 마무리와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 탓에 4월에야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다. 소속팀 서울은 마침 K리그 클래식 개막 후 3연패에 빠지는 등 고난을 겪고 있다. 박주영이 막강했던 킬러본능을 과시한다면 자신은 물론 팀도 산다. 더구나 그의 축구천재 시절을 기억하는 수많은 팬을 다시 그라운드로 불러들이며 자신을 키워준 K리그 흥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동안 박주영은 위기에서 강했다.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 무대였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대회 조별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어이없는 자책골로 1-4 완패의 빌미를 제공하며 자신도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처한 한국을 구한 주역은 박주영이었다.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1-1 동점이던 후반 4분 명품 프리킥을 성공해 2-2 무승부의 주춧돌을 깔았고, 한국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병역 논란에 시달리던 런던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진을 거듭하다 마지막 순간 힘을 냈다. 일본과의 3·4위 결정전에서 환상적인 결승골로 한국에 올림픽 첫 동메달의 영광을 선사했다.

브라질월드컵을 기점으로 그는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최대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과 3년 계약을 맺으며 7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본인도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축구천재는 극적으로 반전 드라마에 성공할 수 있을까. 박주영이 살아나면 K리그도, 한국 축구도 더 높이 비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주간동아 2015.04.06 982호 (p64~65)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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